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5월 손님은 하승창 희망과 대안 상임운영위원이고, 주제는 “6월 지방 선거와 시민 사회”입니다. 하 위원장은 시민활동가로서 ‘희망과 대안’이라는 이름 아래 대안적 정치 메시지를 전하는 활동을 해오고 계십니다.

 이번 지방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방의 선진화와 더 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시민사회가 어떻게 연대하고 역할을 해야 할지 서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엉겨서 살지 말자고 다짐할 때가 있다. 주변에 엉겨서 너무 힘든 나머지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자주 봐 왔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이런들 저런들 엉겨서 살자고 해 보았건만, 정몽주는 목숨 걸고 독야청청해 버렸다. 엉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엉겨 붙어 헤매다 넋이 빠지기 십상이다. 엉겨 독배를 마시게 되는 운명은 가련하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원 시절, 그 시절처럼 엉겨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내게 대학 시절의 엉김은 뜻을 모아 실천하는 보람과 자기수양의 시간이라도 있었다. 도제식 교육에 편입되기 시작한 젊은 법조인들의 삶은 순식간에 빛이 바랬다.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 거부도, 저항도 사라져갔다. 순응하지 아니하는 자는 왕따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편입되어 순응하는 삶에 적응되는 순간 자기수양은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비판과 모욕만은 허용하지 않는 완고한 성을 쌓기에 몰두하였다. 꿈과 비판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엉겨 붙은 기능인들의 일탈과 허세 부리기였다. 넋이 빠져들 독배를 마셨다. 스폰서 검사의 운명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엉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엉겨 붙어 판단을 그르친 사람들은 자주 주변을 탓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낯선 곳에서, 횡포에,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경우 불의에 맞서 저항하지 않고, 두려움에, 거기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유혹에 빠지면, 그 누구와도 타협하고 굴복하게 된다. 속절없이 엉기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시국사건 변론에서 접견을 가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엉기지 말고 거부할 것을. 단 한마디의 진술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상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담배 한 가치, 전화 한 통화의 유혹도 뿌리칠 것을. 구속과 중형 처벌 운운의 공격에는 겁 내지 말고 담대할 것을. 두려움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엉기지 않고 실천한 이들이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엉겨서 살자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순탄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장래를 위한 차선책으로써 타협과 굴복도 선택할 수도 있다. 독야청청 살아갈 것 같으면 모난 돌이 정에 맞고 깨끗한 물에 고기가 없듯  왕따가 되기 때문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자기 합리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결국 침묵과 굴종에는 주저함이 없는 반면, 삶의 진리에 대한 열정은 간데없고 진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게 된다. 

 실용을 위해 진리를 포기한 넋이 빠진 머저리들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는커녕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불가사의한 현실이다. 식민과 독재가 근대화를 이루고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사대 의존병에 걸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상전을 위해 독배를 마신다.  

 엉기는 것이 많기에 엉겨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바로 이 시대의 대학을 거부하는 외침이 들린다. 취업에 저당 잡힌 대학의 현실이 숨 가빴으리라. 대학다움을 찾고자 눈물을 흘렸으리라. 동지와 진리를 찾았으나 역부족이었으리라. 대학의 현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에도 힘들었으리라. 편입되어 갈 뿐 저항하지 않는 대학인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으리라. 취업 간판을 단 대학에서 꿈과 진리를 포기한 채 엉겨 살아가는 젊은 대학인들의 삶이 죽기보다도 더 싫었던 것이 틀림없다. 진리의 상아탑이기를 포기한 채 취업, 고시 준비에 갇혀 터져 버릴 것 같은 대학의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는 외침이 주객전도의 세상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미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지난 3월 11일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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