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쓴 시민이 늘고 있다 [2010.08.12. 제823호]
임인택
형사사건 무죄율 해마다 급증…
경찰은 마구잡이 검거, 검찰은 기소 남발,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는 복구 불능
» 이명박 정부 들어 기소됐다가 2010년 7월 현재 무죄를 받은 이들이다. 왼쪽부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조능희 문화방송 〈PD수첩〉 PD, 김보슬 PD, ‘미네르바’ 박대승씨, 한가운데는 ‘여러분’. 사진 한겨레 박종식·김진수·김명진·김경호·이정아 기자

검찰은 2만원 때문에 사람을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2008년 1월 조아무개(당시 16살)양 등 4명을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하면서다. 자백이 토대였다. 돈을 훔쳐갔는지 추궁하기 위해 조양 등이 노숙 청소년 김아무개(당시 15살·사망)양을 경기 수원시 한 고등학교로 데리고 가 집단폭행했고 결국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했다.

검찰 수사 영상 녹화물이 무죄 입증

지난 7월22일, 대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렸다. ‘무죄’다. 항소심 무죄판결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복음’을 전해받기까지 2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다들 울었다. 1심부터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도 울었다.

검찰의 수사 영상 녹화물이 되레 무죄를 입증했다. 자백을 회유하거나 진술을 유도해 짜깁기한 사실 등의 근거가 됐다. 박 변호사는 “조양 등이 가보지도 않은 범행 현장을 수사진이 상세히 설명한 뒤 동의하는 식의 진술을 유도하고, 조서엔 적극적으로 답변한 것처럼 기록했다”며 “물증이 없는 사건에서 조서라는 하나의 에세이가 혐의를 인정하는 핵심 도구였던 셈”이라고 말한다.

대법원의 상고 기각 이유는 구체적이다. 이는 동시에 검찰권 남용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고인들이 당초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자백하기는 했으나 1심 공판 이후 일관되게 부인하는 점 △피고인들이 나이가 어리고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점 △검사가 피고인들에게 범행을 자백하면 선처받을 수도 있다고 말해 자백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고등학교에 정문과 후문 중 어느 쪽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와 문이 열려 있었는지 여부, 도착 이후의 상황에 관한 피고인들의 자백이 서로 모순·불일치되는 점 △당시 학교 정문에 설치돼 있던 무인카메라에 피고인들의 모습이 전혀 찍혀 있지 않은 점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들의 지문이나 유류물, 기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꼬집었다.


가히 ‘마법의 기소’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약자를 깔아뭉갠 사건”이라고 정리한다. 특히 “피고인들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과정은 녹화되지도 않았다”며 “자기 변호가 어려운 이들에 대한 수사부터라도 전체 조사 과정을 영상 녹화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죄’는 결코 달지 않다. 항소심 무죄판결까지 이미 1년여 옥살이를 했다. 14~17살의 나이로 성인들이 복역하는 구치소·교도소에 갇혔다. 조양은 말했다. “수감자끼리 돈을 걷어 뭘 사먹기도 하는데, 전 돈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독방에 가고 싶었어요.” 잔인한 형벌이다. 20살이 된 강아무개(당시 18살)양은 대법원 판결 뒤 “면회 온 아버지가 그래도 저를 믿어주셨는데, 대법원 판결을 못 보고 지난해 12월 돌아가셨다”고 했다. 더 잔인한 형벌이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강해줄 자료가 제 발목을 잡았다는 건 상징적이다. 인권이 경시되고, 공권력의 ‘의도’와 ‘선입견’이 입건·수사 과정에서 개입될 때, 진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표1. 1심 형사재판 무죄 선고 추이

무죄 비율 전 정권의 두 배 수준

<한겨레21>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현 정권 들어 형사사건 무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심 재판 무죄 건수를 보면, 2006년 2336건에서 2007년 3160건, 2008년 4003건, 2009년 4587건으로 상승폭이 가파르다. 올 5월치까지만 1895건으로, 추세대로라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가 꾸준히 늘었던 건 아니다. 2006년 109만4113건, 2007년 121만7284건, 2008년 131만6987건, 2009년 119만6776건, 올해 6월까지 49만2030건을 기록했다. 단순하게 보면, 2009년 기소 건수는 2008년보다 적은데 무죄는 더 많은 셈이다.

무죄판결 추이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법원 사법 통계를 보면, 2005년 1심 형사재판 판결 22만6518건 가운데 무죄 비율은 1%(2190건)에 불과하다. 이듬해는 1.1%(21만2791건 중 2314건)다. 무죄 비율은 2008년 1.5%(26만8572건 중 4024건)가 되고 지난해는 2.2%(28만1495건 중 6240건)를 기록한다. 전 정권의 두 배 수준으로, 판결 50건 중 1건 이상은 무죄라는 얘기다. 자유형(징역·집행유예 등), 선고유예, 재산형(벌금) 등 유죄판결 유형은 줄거나 증감을 거듭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표1 참조).

