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모임을 꾸리고 그 회원이기도 한 나는 판결 내용도 궁금하지만 재판에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10시에 시작하는 재판을 방청하였다. 지지모임 회원 4-5명이 이미 와있었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본 사건은 6번째로 판결이 잡혀있었다. 그날의 판결은 성추행이나 성폭력, 강간미수 등의 사건이 대부분이었고 판사가 판결의 이유로 댄 것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여 본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긴장되었다. 드디어 6번째 판결... 피고인 5명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판사의 판결이 낭독되기 시작하였다. 그 사건의 항소심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김** 만 항소하였고, 범인도피에 관하여는 검사측과 피고인측이 모두 항소하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하여 한 5분여간 낭독된 판결문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 가지 부분에서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운동사회 내에서 상실된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판사는 성폭력이 매우 중한 죄로 피해자의 입장이 명백한 이상 피해자의 의견을 중요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법조계의 가해자 중심주의적인 판결을 꼬집기도 했는데 이는 피해자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조직에서조차 채택되지 못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의 판결에서 피해자의 의지와 의견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을 우선시 한 점에서 한사람의 생존자로서 살아가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진 것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의 상태로 저지른 우발적인 행위였다고 판시한 원심의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즉, 술이 이유가 되어 양형이유에 있어 감경요소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며 원심판결에 항소한 가해자에게 반성하지 않는 태도라며 질책하였다. 그리고 심신미약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심신미약과 범행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동안 술에 대하여 유독 관대했던 우리 사회에서 법정이 나서서 경종을 울린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에 대한 공탁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 점이다. 공탁이란 유가증권 기타의 물품을 변제·담보·보관 등의 목적으로 공탁소에 임치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합의 의사를 공탁으로 변제하려 한 가해자의 의도를 법정이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공탁함으로써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의 뜻을 약화시키려 한 행위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즉, 공탁이 가해자의 사회에 대한 사죄의 의미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은 아니며 양형사항에 있어 감경요소가 아님을 적시하였다. 그 동안 돈 있는 사람들의 이런 공탁에 대하여 피해자의 합의의사와 상관없이 인정되고 합의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번 판시로 공탁 또한 피해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해야함을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반갑다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두순 사건이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넓혔지만 그에 따른 법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판사는 “범행이 중하므로 감형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며 형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다”라는 말을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 마지막 말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을 가해자에게 주문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귀결지어져야할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나 법조계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이번 판결이 동종의 사건에 중요한 판례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다. 여성의 옷차림이나 언행이 판단의 중요 기준이 되었고, 여성에 대하여 사회가 부여한 역할 수행이 또한 중요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남성의 시각이 판결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법정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관점에서 판결을 내린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만약 발생한다면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에 사회가 또는 법조계가 나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 판결은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겼고 진심으로 환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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