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사회 건강보고서 - 인권

2011년 한국사회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인권단체들이나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부분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각국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한국은 2007년 39위에서 2008년과 2009년 각각 47위, 69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42위로 다소 상승했다. 지난 5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프랑크 라뤼 유엔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최근 몇 년간, 특히 2008년 촛불시위 이후로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2011 연례보고서>에서 “정부는 계속해서 평화적으로 시위할 자유를 억압했다”며 “표현과 결사, 집회의 자유가 제약받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촛불시위 강경 대응,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사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국정원 기소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시위 제한 등이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사례로 꼽혔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51)은 “민간인 사찰, 시청광장 봉쇄, CCTV 확대설치 등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압받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 영역만 봐도 현재 한국의 인권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사업실장(39)도 “국제사회가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것은 근 10년 만이다. 그만큼 그 문제가 악화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영역 이외에도 ‘이주민 인권’도 한국사회의 과제로 떠올랐다. 인종과 종교, 출신 국가, 민족,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된 진정 건수는 지난 2005년 32건에서 2010년 64건으로 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여성과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도 인식의 변화는 있지만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과 ‘국가보안법 폐지’, ‘사형제 폐지’ 등은 사회적 논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8일 한국은 사형집행중단 5000일을 맞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자살률, 여성의 사회진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 등 모든 게 인권의 영역”이라며 “인권은 개인이 얼마만큼 행복한가의 문제인데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엉망”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8일 우리함께빌딩 대교육장에서 88차 수요대화모임 강사로 나선 이철수 목판화가는 매일 한통 씩 온라인으로 전송하던 ‘나뭇잎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철수는 화가로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서 8년전부터 ‘이철수의 집’이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나뭇잎 편지’를 회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철수는 매일 하루 일을 마치면서 쉴 참으로 마음밭을 정리할 참으로 순식간에 엽서 크기로 그림과 글을 새로 올려놓고는 잠자리에 들어간다. 벌서 8년째 이루어진 이 편지들이 모여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 매일 저녁 꼼꼼히 적은 글과 상큼한 그림을 엽서에 담아 세상에 띄우는 목판화가 이철수.

‘이철수의 집’ 아날로그에서 인터넷으로

목판화가는 나무판을 사서 켜고 말리고 대패질한 뒤에, 그림을 붙이고 칼질을 해서 손으로 판화를 찍어낸다. 농사일처럼 이 작업도 그야말로 ‘아날로그’다. 그가 대중과 만나는 방식 역시 아날로그라 할 수 있는데,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고 직접 청중과 면대면하며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인터넷환경이 마련되면서 더 많은 대중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지만, 처음엔 인터넷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것을 자못 주저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투항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오프라인만이 제대로 된 공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오프라인을 고수하다 장렬히 전사할지 온라인으로 변신할지 고민했다. 당시 온라인 공간을 살펴보면 대개 선정적으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사막 같은 온라인 공간에 오아시스 같은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네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자고 나 자신에게 세뇌시켰다. 인터넷도 ‘하기 나름’이라며 그렇게 2-3년 동안 고민하다 드디어 홈페이지를 만들기고 작심했다.”

   
▲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는 그동안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가만 가만 사랑해야지> 등 6권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의 홈페이지를 엿보기 시작했는데, 그 홈페이지가 화려하든 소박하든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주변에서 홈페이지가 계속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는 조언도 주었다. 올려놓은 그림에 반응이 있으면 가끔 몇 줄이라도 답글을 달곤 했는데, 워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자세한 것은 총무과’로 하듯이, 짧은 답글 뒤에 전화해 달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러다 생각해 낸 이철수의 방식이 ‘나뭇잎 편지’였다.