검찰 쪽은 일단 “(무죄 증가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강화된 공판중심주의 탓이 크다”고 말한다. 공판중심주의는 기존 조서중심주의와 대비된다. 수사 기록물 대신 법정에서 논박되는 증거와 진술로 유무죄를 가린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250명이 안 되는 공판검사가 연간 1300여 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사정도 언급된다.

검찰의 해석은 타당하지만 부당하다. 검사 출신 금태섭 변호사는 “과거에 비해 법원의 심리가 엄격해진 건 분명한 경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가 결국 인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지받기 어렵다. 재판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무죄’가 은폐되고 ‘유죄’가 조작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검찰이 스스로 이런 원칙을 부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 견줘 무죄율 자체가 낮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문제는 최근의 상승폭이고, 무죄가 노정되는 과정이다.

실제 압수수색영장·구속영장·체포영장의 기각률이 현 정권 들어 크게 뛰고 있다(표2 참조). 검찰의 무분별하거나 편의주의적인 수사가 많다는 얘기다. 특히 공권력 남용의 지표로 간주되는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2007년 7만4667건을 청구한 검찰이 이듬해엔 10만479건을 청구했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2009년은 10만5720건이다. 기각률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2005년 0.56%에 불과하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올 상반기 2%로 껑충 뛴다. 일부기각된 사건까지 합할 경우 증가폭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8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전체 기각률(일부기각 포함)은 15.6%로, 2005~2007년 전체 기각률(5.6%)의 세 배 수준이다. 결국 올 상반기 검찰이 압수수색하려던 100명 가운데 2명이 기각됐다. 일부기각까지 합치면 13명꼴이다.

전자우편 등을 조회하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건과 기각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투망식 수사, 일단 뒤져보자는 수사 방식이 크게 늘면서 국민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에 대한 간섭과 침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 표2. 각종 영장 기각률 추이

압수수색·구속·체포영장 기각률도 뛰어

2008년 이후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2005년치의 갑절이다. 2005년 검찰이 7만461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9592명을 기각했다. 12.8%의 기각률이 2008년 24.4%(5만6845명 중 1만3852명), 2009년 25.1%(5만7019명 중 1만4295명)로 이어진다. 2010년 상반기는 23.5%다.

이런 요인을 포함해, 검찰의 구속 기소율(전체 형사재판 인원 가운데 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비율)은 2000년 46%, 2003년 37.7%, 2007년 16.9%, 2008년 14.4%, 2009년 14%로 크게 떨어진다. 불구속 기소는 인권 보장을 위한 핵심적 원칙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시대가 민주화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조차 검찰의 의지로 이뤄진 건 아닌 셈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은 “법원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불구속 재판을 강조해왔으며, 그 결과 구속영장 발부를 엄격히 따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검찰이 먼저 구속을 자제했다고 볼 만한 근거나 사례는 별로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검찰은 영장 기각률이 높아지는 것도 공판중심주의 탓이라고 할지 모른다. 공판중심주의는 정작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본격화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공판중심주의와 무죄 증가는 연관이 있지만 검찰이 할 얘긴 아니다”라면서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고, 공소 제기·유지에 역량을 투입하고, 공판검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등 조직을 개편해 엄격한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검찰 권력의 비대화’가 ‘무죄 시민 양산’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처럼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독점주의가 철저하고, 경찰의 수사 독립성을 부인하며 검찰권이 비대한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검찰 상층부가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고, (정치 말고는) 검찰권을 통제할 장치가 드문 실정”이란 설명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헌법이 보장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피의자를 검찰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온당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지적과도 동닿는다. 검찰 수사를 겪은 문화방송 〈PD수첩〉 조능희 PD는 “체포 당시 조사를 받는데 사적인 얘기까지 죽 읽더라. 알고 보니 한 언론사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검찰로 넘어간 거였다”며 황당해했다. 영장도 필요 없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통치조직이 된 검찰”과 그에 복무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 이른바 ‘노숙 청소년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기소됐던 이들에게 대법원이 지난 7월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8월5일 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무죄 예상돼도 과감히 기소하는 경향”

실제 노무현 정권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시도했으나, 되레 권력만 키워준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독립보다 검찰 조직의 개혁이 전제돼야 했다고 후회한 이유다.

