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본·능... 모든 걸 다 들여다보겠다?

국정원-기무사-경찰, 저마다 감시체제 크게 강화... "민주주의 후퇴" 지적
09.09.04 09:06 ㅣ최종 업데이트 09.09.06 12:51 구영식 (ysku)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의 공통점은? 답은 이들이 모두 '공안통 검사'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공안파의 약진이다. 
 

'국가통제 강화'의 첨병인 공안파는 군부권위주의 정권 시절 득세했다가 민주파 정부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했다. 민주파 정부의 첫 집권기인 김대중 정부와 국가권력의 권위주의를 해체하려고 시도했던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에서는 전통적인 공안파의 힘이 약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터넷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공안본능'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나 학계에서 '유사파시즘', '파시즘엑스(X)', '신자유주의 공안국가' 등 다소 과도해 보이는 개념 규정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7년치 이메일 뒤지고,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하고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기무사 민간인사찰 관련 민주당, 민주노동당 공동기자회견'에서 기무사가 사찰한 수첩 내용을 제시하며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서 공안파가 득세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검찰은 지난해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최장 7년치 전자우편을 '싹쓸이'해 열람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수사대상자 100여 명의 전자우편 내용을 조사했다. 주경복 전 후보와 김민석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의 경우 압수된 전자우편이 2001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무려 7년치를 넘었다.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이런 싹쓸이 전자우편 수사는 "중대한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 이는 '통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8조를 위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기무사가 군과 전혀 무관한 민간인들을 불법 사찰하고, 국정원이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패킷 감청')한 사실이 최근 확인되면서 '신공안체제의 도래'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민주주의 후퇴'의 강력한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드러난 것은 노태우정권 시절인 1990년 10월이다.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1300여 명이 포함된 사찰기록을 폭로한 것이다. 이후 시민사회와 야당의 저항이 거세지자 노태우 정권은 "민간인 사찰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보안사도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19년이 흐른 지난 8월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 의해 폭로됐다. 이 의원이 입수한 기무사 요원 신아무개 대위의 사찰 기록 수첩에 의하면, 기무사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당원, 약사, 노조 간부, 재일민족학교 책보내기 운동 인터넷 카페('뜨겁습니다') 회원,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관계자, 그림책 작가 등을 24시간 사찰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은 '장기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수첩상에 드러난 사찰시점인 1월보다 빠른 작년부터 '공안사건'을 만들기 위한 사찰이 진행됐다는 것이 이정희 의원의 주장이다. 또 신 대위의 사찰수첩에 ▲소형차 교체 ▲필요장비 탑재된 승합차 도입 ▲거점 확보 ▲활동매뉴얼 작성 ▲협조자 구축 ▲경찰과의 협력 ▲CCTV 설치 등이 메모된 점은 민간인 사찰이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보여준다.
 

이정희 의원은 "군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해야만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정권을 쥐고 있을 자격을 이미 상실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정원은 패킷감청 하고, 경찰은 댓글 감시체제 도입하고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인터넷회선 감청 등 국정원 감청 실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곽동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이 피해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국정원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활동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정원법을 개정해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대폭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원세훈 국정원장도 "정치정보 수집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그동안 금지되어 왔던 국내정치정보까지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사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국정원이 지난해 6월부터 두 달 동안 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와 그 가족의 인터넷 사용내용까지 감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곽동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은 지난달 3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9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지난해 6월 12일부터 두 달 동안 집과 사무실의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패킷 감청'해온 사실을 알게 됐다"고 폭로했다.
 

'패킷 감청'이란 인터넷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방식을 한다. 패킷 감청을 하면 감청대상자의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엿볼 수 있다. 즉 감청대상자가 인터넷에서 어떤 검색을 하고 있는지, 메신저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어떤 파일을 내려받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것. 단순히 전자우편을 열어보는 기존의 인터넷 감청과는 차원이 다른 최신 감시기법인 셈이다. 
 