엽서 형태로 그리고 글을 담아 엽서를 신청한 회원들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저녁마다 하나씩 작업해서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보내면 그이가 메일링한다. 매일같이 꼬박꼬박 그리고 써서 보내는 엽서를 받아보는 회원들이 지난 8년동안 6만4천여 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관심을 끌었던 셈인데, 그래서 홈페이지 방문자가 하루 4천명 정도 되지만, 여전히 소통불능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댓글을 남기는 이는 하루 2명에서 20명 수준을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사랑방처럼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일방적으로 엽서를 보내고 독자들은 남이 쓴 이야기를 들여다보지만 정작 자신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는 ‘과묵한’ 손님 뿐이다. 듣자하니, ‘주인이 너무 꼬장꼬장할 것 같아서..’ ‘잡글을 올리기 부담스러워서,,’라는 반응도 나왔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내가 유머가 없어서일 것이다. 너무 차분해서 만만하게 대들지 못하는 것이다. 내 성격이 그러니 변하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스스로 안타깝다.”

이철수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인 소셜네트워크시스템이라는 ‘SNS’를 한글자판에서 치다가, 우연히 그게 ‘눈’이란 글자로 찍힌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본다’는 게 없으면 소통이 안 되지.” 이철수는 주고받는 이야기를 넘어서 세상과 존재를 살피는 ‘눈’을 얻고자 한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바깥과 내면을 내가 어떤 눈으로 살피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 보는 세계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보는 게 ‘소통’이다. 여전히 ‘개인응접실’ 같은 ‘이철수의 집’(http://www.mokpan.com/)이다. 그래도 눈 밝은 이들이 찾아와 노닐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버리지 못하는 이가 이철수다.

   
▲ 그저녁 일월곤륜도, 1993, 이철수 작


농사로 마음밭 갈기

이철수는 민중미술을 한 30년 했다. 그래서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외면하지 못한다. 나와 사회와 우주가 씨줄날줄처럼 촘촘히 판화에 인생에 새겨져 있다. 이철수의 판화에는 별이며 꽃이며, 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25년 전에 귀농해 박달재 밑에서 농사지은 탓이 크다. 늘 보고 듣는 게 생각에도 그림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박달재 아래로 들어가면서 투쟁의 현장을 떠난다는 느낌 때문에 오래 번민했다. ‘너무 이른 귀농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오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좋다. 얼마 전 박용길 장로의 조문을 다녀오는 길에, 새벽 2시경, 집 앞에 닿아 대단한 광경으로 떠오른 하늘의 별을 보았다. 별이 들꽃만하게 보이지만, 우주는 훨씬 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의 긴장 속에서 우주의 얼개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중 하나의 행성에 살고 있다. 그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찰나 같은 생애를 살고 있는지, 그런데도 쓸데없이 사소한 일로 다투고... 그 순간 내 삶이 초라하고 누추해 보였다.”

이철수는 그림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다투다가도 밭에서 일하다보면 어느덧 들끓던 마음 속 생각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내 농사가 내 (마음)공부”인 셈이다. 하룻일을 마치고 외발수레를 끌 힘만 남아서 돌아오는 저녁 무렵, 간간이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것을 보면 “해 있는데 달이 뜬다”라는 판화에서 표현한 것처럼 주변야산이 황제의 병풍인 ‘일월곤륜’(日月崑崙) 같다. “이 순간이 내 삶의 절정”이라는 느낌이 밀려든다. “하늘아래 더 바랄 게 없다”는 심정이다. 이철수는 이 순간을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자빠졌다 일어나 새사람이 되었을 때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이런 순간에 자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서 있다는 느낌이다.

주변에선 “작가라서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 아닌가?” 묻지만, 대지와 교감하는 순간을 황홀하게 느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며, “농부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말한다. 농부를 ‘촌무지렁이’ ‘농투성이’로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는 것이다. “농사도 욕심으로 지으면 소용없다. 농사도 공부로 보아야 한다. 농사를 생업으로만 보는데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 길이 멀지요, 2002, 이철수 작.

미숙했던 시절조차 지금의 ‘의미 있는 나’를 이룬다

이철수는 농촌에 살지만, 그렇다고 농촌문제를 표피적으로 다루길 거부한다. 예술은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도구나 수단을 넘어서야 한다.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 정신적 고양과 영적 정화를 이루고, 그걸 아울러서 ‘아름다움’으로 제시할 줄 알아야 예술이라는 말이다. 이철수는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때로 하늘과 자연을 향해 돌아앉는 것은 탐욕과 차별로 문제 많은 세상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화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보고는 화를 낸다. 그래서 사람관계가 우리에겐 제일 중요하다면서,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자연스레 사회, 정치 현실에서도 지혜를 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놓으면 돌담이 위태로워지듯이, ‘무상급식’ 논쟁과 관련해 자식에게 상처받지 않고 밥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답이 확연하다고 말한다.