공권력의 이런 태도는 결국 ‘기소 남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사회적 의도’를 개입시킬수록 폐해는 크다. 금태섭 변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 검찰은 ‘유죄가 확실하지 않으면 기소조차 하지 않는다’는 태도(정밀사법)를 가져왔다. 무죄가 선고된 경우 검사에게 벌점을 주는 데도 이런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소할 때부터 무죄라는 예상이 많은 사건들을 과감히 기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검찰의 중요 수사부서가 (정치·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에서) 취한 이런 태도는 일반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종철 교수는 검찰의 과감성을 ‘현 정권의 법질서 강화 정책’과 ‘전방위적 사회통제 작업’에서 찾는다. “지난 10년의 성과를 지우기 위해 법과 원칙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국민에게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의 전체 기소는 증감을 거듭하는 반면, 구공판(구속+불구속 기소)은 증대하고 있다. 피의자가 유죄 여부를 별로 다투지 않을 때 이뤄지는 약식기소 비율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06년 전체 기소 109만4113건 가운데 13만7780건이 구공판이다. 2007년엔 121만7284건 가운데 15만5704건, 2008년 131만6987건 가운데 16만6641건, 2009년 119만6776건 가운데 17만2353건으로 변화를 보인다. 전체 기소 중 구공판 비율을 따지자면 2006년 2.59%, 2007년 12.79%, 2008년 12.65%, 2009년 14.4%, 올 상반기는 15.77%를 기록한다.

특히 촛불 국면 이후 증가폭이 커진다. 이유나 의미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단서가 있다. 2008년 촛불집회 국면에서 입건된 1400여 명 가운데 1천 명 이상이 약식기소됐는데, 이 가운데 600여 명이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의 유죄 판단이 부당하다고 보고 무죄를 입증받으려 한 경우다(<촛불 법정의 기나긴 2년> 기사 참조).

경찰의 속살은 어떤가? 경찰의 검거 인원과 기소의견 송치 건수를 살펴봤다. 혐의는 살인, 강도, 성폭행, 절도, 집시법 위반으로 구분했다.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분석한 경찰청 자료(2006년~2010년 상반기)는, 집시법을 제외한 모든 혐의별 검거가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확인되듯, 범죄 발생 건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검거한 인원 가운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비율은 5%포인트 안팎의 진폭으로 증감을 거듭한다. 상대적으로 균질하다.

독특한 건 집시법이다. 검거 인원 대비 기소의견 송치 비율이 전 정권에선 89%대를 유지하다 촛불집회가 있던 2008년 92%로 꼭짓점을 찍고 2009·2010년 상반기엔 77~80%로 뚝 떨어진다(표3 참조). 진폭이 크다. 2008년은 촛불집회로 인해 검거와 기소의견 송치가 함께 늘었을 거라는 데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2009년 이후다. 검거 건수가 대폭 감소하고, 기소의견 송치율도 크게 떨어진 것이다. 적게 붙잡았지만 그조차도 조사해보니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 표3. 경찰 검거 대비 기소의견 송치율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

배경이 뭘까? 일단 촛불 국면 이후 집회 자체가 크게 제약됐다. 검거 대상 자체가 줄었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기소의견 송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건, 예년보다 불필요한 검거가 많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국사건 변론을 많이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현 정부의 집회 관리 방식이 체포 위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2009년 경찰청의 집회·시위 관리 지침은 △현장 검거 위주로 대응 △경미한 사안도 입건 등 강경한 방침을 담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침해는 검거 단계부터 발생하기 마련이다. 촛불 국면 땐 변호사도 초등생도 이른바 ‘닭장차’에 갇혔다. 권영국 변호사는 “수사가 선진화된다면, 증거 위주의 수사가 진행되므로 검거와 기소의견 송치율의 간격은 좁혀질 수밖에 없다”며 “그 간격이 크다는 건 일단 검거한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처리하는 편리한 수사 방식이 일반화됐다는 뜻”이라고 본다.

김종철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법질서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김경환 법무장관 시절 검찰권이 의도적으로 남용된 측면이 있다. 집회·시위에 집시법이 아닌 형법상 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등의 경향이 강화된 것이 이런 측면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2008년 이후 기자회견 등 과거엔 허용되던 형태의 의사표현 행위도 단속되는 형국이다.

