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성 선생의 슬라이드 사진으로 보는 ‘잊혀진 노동자의 역사’

인권연대 편집부

 박준성 선생(역사학 연구소 소장)은 커다란 등산용 가방을 매고 나타났다. 슬라이드를 볼 환등기가 든 가방이었다. 꽤 무거워보였다. 요즘엔 어딜 가나 빔 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을 담은 USB 한 개면 충분할텐데도, 그는 환등기를 고집했다. 환등기로 봐야 질감이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거 였다. 마침 강의가 있었던 날은 ‘밤엔 잠 좀 자자’며 파업 중인 유성기업 노조 파업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예정된 날이었다. 하루 종일 파업 현장에서 그 무거운 가방을 매고 있었단다. 운전면허도 없기에 무거운 가방을 매고 대중교통수단에만 의지해야 한단다.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이렇게 무거운 짐을 기꺼이 맨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에 우리가 산다.  

 무거운 환등기를 챙겨 다니는 이유에 대해 박준성 선생은 루쉰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 유학 시절, 루쉰은 환등기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루쉰은 그의 첫 소설집 <눌함> 서문에, 왜 의학공부를 포기했는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당시, 오랫동안 나는 중국 동포들을 만나지 못했다. 어느날 모처럼 중국인들을 슬라이드에서 보았다. 중국인 한 명이 손을 뒤로 묶인 채, 사진의 중앙에 있었고, 다른 중국인들을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그들은 튼튼하고 건강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통해 너무 명백하게 그들이 정신적으로 둔감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손을 뒤로 묶인 중국인은 러일전쟁 중에 일본국을 염탐한 혐의로, 곧 본보기로 참수형을 당할 예정이었다. 그를 둘러싼 중국인들은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동포 중국인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무감각하게 그 장면을 즐기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루쉰에게 충격이었다. 육체적 질병을 고치기보다, 중국인의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게 더 급선무라고 생각한 루쉰은 단박에 의학공부를 중단해버렸다.

 이렇게 슬라이드 사진 한 장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에, 박준성 선생은 슬라이드 사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의 때 그는 모두 200여장의 슬라이드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나 하나는 모두 잊혀져선 안되는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주인공이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척박한 일제시대였던 1931년 5월,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던 장주룡이 있었다. 똥물을 뒤집어 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도 거기 있었다.

 전태일이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전태일을 역사로 불러낸 사람들 때문이었다. 변호사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을 썼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지금껏 아들의 몫까지 다하겠다며, 운동의 전선을 지키고 있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의 기억을 지배하는 자가 오늘의 역사를 주도한다.” 사심(私心)없는 지도자 박정희의 노고 때문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은 그 시대를 떠받쳤던 숱한 노동자들의 삶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역사의 주역들을 꾸준히 불러내는 한편, 지금 여기의 일과 사람들을 부지런히 기록하고, 역사에 남기지 않는다면, 잘못된 역사는 끝없이 이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86차 수요대화모임(2011.05.25) - 박준성(역사학 연구소 소장)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5월 초대 손님은 역사학 연구소의 박준성 소장님입니다.

 박준성 선생은 역사상 교과서조차 외면하는 노동운동사와 노동운동의 주요 인물들의 활동을 풍부한 슬라이드로 보여줄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서의 선배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곧 ‘잊혀진 노동자의 역사’가 ‘지금 여기’의 우리들의 삶을 비춰보는 좋은 거울이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85차 수요대화모임(2011.04.27) 정리 -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이 인간다운 세상 앞당기는 마중물 되길”

인권연대 편집부

 4월 <수요대화모임> 초대 손님은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이었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 쌍용차만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능교육 등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제 몫의 십자가가 무겁다는데도 그는 남의 고통에 대해 연대하려고 했다. 이창근 실장은 이런 강의가 처음이었다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 그를 통해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배웠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강의에서 몇 가지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가 스마트 폰으로 촬영한 영상에는 노동자들의 ‘거리 선전’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희망을 찾았다. 이웃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제 갈 길만 재촉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그가 찾은 희망의 근거는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

 이창근 실장은 쌍용자동차 관련 싸움을 하면서도, 굳이 짬을 내 재능교육 농성장이나, 동희오토 농성장들을 찾았다. 한사람의 연대가 아쉽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아쉬워, 자신이라도 고초를 겪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었단다. 연대와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기에 자신이 먼저 연대의 손실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

 쌍용자동차 사태(2009년)의 결과는 참담했다. 그동안 14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월간 <인권연대> 인쇄를 맡기는 날에도 또 한명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젠 15명이 되었다.

 이창근 실장은 어떤 배우의 죽음, 잇따르는 카이스트 학생의 죽음, 또는 어떤 농민의 죽음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죽음들은 별개의 죽음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 노동자들은 이미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끝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랬다. 사회보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해고는 가계 부채의 증가, 빈곤층으로의 전락, 그리고 가정의 파괴로 이어졌고, 죽음은 마치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따라 붙었다.

 만약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이 아니라도 가족들과 함께 가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면, 다른 회사들이 쌍용자동자 출신 노동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서 취업의 기회를 막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 사회가 실업 상태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사회였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비슷한 일은 곳곳에서 반복된다. 그래서 이창근 실장이 고른 강연 제목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 쌍용차만이 아니다”는 너무 정확한 현실의 반영이었다.

 오늘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곧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지만, 내일은 또 다른 사업장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거다.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에 기댈 게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민과 함께하는 건강한 투쟁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을 투쟁하는 노동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4월 초대 손님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이창근 기획실장님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습니다. 노조는 대규모 구조 조정에 맞서 77일간 힘겨운 투쟁을 벌였지만 공장 밖으로 쫓겨났고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위로는커녕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조조정 이후 해고 또는 무급휴직에 들어간 노동자와 가족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4월 수요대화모임에서는 이창근 기획실장님을 모시고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 쌍용차만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3월 초대 손님은 소설가 서해성님입니다.

 “시대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진짜 칼럼”이라고 평가받으며 통쾌하면서도 솔직한 인터뷰가 돋보이는 <한겨레>의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이하 직설)을 진행하고 있는 서해성님을 모시고 '서해성이 직설로 만난 사람들 - 누굴 만났나'라는 주제로 직설을 통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11월 초대 손님은 평화박물관의 주진우 사무처장입니다.

 예술, 문화를 매개로 평화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평화박물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진우 사무처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평화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를 꾸준히 진행하고 계십니다. 책을 통해 아이들과 평화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10월 초대 손님은 군사평론가이며, 군사전문지 ‘D&D 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입니다.

 매년 막대한 국방비를 쓰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천안함 사태를 봐도 그렇고, 무작정 병사들의 의무복무기간을 늘린다는 것도 그렇고, 영 신통한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전후방 각지에서 장병들이 고생한다는 이유만으로 군대가 더 이상 성역일 수는 없습니다. 국방시스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국민을 위한 개혁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인권연대가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저녁에 여는 <수요대화모임>의 9월 손님은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입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강수돌 교수는 ‘돈의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주로 노동자의 삶의 질과 생활을 규정짓는 생태의 문제와 함께 노동의 조건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저서로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나부터 마을혁명』『살림의 경제학』『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지구를 구하는 경제책』『나부터 교육혁명』 등이 있습니다.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의 관점에서 사회와 삶을 바라보고 ‘아래로부터의 시각’으로 이웃과 역사를 바라볼 때 희망이 열리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도 올 것이라 믿고 있는 강 교수와 함께 우리 사회 인권의 모습을 살펴보고 희망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