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태' 교훈.."외양간 제대로 고치자"


굳게 닫힌 인화학교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8일 광주 광산구 삼거동 인화학교 정문이 바케이드가 쳐진 채 취재진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2011.9.28 mimu21@yna.co.kr

법률·제도.사회 문화적 장치 마련 시급

장애우에 대한 성숙한 인식 전환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열풍이 온 나라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사회의 치부들이 도가니 속에서 들끓는 상태를 상징화해 붙여졌다는 영화 제목은 이제 각계의 과열된 관심과 반응이 뒤섞인 상태에 적용해도 될 듯한 모양새다.

수년간 관심을 촉구해 온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지나친 관심은 피해자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할 정도다.

"일회성 관심보다는 차분하고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대책위의 당부처럼 이번 사건을 유사 사례의 재발을 막는 법률, 제도, 사회문화적 장치를 늦게나마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애우 성범죄 형량 강화를" = 장애우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우선 형량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해당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등 다른 범죄와 차별해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 입증책임을 장애가 있는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규정이나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 당시 '항거불능' 상태였느냐를 중시하는 관행도 손봐야 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대전 YWCA 김지찬 상담사는 29일 "장애인 관련 성폭력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여부가 재판 과정에서 굉장히 큰 논란이 되곤 해 이 조항을 없애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아동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지만, 그동안 장애인 성폭력은 크게 이슈가 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4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청소년 성폭행이 비친고죄로 바뀌고 같은 해 7월에는 양형기준도 높아졌지만 일반 장애우에 적용되는 특별조항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인천대 법학과 백원기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동 성범죄 사범에 대한 형량이 낮고 온정주의적 양형이 많은데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를 바꾸고, 특히 장애 아동 성범죄에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장애우 시설을 세상 밖으로" = 장애우 시설의 폐쇄성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화학교처럼 조직적으로 은폐가 시도될 경우 피해가 반복되고 또 다른 싸움으로 확산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장애우 관련 시설, 법인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 체제와 함께 성폭력 상담소 등 외부 관계망 의무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경기복지재단 신현호 팀장은 "오래전부터 이런 일들이 만연한 것은 족벌 운영체제의 영향이 크다"며 "가족끼리 이사장, 총무직을 나눠 먹으면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래에서 알 수 없고,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위에서 아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학교 등이 시민에게 개방돼 견제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우 스스로 피해를 예방하려면 교육이 필요한데도 그나마 큰 시설만 1년에 1~2회 외부 강사를 초청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할 뿐 열악한 시설은 관련 교육도 전무한 실정이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가 ,인화학교 명칭 변경 반대(자료사진)

기숙학교 등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에는 감시단을 붙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신고할 인지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누군가의 관리와 감시가 필요한데 부모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감시감독 기능을 하는 외부 위원회 등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우도 똑같은 사람" = 도가니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일반 시민과 네티즌이지만 실상 장애우에 대한 벽을 쌓는 이들도 그들이다. 장애우의 입장에서는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장애우 시설 대부분은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외진 곳에 있다.

김민문정 고양 여성민우회 대표는 "앞으로는 장애인 시설을 혐오시설이라고 기피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시민의식도 성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나 규정을 바꾸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장애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자 이에 대한 의지라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은 "인화학교 문제에는 법이나 제도의 미비점도 있겠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책임있는 기관이 적절한 역할을 안했다는 것"이라며 "경찰, 법원, 교육청이 제 역할을 잘 했으면 문제가 달라졌다. 책임있는 사람들이 법과 제도 뒤에 숨어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애우에 대한 인식과 관련, 인터넷에 오른 한 네티즌의 다음 댓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은 안쓰럽고, 착하고, 선량한 약자라는 생각도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 장애인들 중에도 성자, 도둑이 있을 수 있고 이른바 '소심남', '엄친딸', '사기꾼'도 다 있다. 그들은 진짜 똑같은 사람이다"

(김채현 우영식 김수진 최정인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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