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사회 건강보고서 - 인권

2011년 한국사회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인권단체들이나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부분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각국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한국은 2007년 39위에서 2008년과 2009년 각각 47위, 69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42위로 다소 상승했다. 지난 5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프랑크 라뤼 유엔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최근 몇 년간, 특히 2008년 촛불시위 이후로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2011 연례보고서>에서 “정부는 계속해서 평화적으로 시위할 자유를 억압했다”며 “표현과 결사, 집회의 자유가 제약받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촛불시위 강경 대응,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사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국정원 기소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시위 제한 등이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사례로 꼽혔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51)은 “민간인 사찰, 시청광장 봉쇄, CCTV 확대설치 등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압받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 영역만 봐도 현재 한국의 인권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사업실장(39)도 “국제사회가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것은 근 10년 만이다. 그만큼 그 문제가 악화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영역 이외에도 ‘이주민 인권’도 한국사회의 과제로 떠올랐다.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민족,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된 진정 건수는 지난 2005년 32건에서 2010년 64건으로 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여성과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도 인식의 변화는 있지만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과 ‘국가보안법 폐지’, ‘사형제 폐지’ 등은 사회적 논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8일 한국은 사형집행중단 5000일을 맞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자살률, 여성의 사회진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 등 모든 게 인권의 영역”이라며 “인권은 개인이 얼마만큼 행복한가의 문제인데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엉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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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안’이 되는 공립대안학교의 설립 확대해야 - 전국완/ 양강중학교 교사

전국완/ 양강중학교 교사

 요즈음 2학기 중간고사가 코앞인데도 수업분위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어수선한 수업을 마치고 머리뒤꼭지가 뻐근해져서 교실문을 나서면 한참동안 우울해진다.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입체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여느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확 잡는 카리스마가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북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윗몸을 젖히며 웃어젖히곤 하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에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그 친구의 목소리에도 피곤이 묻어 있었다. 도무지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는 한 아이 때문이었다. 교과공부는 작파한 지 오래고, 금품 갈취에 폭행까지 일삼아서 수차례의 선도위원회와 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사회봉사에 등교정지까지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전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어머니는 교무실에 찾아 와서 연일 무릎을 꿇고 울면서 용서를 빌고 있다고 하고……. 담임교사인 친구의 고민은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전출’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아이를 위한 근본적인 처방은 되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생계부담에 이미 지쳐있는 홀어머니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칠어져 있는 이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서 스스로 개과천선해서 자기 몫의 삶을 찾아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교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반복되는 비행으로 아이를 인근학교에 강제전출을 시켰다. 그런데 결국 그 곳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아 본교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와 어른들을 조롱이나 하듯 말썽을 그치지 않다가, 끝내는 학교를 뛰쳐나갔으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퇴학이 없다. 결국 학교가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다른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일단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고, 보내져서 적응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아예 가출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그야말로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부적응학생의 문제는 물론 예전에도 있었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극심한 경쟁시스템으로 돌아가고, 경제적인 여건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다 보니, 가족의 해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가족해체형 부적응아’들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기본적인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면서 따라오는 이들의 부적응은 잠시 질풍노도기를 맞아 성장통처럼 겪는 방황이 아니라 언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열 몇 살짜리 아이들을 되돌아갈 수 없는 나락으로 내모는 심각한 경우들이 많다. 지역교육청별로 Wee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학교마다 상담인턴교사를 배치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리고 비단 이런 극단적인 사안만이 아니더라도, 학력위주의 사회에서 교과 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하는 학교교육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이들은 현재 심각한 부적응을 앓고 있다.

 친구가 고민 끝에 도달한 곳은 ‘대안학교’이다. 실제로 친구는 앞에서 언급한 그 학생의 전출이 결정되면서 일반학교로의 전학은 그에게 같은 실패를 안겨줄 게 뻔하다는 생각에 대안학교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입학 가능한 대안학교가 있었지만 사립학교인 그 곳의 월 5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또 문제였다.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끌어안는다는 취지로 설립되기 시작한  대안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교(중·고등학교 과정)이고, 이 중 9개 정도가 공립이다. 다만, 많은 사립대안학교들이 설립 초기와는 다르게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귀족학교’ 가 되어가고 있고, 또한 ‘입시 대비’에 치중하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결국 위 사례에 해당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진짜 ‘대안’은 ‘공립 대안학교’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공립대안학교(중학교)들이 긍정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지원자가 늘어나 입학경쟁률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보다 많은 공립대안학교의 설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대안학교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이유는 일반학교와는 다른 소질·적성 계발교육, 체험활동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등 교육과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작은 학교’라는 조건일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되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권영길 의원의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의 특목고 예산지원이 일반계 고등학교의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정작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부적응학생들은 외면한 채 특별한 영재들에게만 지원을 쏟아 붓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부당한 차별이다. 또한 요즈음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복지’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부적응의 문제는 당사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악화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사회갈등의 문제를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위 5%에 해당하는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특목고 등 귀족학교에 쏟아 붓는 만큼의 예산을 하위 5%에 해당하는 부적응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전국 곳곳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립대안학교들이 많이 세워져서, 가족해체나 과중한 교과공부에 힘들어하는 많은 학생들이 낙오자가 아닌, 우리 사회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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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우리함께빌딩 대교육장에서 88차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나선 이철수 목판화가는 매일 한통 씩 온라인으로 전송하던 ‘나뭇잎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철수는 화가로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서 8년전부터 ‘이철수의 집’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나뭇잎 편지’를 회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철수는 매일 하루 일을 마치면서 쉴 참으로 마음밭을 정리할 참으로 순식간에 엽서 크기로 그림과 글을 새로 올려놓고는 잠자리에 들어간다. 벌서 8년째 이루어진 이 편지들이 모여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 매일 저녁 꼼꼼히 적은 글과 상큼한 그림을 엽서에 담아 세상에 띄우는 목판화가 이철수.