또한 내 인생에서 잘한 짓을 통해서든, 미숙했던 시절의 상처를 통해서든 그게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지금의 나’를 결론짓는다고 전했다. “현재 내 존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모든 것이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깊은 마음자리가 하나가 온전해지면 나 자신의 상처나 사회적 논란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이철수의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회적 참상과 불의를 대면하면서 분노보다는 “어쩌다 거기까지 갔니?”라고 여기는 마음이 먼저라는 이철수는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어머니처럼, 싸워도 어머니처럼 잘 싸워야 한다. 매일 미워하며 지치기보다 ‘때가 되면 감이 떨어지듯이’ 화끈하게 싸우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자신이 ‘남에게 험한 소리 듣지 않고 사는 게 다 아내 덕분’이라며,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라고 권한다. 이철수는 언젠가 아내가 무를 밭에서 뽑아 와서 김치를 담그는 저녁에 엽서를 쓰며 “...그러면 너는?”하고 물었다. 이철수는 이 이야기 끄트머리에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헌정하듯이 그린 판화 한 점을 소개했다. 이파리가 흩날리는 큰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는 두 남녀의 그림이다. 여기서 남자가 말한다. “길이 멀지요?” 여자가 답한다. “괜찮아요.” 아내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판화에 담았다. 그리고 20년 전 신혼여행 갔던 시골집에 찾아가 이미 이승을 떠난 집주인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 쇠락한 집 앞에서 사진을 박았다.

이어 이철수는 새우젓 팔아 몇 십억을 대학에 기부했다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 등을 거론하며, 우리 사회의 진보단체들이 하나같이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내가 던진 한 마디, “이철수가 감동있게 살아보시지 그래!”였다. 반려자는 동행이면서 동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분명한 ‘선의의’ 채찍질이다.

강연 끝자락에 받은 질문에 답하며, 이철수는 종교와 영성이 ‘다름’을 언급했다. “영성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가 문제”라는 말이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보고, 사찰을 통해 불교를 보는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사유화되고 권력화되어서 문제지만, 영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주인도 자취도 없이 차별을 넘어 화해를 가능하게 이끈다. 여기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끈덕지게 진리와 지성의 편에 서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뉴 캅스-수사 버전을 올려라] “신변안전·인센티브 확신줘야”
(1부) 피의자에서 피해자 중심의 수사로 ② 신고가 두렵다

신상노출과 보복범죄 등 신고자에게 돌아오는 2차 피해가 ‘신고정신’을 좀먹고 있다. ‘신고했다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온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범죄 피해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도 신고를 쉬쉬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고가 두려운 사회’가 될 경우, 범죄현장을 목격하고 외면하게 되는 등 우리사회의 질서가 급격히 불안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신고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경찰 조사에서 이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행렬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신고를 꺼리게 만드는 주된 이유”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경찰에 범죄사실을 신고해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피해가 미미한 절도사건이나 경미한 범죄의 경우에는 신고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또 “경찰에 신고하면 사소한 범죄라도 의지를 갖고 해결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 인력을 증원하는 등 현실적인 대안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인력충원 뒷받침 돼야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현재와 같이 신고자 보호 장치가 매우 부족한 실정에서는 신고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수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센티브를 강화, 신고에 대한 유인 동기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수사매뉴얼·보상체계 강화를”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신고정신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고에 따르는 불편함을 없애고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학파라치·카파라치 같은 제도들도 포상금으로 신고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라면서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경찰이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 목격자와 신고자를 만나는 등 신고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의 제보를 받습니다]

서울신문은 ‘뉴 캅스(New Cops), 수사버전을 올려라’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경찰 수사로 피해를 입었거나 비리 등을 목격한 독자의 제보를 받습니다. 사회부 경찰팀(전화 02-2000-9172~6) 또는 white@seoul.co.kr로 연락 바랍니다.


