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무죄사건′ 피고인 만신창이, 검사는 멀쩡(아시아투데이 4.24)
인권연대
2011. 4. 27. 09:57
[아시아투데이=방성훈 기자 ] 검사의 무분별한 기소(공소제기)에 따른 시민들의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24일 인권실천시민연대, 법률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심사소위원회(이하 검찰소위)의 개혁안이 기소독점권을 무기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기소권 남용으로 시민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피해를 본 시민에 대한 보상은 없거나 미미하고 검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검찰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검찰소위 개혁안은 중수부를 없애느니 마느니 등 시민들과는 실질적으로 별상관이 없는 사안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형식상으로는 행정부인 법무부 산하 기관이지만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권 및 수사지휘권을 가지며 실질적으로 법원에 준하는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검찰에 이런 막강한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인권보호와 공정한 수사에 검사가 앞장서라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런 권한을 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되레 검찰의 권한남용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시민들의 호소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정이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교통사고가 나도 보험에 의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는데 형사보상법에 의해 이뤄지는 보상은 변호사 비용조차 감당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미 망쳐버린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해 누가 보상을 해줄 것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무죄선고를 받아도 실추된 명예는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에 100만명이 고소·고발을 당했고 80만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중 12%가 기소를 당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고 기소했는 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에게는 불성실한 수사를 남발하면서 권력층에게는 봐주기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서민들의 검찰에 대한 체감 불만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권력실세의 비위사건에 대해서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면서 일반 시민의 경범죄 사건에서는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야당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이제는 비일비재한 일이 됐다.
◇ 강한 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검찰
일단 검사에 의해 기소되면 법률적 신분이 피고인으로 낙인찍히면서 직장, 가족 등 생활 전반은 엉망이 되기 시작하고 사회에서는 이미 그 자체로 범죄자나 전과자 취급을 당한다.
가정이 파탄나거나 직장을 잃고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등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죄가 없더라도 일단 기소를 당하면 무죄판결을 받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그동안의 기간에 겪은 정신적 고통, 사회적·재산적 피해 등에 대한 보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기소는 검사가 사법경찰관에게 송치받은 사건, 직접인지 등으로 수사한 사건에 대해 피의자가 유죄라고 판단, 법원 재판에 넘기는 절차다.
당연히 검사의 기소는 신중히 이뤄져야 하지만 검사의 주관적 독선으로 이뤄지거나 정치적인 압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엄중한 견제나 통제책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실효적인 수단은 마땅히 없는 형편이다.
피고인인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더라도 보상이 없거나 미미한 수준인데 반해 수사 검사나 기소 검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별다른 제제나 불이익조처를 받지 않는다.
피고인의 경우 구속영장 발부나 하급심에서의 유죄선고 등으로 수감 생활을 하다가 최종 판결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때에만 국가보상청구권 행사를 통해 '쥐꼬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형사보상법에서 규정하는 최대 보상금은 하루에 해당연도의 최저임금법상 일급최저임금액(2011년 3만4560원)의 5배로 2011년 현재 상한액은 17만2800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인해 피해를 입는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무분별한 기소를 막을 수 있다”며 “형사보상이 구속된 피고인에게만 이뤄져 피고인이 겪어야 하는 큰 고통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고 불구속 피고인의 경우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억울하게 기소당한 시민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확대돼야 한다. 현재의 보상체계로는 힘들다. 벌금으로 조성되는 기금은 모두 국가예산으로 쓰이고 있는데, 약 1조 5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기금을 보상금으로 쓰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몰수기금으로 보상금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놔두면 돈세탁이 이뤄지고 다른 범죄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범죄자금의 환수요건이 까다로운데 다시 범죄에 쓰일 돈이라면 규제를 좀 느슨하게 해서 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우선 기소부터, 수사는 마음 내키는대로
지난 2009년 1월 검찰은 ‘허위통신죄’ 처벌조항인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을 적용하여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이 이 조항을 적용하여 수사·기소한 사건들은 촛불집회, 천안함 침몰 등 정부의 활동과 관련해 국민의 의견대립이 있는 사안이었다.
이 조항은 50여 년 전 제정돼 2008년에야 처음으로 적용됐고 위헌성 논란이 제기돼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후 검찰이 기소한 사건들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기소권 남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형평에 맞지 않는 법적용의 사례다.
억지 수사로 억울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 판사는 “심증으로는 유죄라고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엄격한 형사사건의 특성과 검찰의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사람들이 보상을 청구하면 재량의 범위 안에서 덜 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부실한 수사와 증거부족으로 올바른 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부당한 이득을 받는 사람까지 생겨나는 실정이다.
◇ 사법개혁안, 검찰이 달라질까?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검찰소위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검찰은 기소권 남용과 관련된 사항에서 검찰시민위원회와 기소검사실명제를 제외하고 사법개혁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검찰소위는 검찰시민위원회 명칭을 검찰심사시민위원회로 하고 고등법원에 설치하자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독립기관으로 하자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기소검사실명제는 전원이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오 국장은 “국회 사개특위의 개혁안은 실질적으로 검찰권을 통제하는 효과가 전혀 없다. 검찰의 반발은 이후 진행될 검찰개혁 작업을 미리 봉쇄하자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권은 검사들을 위한 권한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인데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와 검사들만을 위한 무소불위의 검찰권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집단이기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앞서 지난 19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개혁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촛불시위, PD수첩, 미네르바, 교사 시국선언 등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권 남용 등 인권침해 사례가 부지기수이지만 검찰은 기소검사실명제 등 사법개혁안 일부만 제외하고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등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에 대한 국민의 통제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핵심이다. 국회는 흔들림 없이 사법개혁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부 실속부터 다져야
검찰 관계자는 “민감한 사건은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수사와 관련해 지시를 받기도 한다. 독립적인 수사를 하기에는 외압이 너무 많다. 하지만 잘못됐을 때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와 기소에 대한 책임은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는 관련자들을 모두 책임자로 봐야 하고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생 황모(32)씨는 “최근 몇 년 검찰의 행태를 보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검사는 하기 싫어졌다.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해도 검사로서 지켜야 할 정의와 형평의 원칙을 무시하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감한 정치나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수사는 소수 수사부서가 대부분 독점해 과잉수사나 부실수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편중된 수사권한으로 인해 공정하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는 검사들까지 비판받고 있다.
일부 검사들은 수사에 문제가 있음에도 강행하고 있지만 인사상 불이익은 없고 오히려 승진의 사유로 작용하고 있어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김희균 교수는 “검찰은 독립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집단이다. 정권의 하수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줬지만 많은 폐해 및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성과 민주성 양립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시민감시체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잘못된 수사나 권한을 남용한 검사에게는 인사상 불이익 등 책임을 물어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신뢰받을 수 있는 검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성훈 기자 dvdbang@as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