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시위’ 발간 검찰의 ‘항변’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8월30일 촛불집회 수사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시위라고 규정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검.
<강윤중 기자>


지난 8월30일 검찰이 378쪽짜리 백서를 내놨다. 백서 제목은 ‘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시위사건’, 발행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제2부’다. ‘불법폭력시위사건’은 지난해 촛불집회를 가리킨다. ‘촛불집회=불법폭력 시위’라는 등식은 백서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전제다. 백서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촛불집회의 기억이 공안 검찰의 프리즘을 거칠 때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는지를 증언한다.

검찰은 촛불집회를 4기로 구분했다. 1기는 5월2일부터 5월23일까지, 2기는 5월24일부터 6월19일까지, 3기는 6월20일부터 6월29일까지, 4기는 6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다. 5월24일은 집회 참가자들이 처음 거리로 진출한 날이다. 6월20일은 정부가 쇠고기 수입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한 날이고, 6월30일은 검찰이 ‘전국부장검사회의’를 열고 엄단 방침을 밝힌 날이다.


“왜곡보도와 허위정보 확산이 원인”

검찰 구분에 따르면 1기는 집회가 ‘폭력 과격 양상 없이 대체로 평화적인 형태로 진행된’ 시기다. 2기는 ‘도로점거 및 폭력시위로 변질되기 시작한 시기’, 3기는 ‘상습시위꾼 중심으로 과격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기간’이다. 4기는 ‘엄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이 추진돼 실질적으로 촛불시위가 소멸’한 기간이다.

검찰은 “촛불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 폭력시위는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등 국가적으로 큰 폐해를 야기하였는 바, 앞으로 이와 같은 불법 폭력시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고 적법절차에 따른 평화적인 집회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자 본 백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도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탓인지 백서 곳곳에서 ‘자의적 해석’, ‘편파적 해석’, ‘음모론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어떤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공권력은 소통과 설득보다 진압과 기소를 통한 공포 분위기 조성에 매달렸다. 백서를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검찰은 촛불집회의 원인을 ‘일부 언론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왜곡보도’, ‘광우병에 대한 허위정보의 확산’, ‘촛불시위에 대한 위법성 인식 희박’, ‘국민대책회의의 조직적인 시위 주도’라고 규정했다. 언론의 왜곡보도와 인터넷을 통한 허위정보 확산이 시민들을 선동했고, 그 배후에는 준법의식이 희박한 시민들을 부추긴 국민대책회의가 있었다는 논리다. 사태의 도화선을 제공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도 원인에 포함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문제를 경시했다는 점은 빼놓았다.


지난해 6월2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밤 11시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검찰은 ‘일부 언론 왜곡보도’의 첫머리에 MBC ‘PD수첩’을 거명했다. “미국 도축장의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명확하지 않은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인간 광우병인 것처럼 보도하는 등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각주를 통해 ‘PD수첩’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 및 재판정에서 반론보도 및 정정보도 결정이 나왔다고 쓰고 따로 부록까지 할애해 ‘PD수첩’ 수사 결과를 자세하게 적시했지만 반대 의견은 다루지 않았다. 문제는 ‘PD수첩’ 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이 백서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 판단을 드러내는 것은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일부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증폭의 태도를 취했다는 견해도 제시”됐고 “일부 신문사의 경우… 대안 제시 없이 불안감만 심각하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면서 사태 확산의 책임을 언론보도 탓으로 돌렸다.

검찰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집시법상 야간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백서는 “서울중앙지법의 일부 재판부가 야간옥외집회 관련 위헌심판제청을 이유로… 재판진행을 지연하고 있음”이라면서 “사실 위헌심판제청된 부분은… 피고인들의 형량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임에도 장기간이 소요되는 헌법재판소 결정시까지 기일을 추정하여 공판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였음”이라고 적고 있다. 검찰은 이어 “개인적으로 법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시위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7단독 판사의 발언을 소개했다. 위헌심판 제청이 판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뤄져 공연히 재판 진행을 지연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자의적인 해석이다. 검찰은 또 “반면, 다른 재판부는 위헌심판 제청과 무관하게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현행 법률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고 썼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해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이메일을 통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17개 법원 판사들이 판사회의를 열어 재판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야간집회 위헌심판제청 강한 불만
 
