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떠난 스님 (이찬수 위원)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고 이번엔 불교환경연대 대표이자 화계사 주지이신 수경스님이 주지, 승적 등 모든 ‘사회적’ 신분을 내어놓고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환경운동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는 수경스님은 나도 좀 면식이 있던 분이라서인지 맘이 더 애잔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스님께 말씀듣기를 청할 때마다 무언가 남다른 존재인 냥 받들어지는 상황을 버거워하셨다. 자격도 없는데 승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으니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언젠가 이것저것 죄다 내려놓아야겠다며, 환계(還戒)의 가능성을 몇 차례 비추곤 하셨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진솔한 고백을 할 줄 하는 스님의 겸손하고 솔직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참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러던 분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편지 한 장을 가까운 이들에게 남겨 놓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평소의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소신을 일단 실천으로 옮긴 셈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스님의 편지를 한 번 더 인용해본다.
스님의 번민이야 그분대로 있었을 테니, 정말 무엇 때문에 그리도 ‘번다하셨는지’ 외부자로서는 다 알 길이 없다. 그래도 나의 짧은 경험과 그분의 인격에 비추건대 이해가 안 될 것도, 공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다만, 번다했던 그대로, 번민을 적당히 숨기고 살던 대로 살지 않고,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에서 나 같은 이와는 다른 수준이 읽혔다. “아버지,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코복음 14,36)라고 기도했던 예수가 생각나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보기에 따라, 집착 없이 자연스런 삶 그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소 섬뜩한 상상을 하노라면 자살의 가능성마저 담긴 말임 직도 하고, 하필 ‘바위’ 옆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듣노라면, 바위에서 투신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면서도 ‘죽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죽고 ‘싶다’는 고백은 여전히 삶에 대한 집착을 떠나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선승의 세계관을 물씬 담은 고백이기도 할뿐 더러, “대접받는 중노릇은 하지 않으리라”는 일관된 고민은 스님이야말로 제대로 된 수행자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경스님은 물론이거니와 문수스님도 수행자로서의 첫 길에 들어섰다가, 한 번 더 길을 떠난 분들이다. 한분은 죽음으로 생멸의 길을 떠났고, 다른 분은 모든 신분과 권력을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지면서 생멸의 길을 떠났다. 그렇게 한 분은 무여열반(사후 열반)에의 길에 들어섰고, 다른 분은 유여열반(번뇌는 끊었으나 몸은 남아있는 열반)에의 길에 들어섰다. 종교 공부하면서 느끼던 바이지만, 사람이 제대로 되려면 두 번은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분 스님이 시대적 고민 속에서 두 번은 거듭나는 모습을 참으로 실감나게 보여주신 듯하다. 나도 물론이거니와, 이 땅의 수천만 종교인들은 과연 두 번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길을 제대로 떠나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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