[뉴 캅스-수사버전을 올려라] 고발장 받고도 임의파기… 청소년 윽박질러 진술 받기도
(1부) 피의자에서 피해자 중심의 수사로 ①경찰 수사의 실태·현황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57년 만인 지난 6월, 경찰의 숙원인 ‘수사 개시권’이 명문화됐다. 검사 지휘에 관한 구체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는 ‘수사권 조정 2라운드’ 싸움 역시 불과 2개월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서울신문은 독자적인 수사주체로 처음 인정을 받은 경찰이 현장에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고, 얼마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힘을 쏟았고 쏟고 있는지 등을 살필 계획이다. 또 신고·수사 절차에서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 부족한 시스템 등 수사 전반을 둘러싼 고질적인 병폐와 문제점, 원인을 짚고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사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뉴 캅스(New Cops), 수사버전을 올려라’라는 시리즈는 크게 ▲피의자에서 피해자 중심의 수사로 ▲과학적 수사가 해답이다 ▲국민의 경찰로 가는 길 등으로 나눠 다룰 예정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인권연대·경찰대·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로 ‘전문 자문단’을 구성, 조언을 들었다. white@seoul.co.kr로 제보 및 의견을 받는다.

●자문단=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행렬(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유정현(한나라당 의원), 이동희(경찰대 법학과 교수),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표창원(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특별취재팀=백민경, 이영준, 윤샘이나, 김진아기자


경찰은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121건의 시정권고를 받았다. 권익위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과실과 인권침해, 직권남용 등 부당함이 인정돼 개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것이다. 시정권고 처분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과정과 태도 등에 부당함을 느낀 국민들의 민원 신청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공공질서 유지에 힘써야 할 경찰이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익위 시정권고 현황을 중심으로 경찰의 불합리한 수사관행과 수사상 과실로 국민들이 입은 피해사례를 살펴본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6시간 방치 60대 남성 결국 숨져

2006년 12월 초. 112신고센터에 경북 포항시 항구우체국 앞에 한 60대 남성 A씨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A씨를 발견했을 때 다행히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비까지 내린 혹독한 겨울 날씨에 몸은 이미 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병원이 아닌 지구대로 데려갔다. A씨는 그 뒤로 차가운 지구대 의자 위에서 6시간 이상 방치됐다. 평소에도 술에 취해 지구대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의식을 잃은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항의하는 유족에게 경찰은 “주취자의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형식적인 해명을 했다. 그러나 지구대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경찰의 잘못된 대처가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은 A씨에게 냄새가 난다며 신문지로 얼굴과 가슴 쪽을 덮고, 가슴을 발로 차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폭행사실 등 과오를 시인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해당 경찰서에 대해 ‘보호조치 대상자 처리매뉴얼 위반’에 대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사적인 용도로 개인정보 조회

경찰이 수사상의 필요에 의한 것처럼 속여 자신과 민사소송 중인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한 직권남용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 사는 한 40대 남성 B씨는 사적인 이유로 서울의 한 경찰서에 재직 중인 C경감과 민사소송을 진행하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C경감이 B씨 가족의 주민번호와 은행계좌정보 등 개인정보를 재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C경감은 B씨 가족의 은행 계좌가 개설된 지점, 이사를 간 시점까지 세세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권익위의 조사결과 C경감은 수사과정상 필요한 정보라며 수개월 동안 B씨의 거주정보를 조회해 오고 있었다. C경감은 또 은행 콜센터에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히며 B씨 가족의 개인정보를 요청했다. 권익위는 당시 C경감이 소속된 경찰서에 시정권고를 내렸고 C경감은 경찰 내부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돼 감봉조치를 받았다.

