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은 사람은 그의 제자가 된다(노컷뉴스 12.08)

인권연대 2011. 4. 21. 14:13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은 사람은 그의 제자가 된다
평생 지성과 기예의 금광을 파시는 분
행간 속에서 깨달음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새로운 글쓰기 보여줘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0년 12월 7일 (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소설가 서해성,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정관용>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이런 명저들을 통해서 우리 젊은 층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셨던 사상의 은사, 실천하는 지성, 고 리영희 선생의 생애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두 분을 전화해 모실 텐데요. <리영희 프리즘>이라고 하는 책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오창익>안녕하세요.

▶정관용>예. 그리고 소설가 서해성씨, 안녕하세요?

▷서해성>네. 안녕하세요.

▶정관용>전화상이지만 두 분도 인사 좀 나누시고요.

▷오창익>안녕하세요?

▷서해성>안녕하십니까. 오래간만입니다.

▶정관용>먼저 오창익 사무국장은 리영희 선생님하고 개인적으로 어떤 연고가 있으세요?

▷오창익>개인적인 연고는 없는데요. 우연히 생신잔치에 한 번 따라간 적이 있었고요. 그 다음에 뭐라고 말할까요. 코드가 맞았다고 할까요. 귀여워해주셨어요. 그래서 최근에 3년 동안 자주 뵀었습니다.

▶정관용>마지막에 병원에 오래 계셨죠?

▷오창익>네. 2000년 중풍으로 쓰러지셨다가 일어나셨지만 그 다음에 병원신세를 많이 지셨는데요. 기관지가 좋지 않으셔서 작년에도 입, 퇴원이 잦으셨고요. 그런데 올해는 설 지난 다음에 2월부터 간경화를 앓게 되셔가지고요. 굉장히 병원에 오래 계셨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달 동안은 병원에만 계셨습니다.

▶정관용>병원에도 오창익 국장께서 많이 찾아가서.... <리영희 프리즘>이라고 하는 책은 어떤 책이죠?

▷오창익>작년 12월이 리영희 선생님 생신이셨는데요. 80세 생신이셨어요.

▶정관용>팔순.

▷오창익>네. 그래서 저희 제자들 입장에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그래서 책을 기획했었습니다. 애초에는 잔치를 해드리려고 그랬는데 선생님께서 굳이 사양하셨더라고요. '지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족함을 알아야 된다. "내가 그 전에 고희잔치를 했는데 그저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생일잔치를 받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극구 사양하셔가지고요. 그 대신 책을 하나 만들어드렸습니다. 그래서 리영희 선생을 통해서 세상을 한 번 읽어보자.

특히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 여러 가지 안 좋은 여건에 서 있지 않습니까. 스펙이라든지, 취업이라든지. 이런 친구들에게 우리의 선생님을 통해서 해주고 싶은 얘기들, 영어공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신문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냈습니다.

▷서해성>책제목을 보고 책을 보면서 느낀 게 리영희 선생님의 시선으로, 마치 프리즘이라고 하는 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광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말로 하면 말이죠. 리영희라고 하는 그 빛을 통해서 다시 빛을 분해해서 젊은 사람들, 미래의 독자들과 그런 사람들과 같이 소통을 하고 다시 그걸 하나의 관점으로 모으는, 그런 아주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리영희 선생님의 눈으로 요즘의 세상을 본다. 이런 말씀이시로군요.

▷서해성>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리영희 선생님이 갖고 있는, 그 책에서도 그렇습니다만, 가장 훌륭한 장점은 독자가 곧 제자가 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독자라는 게 소비자 개념에 가까운데요. 제자라는 말은 인격적인 의미를 같이 포함돼 있습니다. 가치전승 개념이죠.

그러니까 리영희 선생님이 가장 갖고 있는 가장 훌륭한 점이 바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사실상의 제자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서해성씨는 리영희 선생님하고 어떤 연고가 있으신가요?

▷서해성>아니요. 개별적으로 따로 한 그런 연고는 없고요. 저는 오래 전부터 이런 저런 일로 자주 뵀었죠.

▶정관용>그리고 책을 읽고 제자가 된 분이다.

▷서해성>그렇습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죠.

▶정관용>평안북도 삭주 출신이신데 고인의 일대기를 누가 좀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해성>오창익 국장님이 더 어울리실 거 같습니다.

▷오창익>언론인이셨고요. <합통통신> 조선일보 기자셨고 기자로 일하시는 동안 2번이나 해직이 되셨죠. 그리고 학교로 옮기셔서 한양대 교수셨는데 박정희 때 한 번, 전두환 때 한 번 해직되셨습니다. 총 4번 해직되셨고요.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5번 구속되셨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차례 구속되셨고요.

그리고 선생님 스스로는 "기자, 저널리스트가 60% 정도고 학자가 40% 정도다" 이렇게 평소 말씀을 하셨는데요. 학자도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사실에 기초해서 분석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활동들을 하셨고요. 학자로서도 또 신문칼럼을 통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도 하셨고요. 언론인, 학자로서의 면모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중요한 현안이나 독재와의 싸움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이셨죠. 굉장히 독특한 지향을 갖고 계신 분이셨던 거 같습니다.

