지원자 우롱 ‘참 나쁜 기업’… 채용과정 비인격적 대우 급증

ㆍ취업서류 접수 시간 일방 변경… 항의하면 ‘협박’

취업준비생 이모씨(24·여)는 최근 가고 싶던 기업인 유한킴벌리에 원서조차 내보지 못하고 취업을 포기했다. 회사가 서류접수 마감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당초 유한킴벌리는 홈페이지에 인터넷 서류접수 마감기간을 ‘12월8일 23시59분’으로 올렸다가 마감 전날인 7일 돌연 ‘9일 3:00까지 서류접수를 받는다’는 내용의 팝업 공지를 띄웠다. 일부 지원자들은 회사에 전화를 걸어 “9일 오후 3시”라는 확인을 받아 인터넷포털 다음의 취업 카페인 ‘닥치고 취업(닥취)’에 공지를 올렸다.

종결자 직찍 화제글을 본 이씨는 9일 오후 1시쯤 원서를 내려 했지만 홈페이지에는 ‘접수가 마감돼 지원할 수 없다’는 문구가 떴다. 회사 측에 전화를 걸었지만 “점심을 먹어야 하니 1시까지 기다리라” “ ‘3:00’이라고 돼 있으면 상식적으로 새벽 3시로 알지, 누가 오후 3시라고 생각하느냐”는 말만 들었다. 지원자들의 항의전화가 계속되자 회사 측은 “지금 전화 건 분 번호가 XXXX 맞죠? 계속 전화하면 불이익당할 수 있어요”라고 압박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원서접수 대행회사인 잡코리아가 내부적으로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접수 창을 열어놓자는 공지를 띄우려다 시스템상 오류로 유한킴벌리 홈페이지에 글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원자들에게 혼란을 준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별도의 구제방법을 마련하거나 사과문을 게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업이 지원자들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닥취’ ‘취뽀(취업 뽀개기)’ 등의 취업전문 인터넷 카페에는 대기업 지원 과정에서 채용담당자들로부터 모욕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넘쳐난다. 특히 면접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사연이 많다.

지난 8월 모 투자증권 인턴사원에 지원했던 김모씨도 그런 예다. 김씨는 오전 8시쯤 이 회사의 한 팀장으로부터 “나 ○○팀장인데, 오늘 오전 10시까지 여의도 빌딩으로 와”라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팀장은 “난 지금 보고 싶은데?”라며 전화를 끊었다. 면접 과정에서도 “아 XX, 너 ○○대학이냐. 그 학교 출신이 나흘 일하다 그만둬서 그 뒤로 너희 학교 출신은 안 뽑으려 했다. 너도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면 다시는 금융권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김씨는 결국 인턴을 포기했다.

이처럼 억울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피해구제 방법은 전무하다. 인사권을 쥔 기업에 항의하기가 어렵고, 법적 보호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양정열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과장은 “지원자는 근로자나 채용예정자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회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지원자들은 선발권을 쥔 회사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기업이 이 점을 악용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도덕적으로도 크게 비난받을 일”이라며 “그러나 지원자들로서는 수모를 당해도 합격될 경우 회사를 다녀야 하므로 이런 악순환을 끊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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