●청소년·장애인 등 인권보호 뒷전

인천에 사는 중학교 3학년생 D군은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권익위에 진정서를 냈다. D군은 이른바 ‘일진회’ 멤버로 인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500만원을 빼앗는 등 상습공갈 및 협박, 특수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경찰 조사과정은 문제투성이였다. 겁에 질린 D군을 윽박질러 진술을 하게 하는가 하면 늦은 시간 조사가 끝난 뒤 차비도 없는 D군을 혼자 돌려보냈다. 경찰은 보호자나 변호인이 입회했을 때만 청소년을 조사할 수 있다는 범죄수사규칙을 위반해 결국 D군의 진술은 모두 효력이 없게 됐다. 이 밖에도 경찰은 D군에게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교도소 간다.”라고 겁을 주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밤 9시에 조사를 마칠 때까지 밥도 주지 않았다. 권익위는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에 대해 욕설과 폭언을 하고 인권보호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경찰에게 시정을 권고했다. 해당 경찰들은 자체적으로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견책처분을 받기도 했다.

●“내 업무 아냐”… 수개월 기다려야

경찰이 수사를 오랫동안 지연시켜 공소시효가 지나 버리는 등 수사 지연과 업무태만도 도마에 올랐다. 경남 통영시의 한 어촌마을에 사는 70대 노인 E씨는 마을에 조직된 어촌계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마을사람들과 불화가 있었다. E씨는 경찰서에 마을사람 중 한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어업피해 보상과 관련한 어촌계 내부의 비리를 알고 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담당경찰은 비리사건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면서 담당자를 찾아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E씨가 고발장을 제출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B씨가 6개월 뒤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그제서야 “고발장이 제대로 접수되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화가 난 B씨는 고발장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경찰은 “문서를 이미 파기했다.”며 사과했다. 권익위는 경찰이 제출한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하지 않고, 임의로 없애 범죄수사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전남 여수의 한 어촌계장이 6년간 저질러 온 임대료 횡령, 편취 등의 각종 범죄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해 공소시효를 넘기게 한 경찰도 있었다. 마을 주민 F씨는 어촌계장이 6년간 공동어업권을 무단으로 빌려주고 임대료를 횡령하거나 여수 인근의 무인도인 수리섬의 소유권 이전을 두고 돈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며 어촌계장을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관은 수수방관했다. 특히 경찰은 어촌계장의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탓에 지난해 6월 공소시효가 지났다.

●접수하면 신고자 보호 나 몰라라

경찰은 사건의 신고자, 목격자 등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해 오히려 이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도 포함됐다. 40대 남성 G씨는 길거리에서 폭행사건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가 되레 봉변을 당했다. G씨는 그날 경기도 부천에 일을 보러 갔다가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길거리에서 여성을 마구 때리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 잠시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방금 전까지 때리고 맞던 남성과 여성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맞던 여성은 경찰에게 자신을 때린 사람은 G씨라며 거짓말을 했다. 여성이 막무가내로 우기는 통에 경찰도 G씨를 폭행 피의자로 생각하고 남녀와 함께 경찰차 뒷좌석에 태웠다. 다행히 현장을 떠나기 직전 또 다른 목격자가 “때린 사람은 G씨가 아니라 다른 남자”라고 진술해 오해는 풀렸지만, 경찰이 목격자 진술을 듣기 위해 차에서 내린 사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던 남녀는 G씨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리며 분풀이를 했다. G씨는 사건을 신고하고도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됐다. 권익위는 “경찰이 신고자 보호에 소홀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피해를 입혔다.”고 시정권고했다.


심해지는 인권유린: 인권침해 상담사례 급증세… 4년동안 3배 가까이 늘어
■교도소보다 열악해: 아동 생활시설 등 학대 만연… 장애인 48% 폭력경험 응답
■사유화되는 시설들: 감독관청·수사기관 무관심… 강제노동·수익횡령 등 은폐
  • 인화학교에서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시야를 아동·장애인·노인 보호시설과 정신병원 등 ‘사회적 약자’가 생활하는 다른 보호시설 전체로 넓히면 이 같은 인권유린은 인화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다수인 보호시설과 관련한 인권 침해 상담은 2007년 1381건에서 2008년 1996건, 2009년 2623건, 2010년 325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진정 접수 역시 2007년 586건이던 것이 지난해 1372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장애차별금지법 시행으로 장애인이 인권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 커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파른 증가세다.