‘이철수의 집’ 아날로그에서 인터넷으로

목판화가는 나무판을 사서 켜고 말리고 대패질한 뒤에, 그림을 붙이고 칼질을 해서 손으로 판화를 찍어낸다. 농사일처럼 이 작업도 그야말로 ‘아날로그’다. 그가 대중과 만나는 방식 역시 아날로그라 할 수 있는데,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고 직접 청중과 면대면하며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인터넷환경이 마련되면서 더 많은 대중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지만, 처음엔 인터넷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것을 자못 주저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투항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오프라인만이 제대로 된 공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오프라인을 고수하다 장렬히 전사할지 온라인으로 변신할지 고민했다. 당시 온라인 공간을 살펴보면 대개 선정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사막 같은 온라인 공간에 오아시스 같은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네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자고 나 자신에게 세뇌시켰다. 인터넷도 ‘하기 나름’이라며 그렇게 2-3년 동안 고민하다 드디어 홈페이지를 만들기고 작심했다.”

   
▲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는 그동안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가만 가만 사랑해야지> 등 6권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의 홈페이지를 엿보기 시작했는데, 그 홈페이지가 화려하든 소박하든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주변에서 홈페이지가 계속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는 조언도 주었다. 올려놓은 그림에 반응이 있으면 가끔 몇 줄이라도 답글을 달곤 했는데, 워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자세한 것은 총무과’로 하듯이, 짧은 답글 뒤에 전화해 달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러다 생각해 낸 이철수의 방식이 ‘나뭇잎 편지’였다.

엽서 형태로 그리고 글을 담아 엽서를 신청한 회원들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저녁마다 하나씩 작업해서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보내면 그이가 메일링한다. 매일같이 꼬박꼬박 그리고 써서 보내는 엽서를 받아보는 회원들이 지난 8년동안 6만4천여 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관심을 끌었던 셈인데, 그래서 홈페이지 방문자가 하루 4천명 정도 되지만, 여전히 소통불능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댓글을 남기는 이는 하루 2명에서 20명 수준을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사랑방처럼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일방적으로 엽서를 보내고 독자들은 남이 쓴 이야기를 들여다보지만 정작 자신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는 ‘과묵한’ 손님 뿐이다. 듣자하니, ‘주인이 너무 꼬장꼬장할 것 같아서..’ ‘잡글을 올리기 부담스러워서,,’라는 반응도 나왔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내가 유머가 없어서일 것이다. 너무 차분해서 만만하게 대들지 못하는 것이다. 내 성격이 그러니 변하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스스로 안타깝다.”

이철수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인 소셜네트워크시스템이라는 ‘SNS’를 한글자판에서 치다가, 우연히 그게 ‘눈’이란 글자로 찍힌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본다’는 게 없으면 소통이 안 되지.” 이철수는 주고받는 이야기를 넘어서 세상과 존재를 살피는 ‘눈’을 얻고자 한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바깥과 내면을 내가 어떤 눈으로 살피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 보는 세계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보는 게 ‘소통’이다. 여전히 ‘개인응접실’ 같은 ‘이철수의 집’(http://www.mokpan.com/)이다. 그래도 눈 밝은 이들이 찾아와 노닐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버리지 못하는 이가 이철수다.