편파적인 해석도 두드러진다. 특히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폭력 사례를 다루는 대목에서 그렇다. 검찰은 “촛불시위는 초기에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적으로 변질되어 갔음”이라고 지적하고 “시위대의 폭력은 6월 하순부터 최고조에 달하였고…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 행위도 서슴지 않는 양상에 이르렀음”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여경 폭행’, ‘까나리 액젓 분사’, ‘쇠구슬 새총 발사’, ‘경찰관 납치 폭행’, ‘염산 투척’, ‘경찰 버스 손괴 및 탈취’, ‘코리아나 호텔 난입’ 등을 주요 수사 사례로 꼽았다. 물론 이 사건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전경들의 폭력을 피해 버스 아래로 피한 20대 여성을 또다시 폭행한 사건 등 경찰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행사한 폭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6·10 촛불집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줄
김밥을 운반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검찰은 백서 내용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인용하는 데서도 편파적인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일부 언론이 촛불집회 때 폭력 행사자들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했다”고 지적하면서 각주를 통해 조선일보 3월11일자 기사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해당 기사의 결론은 “촛불시위를 전후해 정부는 ‘법질서 확립’을 외쳤지만 정작 불법을 단죄해야 할 사법부는 관대한 처벌로 일관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는 것이다. 진보매체의 기록은 편의적으로 인용했다. 검찰은 허위정보 확산이 촛불집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분석하고 “자극적인 구호와 주장이 시위현장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음”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자극적인 구호와 주장’의 사례로 ‘뇌송송 구멍탁’, ‘미친소 너나 먹어’ 같은 구호들을 지목하면서 경향신문사가 발간한 <촛불 그 65일의 기록>에서 참조했다고 각주에서 밝혔다. 본래 맥락과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 것이다.

수사 성과에는 일부 납득하기 힘든 대목들이 있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 등을 통한 법질서 확립 의지 천명’ 부분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16건 중 정의관념에 현저히 반하고 법질서 확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3건에 대해서는 보완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하였고, 그중 2건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13건에 대해 재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사건들이 구속 사안이 아닌 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얘기다. 또한 검찰은 “엄격한 법집행의 영향 등으로 약 2개월간 연일 개최되어온 대규모 불법 폭력시위는 점차 하강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음”이라면서 촛불집회가 잦아든 원인을 성공적인 검찰 수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잦아든 것은 집회가 3개월 가량 이어지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탓이 크다. 공권력의 대응으로 집회 참가자 수가 줄어든 건은 맞지만 이 또한 공권력의 현명한 대응 때문이라기보다 공권력의 폭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시민사회의 시각이다.


“불법·폭력 원인은 주도단체의 선동”
 

배후를 색출하고 일망타진하는 것은 과거 시국사건에서도 잘 드러난 공안 검찰의 특징이다. 이런 모습은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검찰의 태도에서도 여전하다. 검찰은 “촛불시위에서 시위대가 크게 증가하고 불법과 폭력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집회 주도 단체의 지속적인 선동”이었다면서 “검찰은 불법 폭력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을 찾아내 불법시위의 동력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배후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그 결과 시위가 일반시민들에 의한 자생적 시위가 아니라 고도로 숙련되고 전문화된 시위관리 경험을 갖춘 세력에 의해 치밀하게 기획되고 조직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이 지목한 배후 조종 세력은 국민대책회의와 진보연대다. 그러나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집회 현장에서 혼란만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기존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다중’의 출현, 변화한 시민들의 감성을 쫓아가지 못하는 시민단체의 무능력 등은 이후 촛불집회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는 각종 토론회나 포럼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 주제였다.

이러한 자의적·편파적·음모론적 해석은 결국 ‘PD수첩’ 제작진 기소,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네티즌 기소, 경찰력을 동원한 진압 위주 대응,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 및 기소로 이어졌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당시 시민단체들은 배후가 될 능력도 없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면서 “정권 입장에서는 일부 언론과 배후 세력의 선동이라고 규정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었다는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두 차례 대국민 사과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다. 오 사무국장은 또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최소한 국가기구의 품격을 지켜달라. 수준이 너무 낮다”고 비판했다.

ㆍ“대통령 왜 두 번이나 사과했는지 설명 없어”

검찰 백서에서 ‘촛불시위’를 과격한 폭력집회로 변질시킨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정치검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자기 고백서”라고 평가했다.

MBC 의 조능희 책임프로듀서는 “뿐 아니라 여러 언론이 미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대해 보도했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 “재판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보수언론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흘리며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당시 국민대책위원회 조직팀장을 맡았던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과 정권에 충성할 거리를 찾아 알아서 움직이는 검찰의 모습을 또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가 예산과 공무원을 동원해 이런 백서를 만들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부패 수사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불순세력의 선동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왜 두 번씩이나 사과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서 “정부는 오류가 없고 과 시민단체만 문제가 있다는 시각은 권력기관으로서의 오만함을 드러낸 것이고 국민 다수를 깔보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국가기관의 백서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이번 백서는 기본적인 것들이 빠져 있어 검찰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재인식시켜 주는 효과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은 시위사범에 대해 온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법원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 내용과 증거, 피고인의 입장 등을 종합해 법률에 의거해 판단한 것일 뿐 사견은 없다”며 “검찰은 자기 판단만 옳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견해도 존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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