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도 없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6월 25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파견노동조합 사무실에서 2008년 경제위기로 해고된 세 명의 일본인 노동자를 만났다.

 47세의 다나카씨(가명)는 27년간 계속 일을 하였지만 지난 2009년 생활보호(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가 되어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0세까지는 정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처음에 배송회사의 트럭운전사였고 그 다음에는 닛산자동차, 자동판매기 회사, 와인창고관리를 하다가 43세부터 이쓰즈 자동차회사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리먼 쇼크로 2009년 1월말에 해고를 당했지요.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도중에 그만두라 하더군요. 부당하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떤 보상을 받은 적도 없구요. 그저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찾을까, 그것만 고민했습니다. 살고 있던 회사의 료(일종의 기숙사)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당장 잠자리도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파견노조의 도움을 받아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36세의 야마타씨(가명)도 비슷한 처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전문학교를 다닌 야마타씨는 전기공사자격증을 취득하고 공장을 전전하다 2002년부터 닛산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다.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제조업 파견이 허용되었고 3년 이상 파견을 지속할 경우 직접고용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2002년부터 5년간이나 파견근로로 야마타씨를 고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해고당하기 약 1년 6개월 전에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직접채용을 요구했으나 지금 회사가 상당히 어려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지요. 그리고는 계약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2008년 11월말에 해고당했습니다. 당연히 료에서도 쫓겨났구요”

 30살인 스즈키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2008년 경제위기 때문에 해고당한 뒤 일자리를 못 찾아 생활보호 대상자로 살고 있다.  

“이쓰즈 자동차에 파견노동자로 일하면서 10킬로 20킬로 되는 부품을 대(다이) 위에 나르는 작업을 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같은 일을 해도 직접 고용된 사람은 저보다 10만 엔(한화 약 130만원) 정도를 더 받더라구요. 게다가 파견회사의 료에 살면 월 4만5천 엔의 임대료뿐만 아니라 가구나 전자레인지 등의 전자기기도 빌리는 것이라서 돈을 내야 해요. 그러다보면 실제 손에 쥐는 것은 얼마 안 되지요”


가격을 대폭 내린 식당 앞에 줄서 있는 일본 시민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08년 11월 비정규직과 근로빈곤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래 올해로 다섯 번째이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는 충격이 너무 컸다. 일본은 종신고용과 숙련노동자, 품질중시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로 도배를 한 긴자의 휘황찬란한 거리에는 7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맥주집이 있다. 100년 전통의 음식점에는 자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그런 일본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쉽게 무너진 것을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나치게 비관적인 일본 학자나 노동조합만을 만난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지만 후생노동성과 지역 노동국을 방문하고 히비야 공원의 파견촌을 찾아 간 후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정해야 했다.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지켜보면서 평생 일을 해도 근로빈곤의 덫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일본의 현실임을 납득해야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이분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도쿄 도청의 유명한 전망대에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이 없다 하여 그곳에도 함께 갔다.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이 바로 한국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 필자는 한국에서 임금 근로자의 43%가 일하고 있는 5인미만 영세사업체의 고용주와 노동자를 인터뷰 했다. 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에서 희망퇴직을 하고 두 번에 걸쳐 창업을 했던 정남길씨(가명, 48세)는 지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다. 그가 정규직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10여 년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을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은 아무것도 없었다. 월 79만원을 받으며 모 청소업체에서 일하는 그에게는 아직 학생인 두 아이들이 있다.

“제 탓이지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정남길씨는 그래도 아쉬운 듯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급여가 작아요. 1주 5일, 하루 8시간 꼬박 일하는데 퇴직금도 없고, 9개월 계약직이거든요. 그래도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인데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게 아쉬워요. 사회보험은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난 직장은 5개월짜리였기 때문에 두 달 실직동안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3년간 일본과 한국은 자살률이 전 세계 1, 2위를 다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마저 없는 사회, 혹시 일본과 한국이 그렇게 닮아가는 것은 아닐지, 일본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인권연대 인턴 / 이영주

  인권연대 제3기 대학생 인권캠프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한국 사회 노동문제'를 주제로 하는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입소문을 통해 너무도 기대하고 있던 강의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듣고, 궁금했던 점도 질문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노동하는 인간, 인간적인 노동…….

  하종강 선생님께서는 “노동자라는 단어 말고도 같은 뜻의 근로자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굳이 노동자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셨고, “노동자와 근로자는 국어사전만 찾아봐도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는 답변을 하셨다고 했다. 강의록을 정리하면서 문득 그 기억이 나 검색을 해보았지만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 노동자 (勞動者) [명사]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노공(勞工).
  : 노동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일용 노동자
  : 계속적인 비에 공사판의 노동자들은 며칠째 일을 못하고 있다.
  :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 근로자 勤勞者 [명사]  발음〔글ː--〕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 경기가 점차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근로자의 임금 인상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 이번 협상은 회사 측이 근로자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노동력으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것'과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고민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의외로 빠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근로자가 노동자보다 더 큰 개념이다, 노동은 육체노동이고 근로는 육체노동에 정신노동도 포함하는 것이다, 노동 개념에 시간을 더하면 근로가 된다, 노동에 대한 반사적 거부감 때문에 근로라는 말을 만들어내지 않았겠느냐 등 다양한 대답들을 들었다. 아르바이트 할 때나 들여다보았던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도 찾아보고 옥편이나 포털 백과사전을 찾아보기도 하였지만 크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전국환경미화원연합(http://cafe.naver.com/kjsch)> 카페의 게시판에서 “근로자의날 폐지하고 노동절로 바꿔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과거에는 노동절이었지만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날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근로부가 아닌 노동부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조합이라고는 하지만 근로조합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노사협의라는 말은 쓰지만 근사합의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 글에 의하면 근로자란 부지런할 근(勤)에 일할 노(勞)를 써,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즉 사용자와의 상하관계를 염두에 두어 부지런히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하루 쉬어라 하는 정부와 재벌들의 선심성 의도가 담긴 단어라고 했다. 반면에 노동자라 함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사용자에게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여 생산의 주체로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담고 있다고 했다. 결론은 '주는 대로 놀 것이냐, 당당하게 권리를 찾을 것이냐'에 대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꿔나가는 작은 실천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글이었다. 절차나 결론이야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하고 싸워나가고 있는데 나는 이토록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으니 정말 한심하고도 부끄러웠다. 이렇게 하루하루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채워나가는 미래의 완성된 나를 상상하면서 다이어리 한켠에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에 대해 간략히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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