결과는 ‘위축’이다. ‘저강도 공포’의 확산이다. 최아무개(41)씨는 지난 5월 경기경찰청에 불려갔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글을 언론사 홈페이지 뉴스 게시판에 쓴 게 화근이었다. 경찰 3명이 집까지 찾아와 출석요구서를 주고 갔다. 참고인 자격이었으나 사실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추궁당했다. “글을 쓴 의도가 뭐냐” “내용이 사실이냐” “글 내용이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해봤느냐” 등이 그가 답했어야 할 질문들이다. 서울 숭인동 집에서 왕복 4시간을 들여,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수사 당국으로부터 받은 연락은 없다. 글쓰기에 대한 ‘경고장’만 낙인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치도 되지 않을 사안으로 검거하면 사람들은 이후 합법적 행위도 자제하게 된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는 위헌”이라고 말한다. 경찰의 ‘정치적 의도’가 오롯이 읽히는 대목이다.

‘무죄 시민’의 피해는 복구 불능에 가깝다. 금태섭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수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큰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입건되고 수사받는 자체가 형벌이자 단죄다.

경찰 관련 인권위 상담도 급증

안소영(28·가명)씨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소스라친다. 지난 4월 말 남편(31)과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인적 드문 토요일 새벽 3시께였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자전거보관소에 널브러져 있던 자전거를 타고 30~40m 가다 버렸다. 당초 잠금 장치도 없이 버려진 자전거였다. 안장도 없었다. 바퀴는 녹슬었다.

뒤따라오던 사복 경찰에게 붙들렸다. 부부는 5분도 안 돼 경찰차에 실렸다. 난생처음 파출소를 가게 된 배경이다. “죄도 없는데 왜 데려왔느냐, 보내달라, 따졌죠.” 그러곤 말문을 잃었다. “한 경찰관이 부부절도단이라고, 볼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파출소에선 한마디 질문도 없었다. 경찰차에서 주고받은 몇 마디가 전부였다. 구로경찰서로 이송됐다. 경악했다. 담당 경찰관 손에 건네진 진술조서엔 ‘흑심을 품고…’라는 표현이 있었다. 혐의는 특수절도. 결국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7월 초다. 혐의는 ‘점유이탈물 횡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주인 없는 물건을 훔쳤다는 얘기다. 검찰은 8월 초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프랑스 교포로 2008년 말 결혼해 한국에 온 남편은 말했다. “토요일 그 시각에 우리 같은 사람을 체포하려고 경찰관 5명에 경찰차가 투입된 건데, 참 좋은 나라다. 하지만 그 시간에 더 나쁜 일이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면 한국은 나쁜 나라다.” 부부는 뒤에 자전거 폐기값으로 2천원을 치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씨는 계속 씩씩댔지만 기자는 웃었다. 그날 아침 7시가 넘어서 경찰서를 나온 부부는 친척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지쳐 잤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 표4. 경찰 관련 인권위 진정 상담 현황

경미한 피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치안 우수 국가가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일까. 안씨는 이후 뉴스를 보고, 자신이 경찰 성과주의의 희생양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제도가 있는 한 또 다른 피해를 예고한다. 안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연을 미처 알지 못할 억울함이 도처에서 성토되고 있다. 경찰 관련 인권위 진정·상담 접수가 크게 늘고 있다(표4 참조). 2003년 1482건, 2006년 2051건, 2007년 2481건, 2008년 2548건, 2009년 3110건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미 1959건이 접수됐다. 현 정부 들어 한 해 평균 3046.8건을 기록한다. 전 정권 평균치(1906.6건)와 견주면 1.6배가 증가했다.

가혹행위와 과도한 총기·장구 사용, 인격권 침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도한 불심검문도 30건이 채 안 되다 2007년 45건, 2008년 63건, 2009년 88건으로 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이미 68건이 접수된 상태다. 물론 경찰의 잘못이 최종 인정되는 건수와 비교해야겠지만, 일상에서의 공포와 피해의식이 크게 확산되는 형국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법의 얼굴로 ‘위압적 정치’

수치가 드러내는 한국 공권력의 실상이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수사의 목적은 범인 검거 등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 보장을 위한 적법 절차 원리로 돼 있다. 하지만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에서 봤듯이, 수사기관은 관성상 전자만 좇으려 한다. 결국 범인·증거 조작 등을 일삼게 되고, 이는 곧 시민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다.” 최근 출간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서 대한민국 검찰이 호명되는 방식이다. “너무도 보복적이며 정치적이며,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는다.” 자서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검찰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그들이 복무하는 ‘정치’는 이렇게 호명된다. “국민을 적으로 아는 정권, 권세만 있고 부자만 위하는 정권.” 과거엔 법 위에 군림하며 ‘파쇼적 질서’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법의 얼굴로 ‘위압적 정치’를 꾀한다. 한마디로 추리자니 이른바 “끔찍한 형사 과잉의 시대”(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노무현, 한명숙, 정연주, 미네르바, 〈PD수첩〉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 대상은 결국 ‘우리’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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