    특히 인권위가 다수인 보호시설을 조사한 뒤 형사고발조치까지 이른 것은 49건으로, 인권위 전체 고발(63건)의 73%에 달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다른 기관의 인권 침해가 ‘단발적’인 경우가 많다면, 시설에서는 ‘반복적·구조적’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라며 “상당수 시설이 입·출소가 자유롭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탓에 사건 은폐도 상대적으로 쉽다”고 설명했다.

    2006년 인권위 직권조사 후 학교 관계자 6명을 강간과 성추행 혐의로 고발조치했던 인화학교 사건도 마찬가지다.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에서는 2004년 12월 학교장과 행정실장이 일부 학생들을 교장실과 기숙사 등지에서 성폭행하는 등 2000∼05년 이 학교와 부속 복지시설인 인화원의 교직원 6명이 학생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고 인척들이 근로시설장과 인화원장 등 요직을 독차지하는 등 사실상 ‘족벌 경영’을 하면서 사건이 오랫동안 은폐됐다.

    보호시설은 폭행·감금이나 강제노동 등의 인권침해에서도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 인권위가 지난해 6월 검찰에 고발한 장애인시설장 최모씨는 생활인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제공하거나 임의로 묶어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설 수입 4억4670여만원 중 4억3700만원을 임의로 사용하고, 이 중 1억1300만원은 배우자 용돈이나 자녀 학원비 등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또다른 장애인시설장 김모씨는 쇠자나 나무 몽둥이, 빗자루 등으로 장애인을 때린 사실이 드러나 올해 3월 검찰에 고발됐다. 시설 리모델링 공사 때에는 아예 생활인들에게 시멘트와 벽돌까지 강제로 나르게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005년 전국 장애인 시설 22곳에서 생활인 281명을 심층면접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응답자의 48%가 시설 내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책임자였던 한신대 남구현 교수(사회복지학)는 “일상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교육권, 생활권이 확보되지 않고 시설 수용 위주로만 정책기조가 흘러가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며 “소득공제 범위를 넓히는 등의 방식으로 후원금 제도를 활성화해 후원자들이 직접 기부하고 감시·통제하는 투명한 운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 일명 ‘도가니 방지법’ 제정에 나섰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시설이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감독관청이나 관련 기관의 관심 부족 탓”이라며 “지금 있는 제도만 잘 지켜도 시설 생활인 인권문제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경찰서 ‘유치장 견학’
12차례 760명 다녀간 곳도
“뭘 배우라는 건지…” 비판

» 지난 16일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아산경찰서 유치장에 직접 들어가 경찰관한테서 설명을 듣고 있다. 충남 아산경찰서 제공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굳이 쇠창살 있는 곳에서 죄짓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나요?”

일부 경찰서가 견학을 온 어린이들을 유치장에 직접 데리고 들어가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경찰서장 등 간부들이 유치인 인권보호를 위해 유치장을 체험하는 적은 있었지만,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이런 체험을 하도록 한 것은 이례적이다.

21일 경찰과 어린이집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충남 아산경찰서는 지난 16일 관내 ㅅ어린이집 원생 30여명의 경찰서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4~7살 어린이들이 직접 유치장에 들어가보고 설명을 듣도록 했다. 아산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8월 말 인근 천안동남경찰서와 유치장이 통폐합되면서 아산서 유치장이 비어 있게 됐다”며 “이를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견학 온 어린이들에게 유치장을 체험하도록 하는 범죄예방교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동부경찰서도 지난 7월20일 오산시 ㅇ유치원 어린이 140여명을 상대로 유치장 체험행사를 했다. 이 경찰서는 ‘햇빛 드는 유치장’과 분홍색 철문·꽃그림 등으로 장식해 유치장 관리 우수 경찰서로 뽑히자, 이런 대민홍보 방침을 세웠다. 주민들은 물론 유치원생,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유치장 체험을 하도록 해 범죄예방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경찰서 쪽은 설명했다. 화성동부서에서는 12차례에 걸쳐 760여명이 유치장 체험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원중부경찰서도 지난 4월까지 유치원생들을 상대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직장인 허아무개(49)씨는 “좋은 곳을 보여주기에도 모자란 형편에 아이들을 유치장에 들여보내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아이들이 경찰서에 구금당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찌 알겠느냐”며 “단순한 호기심 충족에 불과할 뿐 교육적 효과가 과연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수원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유치원생들을 유치장 안에 가두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경찰서 견학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유치장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주는 차원의 체험행사였다”고 해명했다. 아산경찰서 쪽은 “유치장 체험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으면 이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전 수원/전진식 김기성 기자 seek16@hani.co.kr