   
▲ 그저녁 일월곤륜도, 1993, 이철수 작


농사로 마음밭 갈기

이철수는 민중미술을 한 30년 했다. 그래서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외면하지 못한다. 나와 사회와 우주가 씨줄날줄처럼 촘촘히 판화에 인생에 새겨져 있다. 이철수의 판화에는 별이며 꽃이며, 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25년 전에 귀농해 박달재 밑에서 농사지은 탓이 크다. 늘 보고 듣는 게 생각에도 그림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박달재 아래로 들어가면서 투쟁의 현장을 떠난다는 느낌 때문에 오래 번민했다. ‘너무 이른 귀농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오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좋다. 얼마 전 박용길 장로의 조문을 다녀오는 길에, 새벽 2시경, 집 앞에 닿아 대단한 광경으로 떠오른 하늘의 별을 보았다. 별이 들꽃만하게 보이지만, 우주는 훨씬 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의 긴장 속에서 우주의 얼개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중 하나의 행성에 살고 있다. 그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찰나 같은 생애를 살고 있는지, 그런데도 쓸데없이 사소한 일로 다투고... 그 순간 내 삶이 초라하고 누추해 보였다.”

이철수는 그림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다투다가도 밭에서 일하다보면 어느덧 들끓던 마음 속 생각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내 농사가 내 (마음)공부”인 셈이다. 하룻일을 마치고 외발수레를 끌 힘만 남아서 돌아오는 저녁 무렵, 간간이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을 보면 “해 있는데 달이 뜬다”라는 판화에서 표현한 것처럼 주변야산이 황제의 병풍인 ‘일월곤륜’(日月崑崙) 같다. “이 순간이 내 삶의 절정”이라는 느낌이 밀려든다. “하늘아래 더 바랄 게 없다”는 심정이다. 이철수는 이 순간을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자빠졌다 일어나 새사람이 되었을 때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이런 순간에 자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서 있다는 느낌이다.

주변에선 “작가라서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 아닌가?” 묻지만, 대지와 교감하는 순간을 황홀하게 느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며, “농부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말한다. 농부를 ‘촌무지렁이’ ‘농투성이’로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는 것이다. “농사도 욕심으로 지으면 소용없다. 농사도 공부로 보아야 한다. 농사를 생업으로만 보는데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 길이 멀지요, 2002, 이철수 작.

미숙했던 시절조차 지금의 ‘의미 있는 나’를 이룬다

이철수는 농촌에 살지만, 그렇다고 농촌문제를 표피적으로 다루길 거부한다. 예술은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도구나 수단을 넘어서야 한다.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 정신적 고양과 영적 정화를 이루고, 그걸 아울러서 ‘아름다움’으로 제시할 줄 알아야 예술이라는 말이다. 이철수는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때로 하늘과 자연을 향해 돌아앉는 것은 탐욕과 차별로 문제 많은 세상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화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보고는 화를 낸다. 그래서 사람관계가 우리에겐 제일 중요하다면서,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자연스레 사회, 정치 현실에서도 지혜를 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놓으면 돌담이 위태로워지듯이, ‘무상급식’ 논쟁과 관련해 자식에게 상처받지 않고 밥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답이 확연하다고 말한다.

또한 내 인생에서 잘한 짓을 통해서든, 미숙했던 시절의 상처를 통해서든 그게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지금의 나’를 결론짓는다고 전했다. “현재 내 존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모든 것이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깊은 마음자리가 하나가 온전해지면 나 자신의 상처나 사회적 논란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이철수의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회적 참상과 불의를 대면하면서 분노보다는 “어쩌다 거기까지 갔니?”라고 여기는 마음이 먼저라는 이철수는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어머니처럼, 싸워도 어머니처럼 잘 싸워야 한다. 매일 미워하며 지치기보다 ‘때가 되면 감이 떨어지듯이’ 화끈하게 싸우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자신이 ‘남에게 험한 소리 듣지 않고 사는 게 다 아내 덕분’이라며,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라고 권한다. 이철수는 언젠가 아내가 무를 밭에서 뽑아 와서 김치를 담그는 저녁에 엽서를 쓰며 “...그러면 너는?”하고 물었다. 이철수는 이 이야기 끄트머리에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헌정하듯이 그린 판화 한 점을 소개했다. 이파리가 흩날리는 큰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는 두 남녀의 그림이다. 여기서 남자가 말한다. “길이 멀지요?” 여자가 답한다. “괜찮아요.” 아내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판화에 담았다. 그리고 20년 전 신혼여행 갔던 시골집에 찾아가 이미 이승을 떠난 집주인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 쇠락한 집 앞에서 사진을 박았다.

이어 이철수는 새우젓 팔아 몇 십억을 대학에 기부했다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 등을 거론하며, 우리 사회의 진보단체들이 하나같이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내가 던진 한 마디, “이철수가 감동있게 살아보시지 그래!”였다. 반려자는 동행이면서 동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분명한 ‘선의의’ 채찍질이다.

강연 끝자락에 받은 질문에 답하며, 이철수는 종교와 영성이 ‘다름’을 언급했다. “영성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가 문제”라는 말이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보고, 사찰을 통해 불교를 보는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사유화되고 권력화되어서 문제지만, 영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주인도 자취도 없이 차별을 넘어 화해를 가능하게 이끈다. 여기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끈덕지게 진리와 지성의 편에 서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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