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구강상피세포 채취 수사…“범인 검거 도움” vs “범죄자 취급 불쾌”

“나흘 전 경찰관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당한 뒤로 당장이라도 잡힐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서울 면목동 일대에서 여성들을 상습 성폭행한 ‘면목동 발바리’ 조모(27)씨가 지난 4일 경찰에 자수하며 털어놓은 속내다. 경찰은 조씨가 마지막으로 범행한 지난달 2일부터 한 달간 면목동 6546가구를 뒤져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성 315명의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했다. 조씨는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구강상피세포는 입 안을 얇고 매끄럽게 덮은 껍질이다. 경찰은 용의자에게서 채취한 구강상피세포의 DNA가 범행 현장에서 나온 체모, 정액 등의 DNA와 일치하는지 확인해 피의자를 특정한다. 틀릴 확률은 1%에 불과하다.

◇자수·자백 효과에 미제 사건까지 해결=구강상피세포를 활용한 수사는 범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자수를 유도할 뿐 아니라 피의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검거 직후 범행 사실을 모두 부인하던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 피의자 김길태도 구강상피세포를 이용한 DNA 검사 결과 앞에서 더 이상 발뺌하지 못했다.

지난 1월에도 충북 충주에서 농산물을 훔친 혐의로 붙잡힌 신모(49)씨가 5년 전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마약을 투여한 혐의가 구강상피세포 조사를 통해 밝혀지는 등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잇달아 해결됐다.

◇불쾌하지만 범인 잡을 수 있다면 OK=“면목동 발바리가 잡혔어요?” 지난 5일 면목동에서 만난 고등학생 조모(16)군이 놀라며 물었다. 조군은 앞서 범행 현장 인근 지하철역에 서 있다가 형사 2명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 당했다. 조군은 “채취 당시 주변에 사람이 많은 데다 범죄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켕길 게 없어 당당했다”며 “범인만 잡힌다면 열 번이라도 (구강상피세포 채취에) 응하겠다”고 했다.

면목동 발바리 사건으로 경찰관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 당했다는 또 다른 남성은 지난 1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다분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도 “(경찰이) 몇 명의 DNA를 채취했는지 몰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시민 반감 줄이는 채취 방식 필요=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에 따르면 경찰은 채취 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 영장 없이 구강상피세포를 비롯한 DNA 감식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20여년 경력의 한 강력반 형사는 “구강상피세포를 자유롭게 얻을 수 없던 과거에는 범죄 현장에서 범인 것으로 의심되는 DNA를 수집해도 수사에 활용하기 어려웠다”며 “DNA 관련 법 시행으로 과학수사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반감을 어떻게 줄이느냐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8일 “채취 방식에 명확한 기준 없이 아직 임의적인 측면이 많다”며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채집 대상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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