개인정보보호법의 하위법령이 인권침해를 양산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조·정당 가입 여부 등 개인의 사상과 신념, 성생활을 포함한 건강정보 등 ‘민감정보’를 무차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이들 시행령은 오는 30일부터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등 각 기관들은 이에 따라 민감정보를 아무런 제한 없이 수집·이용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추게 돼 개인정보 제공자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21일 문화일보가 9월 말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입법예고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처리 근거법령 일괄정비를 위한 관세법 시행령 등 일부 개정령’안의 201개 조항을 분석한 결과, 36개 조항에서 민감정보를 요구·이용할 수 있음을 못박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4개 조항을 제외한 32개 조항은 민감정보를 제한하는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이들 32개 조항은 주로 경찰 업무와 복지 업무, 금융 업무 등과 관련돼 있다.

예를 들어 법령안의 83조 아동복지법 시행령의 경우 민감정보의 정의를 범죄경력만으로 제한하는 반면, 21조 범죄피해자보호법 시행령의 경우는 “‘개인정보보호법 23조의 민감정보’를 업무수행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민감정보 등을 처리할 수 있다”고만 규정해 민감정보에 대한 명확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민감정보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으로 상위법인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규정에 따른 민감정보를 모두 요구·이용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구잡이 개인정보 수집을 막겠다는 취지가 반영되지 않은 채, 관행이 그대로 법제화로 이어져 오히려 과거 잘못에 대한 법적인 방패막이를 갖게 된 셈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 꼭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만 민감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민감정보를 무차별로 요구·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령은 필요성과 최소성, 정당성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어 헌법에 위배되고 반인권적”이라며 “국가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있겠지만, 그럴 때도 반드시 필요 최소한의 범위로 요구내용을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성원기자 esw@munhwa.com

15일 밤 곽노현 교육감 석방 요구하던 1인시위자 남대문경찰서로 연행
법률 신고 대상은 2인 이상…경찰 “주변에 배열이 보이면 1인시위 아냐”

 


경찰이 1인시위를 하던 시민을 연행해 불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5일 밤 10시 곽노현 교육감의 석방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던 한서정 인뉴스 티비 대표를 체포했다. 한씨는 이날 서울 대한문 앞에서 ‘곽노현 교육감을 신뢰합니다’라고 쓰인 펼침막을 바닥에 깔고 촛불을 켜고 1인시위를 벌였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신고하지 않은 불법 집회라서 세 차례 해산 명령을 했는데 불응했다”며 “집시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인 시위는 신고 대상도 아니고 해산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광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신고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2인 이상일 경우”라며 “1인시위를 연행하는 것은 경찰의 직권남용이자 불법 체포·감금”이라고 밝혔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1인 시위라도 주변에 배열이 보이면 1인시위로 보지 않는다”며 “어제는 1인시위라고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대문경찰서에서 한씨를 접견한 한웅 변호사는 “당시 주변에 촛불인권연대 회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경찰의 집시법 관리지침을 고려해 20m 이상 떨어져 있었다”며 “경찰이 자의적으로 1인시위를 2인 이상으로 판단한다면 앞으로 일반 국민들이 구호가 적힌 옷을 입고다니는 것도 다 체포 대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1인시위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2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위라는 틀로 묶일 만한 의사연락을 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며 “단순히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고 주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1인시위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설혹 이들의 시위가 1인시위가 아니다 하더라도 미신고 집회만으로 해산하고 연행하는 것은 경찰의 권리남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집회 및 시위를 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경찰은 집회·시위의 불법성을 따지는 데 목적이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게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하급심 판례에서는 위험성이 없다면 단순히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집회를 해산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너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가볍게 판단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설사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시위로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무조건적으로 연행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집회 및 시위를 할 권리를 경찰이 너무 등한시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