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휘/ 한겨레신문 기자

 <한겨레>에서 노동을 담당한 지 6달째다.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 들어 환경부와 함께 가장 반역의 세월을 보내는 정부 부처가 노동부라고 생각하는지라, 공무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가자미눈을 뜨고 지켜본다. 내가 일상적으로 가자미로 변신하는 때는 보도자료를 토대로 한 기사를 쓸 때다. 특히, 내가 주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근로자’라는 용어를 ‘노동자’로 바꾸는 일이다.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노동단체들이 ‘노동절’이라고 부르는 5월1일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노동 관련법에도 근로자는 등장하지만 노동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고용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도 마찬가지다. 모두 근로자다. 

 근로부가 아닌 고용노동부는 왜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쓸까? 한 번은 고용부의 한 관리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나도 궁금해 이것저것 따져봤는데,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두 단어에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개입돼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와 근로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임금을 받아서 생활을 영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말 뜻 그대로만 놓고 보면, ‘勞動者’는 말 그대로 힘을 써 움직이는 자이고, ‘勤勞者’는 부지런히 힘을 쓰는 자이다. 나는 ‘노동자는 항상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이 자본 중심적 논리가 마뜩찮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뚱보 사장’의 자본논리에 애궂은 꼬마 기관차들이 혹사당하는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노동자도 사람인지라 때로 부지런히 일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필요하다. 

 이런 내 머릿속 치환작업이 기능을 하지 않는 때가 있다. 바로 법정 용어를 써야 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에 ‘근로자’에 관한 법은 10개가 있지만, ‘노동자’에 관한 법은 하나도 없다. 죄다 ‘건설근로자’ ‘근로자복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등에 관한 법뿐이다. 왜 노동조합은 근로조합으로 부르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요즘 언론 지상을 장식하는 ‘타임오프’ 제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있는데, 이 제도의 법률 용어는 ‘근로시간면제제도’다. 이 법률용어를 기자 마음대로 ‘노동시간면제제도’라고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근로시간면제제도’라는 용어는 단순히 노동이라는 단어를 근로로 대치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근로시간면제제도라는 말만 놓고서는 일반인이 이게 도대체 무슨 제도인지를 알아먹을 수가 없다는 데 있다. 근로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면제한다는 것인가? 

 사정을 이해하자면, 노동조합 전임 간부의 노조 활동이란 게 회사가 재화를 생산하는 일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기본적으로 월급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법으로 노조 전임자가 노조 활동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만큼의 시간은 근로시간에서 면제해주되 그렇지 않은 시간은 월급에서 까야한다는 뜻 같다. 뒤집어서 보면, 법으로 정한 만큼은 노조 전임자가 근로시간에서 면제된 상황에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보장해주자는 뜻같기도 하다. 엎어 치나 메치나인데, 어쨋거나 고용부 관리와 기자들, 일부 관련자들 빼고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이가 있을까싶다. 고용부와 의회가 이처럼 어렵고 애매한 단어를 법률용어로 쓴 까닭이 조합원인 노동자와 노조 간부를 분리하기 위함이 아닐까하는 불온한 상상도 한다. 실제로 ‘타임오프’ 제도가 현장에서 힘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단기적으로는, 이 문제가 노조 간부의 문제이지 조합원의 이익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세간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타임오프 반대’ 집회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7월 29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타임오프제와 노조탄압 분쇄를 다짐하는 ‘노동기본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제공)

 그래서 나는 기사를 쓸 때 근로시간면제제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유급 노조활동시간(타임오프) 한도 제도’라고 쓴다. 월급을 받고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놓은 제도라는 취지다. 

 여기서 활용형도 등장한다. 고용부는 이른바 타임오프에 정해진 시간을 쓸 수 있는 노조 간부를 놓고 ‘근로시간면제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말은 법에도 없는 말인데, 고용부는 기존 노조 전임자는 무급으로 한다는 법조항이 있는 만큼 이제는 월급 받으며 노조 활동을 하는 이는 노조 전임자가 아니라 근로시간면제자라고 주장한다. 산 넘어 산이다. 

 이런 식으로 ‘말과의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더한다. 얼마 전에는 고용부라는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두고 고민했다. 임태희 장관 시절 고용노동부는 ‘노동부’가 아니라 ‘고용부’로 불리길 원한다고 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사회 문제가 바로 고용이고, 이를 업무에 반영하기 위해 부처 이름까지 바꾼 만큼 노동부보다는 고용부가 약칭으로 더 맞는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노동 문제가 더 중요한데 고용부가 아니라 노동부라고 약칭을 써야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으나 나는 그냥 ‘고용부’라고 쓴다. 