▷서해성>근대인이라고 하는 것, 한국인으로서 근대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는데요. 그게 그냥 한국에 사는 지식인이 지식만 가지고 훌륭한 지식인이 되지 못하거든요. 한국의 분단 현실이라든지, 독재라든지 이런 특성이 실천적 지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 분들이 많지 않죠, 사실은요. 그런 요구를 동시에 받아야 했는데 그걸 온전하게 자기 몫으로 기꺼이 수행하셨던 그런 분이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그분 고향이 이제 운산이지 않습니까. 운산 그러면 운산 금광으로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말 그대로 금이 나오는 곳이죠. 그런데 이분은 평생 금광을 파셨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제 금이 아니고 바로 지성과 기예의 금광, 그리고 우리가 당시에 가장 억압 받을 때, 독재 시대 때 그런 걸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금빛 미래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제시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그런 의미에서의 금광. 오창익 국장 조금 아까 소개하셨습니다만 베트남전을 다룬 게 <우상과 이성>이죠?

▷오창익> <전환시대의 논리>

▶정관용> <전환시대의 논리>인가요? 그 책도 보면 아주 구체적인 미국의 문서라든지, 이런 것 하나하나를 아주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또 명문으로 책을 써나가셨기 때문에 당시 지성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닙니까?

▷오창익>리영희 선생님 글쓰기가 독특한 게요. 다른 분들은 각주도 많이 달고요. 인용도 굉장히 많이 하세요. 그러니까 현학이랄까요. 이런 태도가 좀 있는데 이런 거품이나 이런 것이 쭉 빠진 마치 훈제된 무슨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아주 간결한 문장구사를 하셨고요. 그 다음에 특히 아주 많은 자료를 동원해서 쉽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리영희 식 글쓰기는 아마 지식인의 전형인 거 같고요. 글쓰기가 보통 문학하는 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는데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였던 것 같고 그래서 새로운 독자들이 열광했던 거 같습니다.

▶정관용>서해성씨 소설가이신데 문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서해성>다른 것보다도 이제 사실 가장 좋은 문장이 건조한 문장이거든요. 그러니까 리영희 선생님 문장이 수식어가 없죠. 그건 무슨 얘기냐 하면 관념의 불명확성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는 이제 정서적 과장을 하지 않죠. 철저히 사실에 기초해서. 그런데 놀라운 것은 리영희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문장의 행간과 행간을 읽어야 되거든요. 거기에 고도의 풍부한 ‘emotion’이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두 가지인데 그 정서라는 것은. 하나는 사실을 발견할 때 느끼는 깨달음입니다.

두 번째는 이제 그걸 읽고 나서 지금까지 배운 것이 거짓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깨달음과 분노가 행간 속에 숨어 있는, "깨달음과 분노를 느껴라"고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 행간 사이에 들어있는 그 문체가 주고 있는 힘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관용>70~80년대 대학생들 같은 경우는 거의 이제 대학 들어가자마자 이 책을 접하고 자신이 기존에 알던 것이 다 무너지는 그런 충격을 느끼고, 그런 경험들을 다 갖고 계시죠, 다들?

▷서해성>네. 지금 말씀드린 바로 그 깨달음과 분노라는 게 그걸 말씀 드린 것입니다. 제 자신도 그걸 그렇게 느꼈고 70~80년대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지식인들이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정관용>오창식 사무국장 또 서해성씨 두 분 혹시 리영희 선생님 모습 가운데 기억에 남는 어떤 모습이 있으면 한 말씀씩만 하시고 마무리 지을까요?

▷서해성>저는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리영희 선생님께서 나무걸상, 한자로 의자죠. 의자를 가끔 만드시곤 하셨습니다.

▶정관용>직접 만드셨어요?

▷서해성>그렇게 하신 일이 이제 늘 몸을 써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당신은 늘 부끄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지식인으로 산다고 하는 것, 지식인이 갖고 있는 관념성을 이겨내기 위해서 꼭 그런 일을 하셨다고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관련기사
고 리영희 선생 영결식, "'진실'..'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삶' 리영희 ..'실천하는 지성' 故 리영희 선생 추..'실천하는 지성' 리영희 선생 타계

저는 이것을 우리에게, 말하자면 의자를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자에 이제 우리가 앉았고 그리고 진실과 정의, 그런 것들이 거기에 앉았었다, 지난 세월에. 이제 우리가 새로운 의자를 만들어야 된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정관용>의자 만드시는 솜씨는 빼어나셨나요, 어땠나요?

▷서해성>거기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분이 쓰신 책들에 과거에는 책을 사면 그 뒤에 비매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왜 그랬냐 하면 그 당시 책이 다 판금돼 있었는데 그러다보니까 그래도 좀 유통시키기 위해서 뒤에 비매품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그런 책을 우리가 당시 정상적인 유통경로로 살 수가 없었고요. 다른 이른바 사회과학서적 같은 걸 통해서 사게 됐는데, 그랬습니다. 그 분은 살면서 어쩌면 자기 삶 자체를 한 번도 판매하지 않으신 분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정관용>오창익 국장께서도 기억에 남는 모습 있으면...

▷오창익>다른 사람들 배려 굉장히 잘해주셨고요. 굉장히 천진난만한 분인데 시사자키 PD이신 이광조 PD하고 같이 지난 해 가을에 1박 2일로 같이 강원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내린천 옆에 앉으셔가지고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 이광조 PD가 "개인적으로 아직도 축하받을 일이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니까 옆에 있는 큰 바위를 보면서 "저게 내가 당신한테 주는 선물이다" 이런 말씀도, 농담 잘하셨고요. 그 날도 밤 12시까지 병환도 있으셨는데 약주도 드시고 함께 즐거워하시고요.

사람들하고 교분 하는 걸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경계하는 것은 이런 게 좀 패거리가 되면 안 되겠다.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들어오지 못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좋은 사람들하고 교분하며 살면 좋겠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관용>네.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만 우리 마음이나 머릿속에는 영원히 남아 계시죠, 그죠?

▷서해성>예.

▷오창익>그럼요.

▶정관용>두 분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서해성>고맙습니다.

▷오창익>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