특히 곽 위원은 국정원이 자신의 가족 명의로 된 인터넷회선까지 패킷감청을 했다고 주장해 큰 파문이 일었다. 그는 "국정원은 우리 가족들이 인터넷으로 뭘 하는지 모두 엿보고 있었다"며 "국정원이 우리 집 안방에 들어와 앉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의 패킷 감청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장과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보고)가 부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5공 시절의 경찰, 기무사, 국정원으로 돌아가고 있다"(원혜영 의원)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가운데 경찰도 인터넷 댓글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청 보안과는 지난 7월 '보안사이버 검색·수집 시스템' 강화 사업을 발주했다. 이를 통해 경찰은 특정 인터넷사이트의 게시물과 댓글, 아래한글·엑셀 등으로 제작된 첨부파일을 실시간으로 검색·수집해 이를 데이터 베이스(DB)화할 수 있도록 했다.
 

<경향신문>은 "예컨대 '촛불' '2MB' 등의 단어를 키워드로 설정해놓으면 이 단어가 들어간 모든 글이 자동 수집된다"며 "(특히) 새 시스템은 검색과 수집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도록 해 비밀사찰 의혹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촛불 트라우마'로 인터넷사찰 등이 강화되고 있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이러한 감시·통제의 강화 현상을 '촛불 트라우마'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오 국장은 "국민의 저항이 두려우니까 정부의 의견에 반하거나 정부에 불리한 사람은 무리해서라도 감시해서 사전에 대응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다"며 "이는 촛불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이명박 정권 차원의 방어이자 공격"이라고 분석했다.
 

오 국장은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달리 법원이 미네르바사건이나 정연주 사건 등 일부 사건에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법원이 이렇게 엄격한 증거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 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공안파트를 강화시킨 결과가 지금 터져 나오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주장한 것처럼 안보태세 확립  차원이 아니라 애꿎은 시민단체나 일반시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고 말했다. "(감시·통제체제가) '반국가'가 아니라 '반정부'를 겨낭하고 있다"는 것.
 

오 국장은 "경찰이나 국정원의 속성상 정권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으면 이들의 준동은 상상할 수 없다"며 "하지만 과거 정권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행태는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지난해 촛불시위가 벌어진 직후부터 인터넷 여론 통제를 목표로 하는 '인터넷사찰'이 강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장여경 활동가는 "검찰 등이 광범위한 저인망수사를 통해 통신비밀보호권을 침해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두드러졌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다만 인터넷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등 인터넷 사찰이 이명박 정부에서 강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활동가는 촛불시위 직후 생겨난 경찰의 인터넷여론대책반, 문화체육관광부의 인터넷모니터링반 등을 언급한 뒤, "인터넷모니터링반은 다음 아고라의 여론을 파악·정리해서 40여개 사정기관과 공유했다고 한다"며 "이렇게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사정당국과 수사기관이 인터넷 여론을 적극 모니터링하는 경향이 이명박 정부에서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군보안사령부(약칭 보안사)라는 곳이 있었다. 1980년대에 안기부와 함께 공안 사건에서 악명이 드높던 기관이다. 원래 보안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군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내의 정보수사기관이지만, 한때는 공공연히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도 했었다.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보안사라는 기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잘 나타나 있다.

 수사권한도 없는 기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해서 수 십 일간 구금하고(불법체포. 감금죄), 잠을 안 재우고, 거꾸로 달아매고, 각목으로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해서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고(특가법상의 독직폭행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안기부 수사관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수사서류를 만들기도 했다(공문서 위조죄).

 보안사에서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권도 없는 보안사의 민간인 수사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이 정도면 기소할 요건이 성립되었다”고 법률검토까지 해 주었다. 보안사가 수사권한도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보안대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지도 잘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절대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민간인들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권한을 행사하던 보안사는 1990년대까지도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야당정치인 등 민간인을 사찰하다가, 윤석양이라는 청년의 양심선언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지자 다시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로 바꾸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몰래 찍은 동영상(오른쪽)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최근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와 가족까지 미행하고 촬영을 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구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외치더니 드디어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후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틀이 정착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기관이 버젓이 법을 어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부는 온갖 불법이 난무하던 2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버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구언론이나 청와대, 여당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뻔 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냄비근성의 국민들이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다. 87년 국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오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찰에서 시작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건국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그 사건들 중에는 보안사의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참을 수 없는 공안본능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 속도로 보아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일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미행하고, 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군 수사기관에 보고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창살이 없다 뿐 그것이 감옥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수사 이야기를 먼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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