 원래 이름이란, 불리는 자가 불리고 싶은 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게 원칙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스스로의 약칭을 ‘총련’이라는데도, 굳이 ‘조총련’이라고 쓰는 일부 보수언론을 보면 ‘새디스트 집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용노동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용부라는 약칭을 쓰는데는 내 나름의 뒷계산도 깔려 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보다는 자본가,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더 대변한다는 게 내 가자미눈의 시각인데, 스스로의 이름에서 노동을 버리고 고용을 택하는 노동부가 얼마나 더 노동자에게서 멀어지는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에 존재는 언어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낸다. 고용은 자본가의 단어다. 노동자의 단어는 취업이다. 취업노동부가 아닌 고용노동부가 앞으로 고용주가 아닌 취업 희망자의 편에서 관련 정책을 쏟아낼지 지켜보겠다면, 고용부는 ‘공연한 트집’이라며 시비를 걸까?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인터넷에서 고식지계(姑息之計)를 검색하면 “한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임시로 둘러맞추어 처리하거나 이리저리 주선하여 꾸며 내는 계책”이라고 나온다. 많이 쓰이는 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터인데, 찾아보니 유사한 고사성어가 꽤 있다.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면 남들이 자신을 보는 줄도 모르고 속이려든다는 것(柯葉遮眼, 가엽차안)이나, 귀 막고 방울도둑질 한다 - 즉 방울 소리가 제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엄이도령(掩耳盜鈴) 역시 비슷한 뜻이다. 타조가 도망가다가 힘들면 모래 속에 머리만 박는다는 타조 머리 감추기(鸵鸟政策, 타조정책) 역시 이웃사촌 쯤 되겠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눈 가리고 아웅’해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11,4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노동부의 [사업체 기간제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2009년 9월 4일)를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라고 덮을 수 있을까?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부터 100만 대란설을 주장하며 “7월 이후 해고되는 비정규직 연인원이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또한 2009년 7월 발간된 노동부의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비정규직법이 정규직 전환법이라는 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이 되면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정부가 실직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고용대란만 강조했다는 것도 오해이다. 왜냐하면 법 개정이 비정규직 실직을 막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라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해고대란은 사실무근이다. 실태조사 결과 넓은 의미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10명중 6명 내지 7명이기 때문이다. 계약종료 된 3, 4명의 경우도 자발적 이직인지, 해고인지 아니면 기업의 경영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비정규직 법 때문에 해고된 경우는 발표된 수치보다 적을 수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회원과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기획해고’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만약 정규직 전환 지원 대책이 마련되었다면, 해고대란만 조장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권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오해와 진실’과 같은 노동부의 안내서만 아니었다면 정규직 전환 수치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최소한 해고 규모 과장과 관련,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이다. 하지만 장관의 발언과 지시 때문에 계약종료가 늘었다 해도 그 책임을 질 방법이 있을까. 이미 해고된 사람을 원직복직 시킬 수 있는가. 목숨줄인 밥줄을 끊은 책임을 무엇으로 질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부가 나서서 실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조사할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해고대란 문제에 대해 보도자료는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세 가지 근거를 들어 피해간다. 그런데 그 이유 중 두 가지는 매우 이상하다. 하나는 2년 이상 근속자 중 법 적용대상자만을 파악한 결과이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100만 해고대란설에는 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자들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법 적용 이전에 2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감소한 것이 원인이란다. 그리고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전월대비’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줄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가끔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해당 자료가 그러하다. 보도자료에는 빠뜨렸지만 전월대비 대신 전년동월대비 자료를 살펴보면, 2009년 1월부터 6월까지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다만 7월만 감소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공공기관에서의 기간제 계약종료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공공기관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공공기관에서의 계약종료는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경쟁압박을 받는 민간기업 대신 공공기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부터 사람을 자른다.

 심지어 정규직을 기간제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올 초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 4년이 넘은 정규직 신분인 필자에게 갑자기 2년짜리 고용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말문이 막혀 필자의 신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회사의 대표는 “기간제”라고 답하였다. 만약 전 직원이 아무 말 없이 고용계약서를 썼다면 100% 기간제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공기관이 탄생할 뻔 했다.

 노동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100% 기간제를 꿈꾸는 기업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나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없다는 언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에 동참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 기간제를 만들겠다는 꿈은 그래서 ‘꿈’이겠지만 밥줄이 달려있는 근로자들은 가끔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100%가 아니라 10%라도 그 대상이 자신일 수 있기 때문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