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방지용 철망’으로 재소자들의 자살을 막을 수 없다!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전국 구금시설에서 ‘자살 방지용 철망’ 공사가 한창이다. 법무부(교정본부)가 지난 4월 19일 훈령을 통해 7월 말까지 완료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감히 말할 수 없다. 몇 몇 양심수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국가보안법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돼 4년 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손정목, 장민호, 박경식 씨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로 보내온 편지에 따르면 “거실 내부가 어두워져서 대낮에도 인공조명에 의존하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고 “통풍 조건이 나빠져.......열대야 현상이 없는 6월임에도 잠들기 힘든 밤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던 쇠창살 너머 푸른 하늘이 이젠 촘촘한 철망에 가리어 회색 빛 하늘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교정본부는 인권침해에 따른 재소자들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7월 15일, 구속노동자후원회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전해투 등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양심수 가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를 찾아갔다. 교정본부에 있는 사무관 한 명과 계장 한 명이 면담을 하기 위해 나왔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 괜히 생트집을 잡고 있다’는 듯 못마땅해 했다. 그러면서 ‘교도소 자살사고가 심각하다’, ‘재소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건 우리의 의무다’, ‘생명권 보장은 다른 어떤 인권보다 우선해야 하지 않느냐’며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구금시설 재소자들의 자살률 증가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6년 법무연수원 자료에 따르면 수형자 10만 명당 자살률이 30.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한다. 법무부 통계를 보더라도 2008년 7월까지 4년여 동안 구금시설에서 187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113명이 병으로 사망했고, 74명이 자살을 했다. 지난 해 11월 21일 ‘연쇄살인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사형수 정남규 씨, 대전교도소 김 모 씨가 잇달아 자살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무부는 외부에 연구용역까지 줘가며 ‘자살방지대책’을 강구했는데, 그 결과물이 ‘자살방지용 철망’ 설치다. 구금시설 자살자의 “55%(40명)가 조사·징벌 거실 및 독거실에 수용돼 있었고, 주로 옷이나 수건 등을 변조하여 만든 끈을 철격자 등에 거는 방법으로 자살했다”는 분석결과에 따라 창문 뒤에 설치돼 있는 쇠창살(철격자)에 손이 닿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얼마 전 교정본부에서 철망 공사의 주무를 맡고 있는 담당계장과 통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여름이라 모기와 해충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방충창을 설치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고 재질이 스테인레스라 시야를 가리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교도소를 방문해서 안에 있는 재소자들에게 물어보니, 사회에서 쓰는 일반 방충망보다 더욱 촘촘해서 많이 갑갑하다고 했다. 특히 독거실 창문은 화장실 쪽으로 나 있는 것 하나밖에 없는데 이렇게 막아 버리면 흡사 닭장에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교정본부 직원들은 우리에게 볼멘소리로 ‘반대만 하지 말고, 교도소에서 자살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라’고 한다.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는 저들 역시 잘 알고 있다. 재소자들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교도소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세심한 관리를 통해 재소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 교정행정 본연의 역할을 잘하면 된다. 그런데도 하지 않을 뿐이다. ‘현실성’이 없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살방지용 철망’ 설치를 비롯한 법무부의 자살방지대책은 대단히 위선적이다. 철망 하나 설치하는데 12~13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국으로 합산하면 수십억 원에 이른다.

 법무부는 5월 1일부터 재소자들이 외부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누구나 적용받아 왔던 건강보험료와 치료비 지원대상과 예산을 대폭 줄였다. 구금시설 재소자들은 법률상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구금시설 내부의 의사 수도 턱없이 부족(재소자 565명당 1명-2009년 1월 현재)하고, 변변한 의료시설, 약품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재소자들은 몸이 많이 아파도 외부병원에서 진료를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러다 병으로 사망하는 재소자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법무부는 2006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예탁금을 내는 조건으로 보험료와 진료비를 부담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올 들어 예산삭감을 이유로 지원 대상을 대폭 줄여버렸다. 이렇게 되면 돈 없는 재소자들 같은 경우, 정말 아픈데도 병원 문턱조차 못 가보고 사망할 수도 있다.

 구금시설의 자살률 증가는 이런 환경 요인에서부터 비롯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다. 구금시설 재소자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고, 실제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감옥에 가둘 게 아니라 의료기관에 보내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UN 피구금자 최저기준규칙’에 따르면 구금시설마다 재소자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상주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자살방지용 철망’ 등 별 효과도 없는 대책에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을 게 아니라 재소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면서 의료권 보장과 더불어 구금시설 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의 비판과 강력한 요구가 뒤따라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