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에 각 계층의 인권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사상, 권력의 형태, 근·현대에서의 인권보장의 전개와 대응의 양상 등을 사회경제적·정치적·법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접근하여 서술
저자소개
스기하라 야스오 –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로서 다른 저서로는 <헌법의 역사>등이 있다.
옮긴이
차병직 - 현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이화여대와 서울대 법과대학 강사이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에서 심재우 교수 지도로 형사법을 공부하였고 저서로는 『NGO와 법』,『사람답게 아름답게』,『시간이 멈춘 곳 풍경의 끝에서』등이 있다.
목차
<인권의 역사>
서문
1. 문서에 의한 국민의 권리보장제도 등장
2. 입법권에도 대항할 수 잇는 '인간의 권리'등장
3. 근대시민헌법의 인권보장의 특색과 '빛'
4. 근대의 두가지 상이한 권리보장의 구상
5. 근대시민헌법에서의 인권보장의 '그림자'
6. 1871년 파리크뮌과 인권보장의 구상
7. 현대 시민헌법과 인권
8. 인권보장의 전면적인 장애물로서의 전쟁과 군비확장
9. 일본국헌법과 인권의 보장
10. 21세기의 인권보장을 위하여
11. 맺음말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1.인권에 대한 생각
2.인권의 어원
3.자연법과 자연권
4.권리의 문서화
5.혁명과 인권 선언의 시대
6.세계인권선언과 인권의 국제화
7.오늘의 의미와 과제
8.해결을 위한 생각
서평
<인권의 역사>,<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1. 인권사에서 시작해 보는 인권공부
인권이 21세기의 시대적 화두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며,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인권/인간다움이라는 잣대로 바라보려는 시도 역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인권을 ‘공부’해보겠다는 나선다면, 상황이 그다지 만만치는 않다. ‘인권’을 제목으로 담고 있는 책은 수없이 많지만, 인권공부를 위한 입문서로 쓸만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권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면, ‘인권사’에서부터 출발해 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어떤 분야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인권’은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인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좋은 입문서가 나와 있다.
2. 스기하라의 <인권의 역사>
먼저 소개할 책은 <인권의 역사>라는 책이다.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 스기하라가 저술하고 석인선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좋은 인권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인권은 처절한 민중의 투쟁 속에서 쟁취되어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먼저 근대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적 인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혁명이 인권보장의 특색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프랑스혁명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적 인권이 인류에 던져준 ‘빛’으로, 국가통치에서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는 점, 그럼으로써 봉건체제와 결별할 수 있게 해 준 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예술, 과학에서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근대적 인권의 ‘빛’과 함께 ‘그림자’도 동시에 조명한다. 그 ‘그림자’란 ‘자유’의 보장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노동계약의 자유’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오히려 약화시켰고, ‘경제활동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오히려 악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근대시민혁명 이후에도 끊임없이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싸웠고,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헌법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복지국가가 새로운 국가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참정권이나 강화되고, 기존의 자유권이나 청구권적 기본권도 더욱 강력하게 보장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일본의 진보적 법학자답게 인권보장의 전면적 장해물로서 전쟁과 군비확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실질적 인권의 보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인권보장의 과제로 민주주의의 강화, 사인간의 인권보장, 외국인의 인권보장, 여성의 인권, 어린이의 인권문제, 국제적 인권보장 등을 거론하고 있고, 소위 ‘새로운 인권’(제3세대인권)의 과제로 평화적 생존권, 환경권, 알 권리, 프라이버시권, 교육의 자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1992년에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제들은 우리에게 전혀 ‘낡은 과제’가 아니다.
3. 차병직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차병직 변호사의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오늘의 의미>라는 책이다. 불과 126쪽 짜리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정보는 만만치 않다. 책의 앞부분은 인권의 어원부터 시작해서, 인권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권에 대한 현대적 의미와 과제, 그리고 해결방안을 정리하고 있다. 내용면에서 학술적인 엄밀함은 부족하지만, 입문서로서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짧지만 담을 것은 다 담았고,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인권의 과제도 중요한 논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책의 절반이 ‘부록’인데, 부록에서는 세계의 주요 인권선언을 번역해 놓았다.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 인신보호법, 권리장전, 버지니아 권리선언, 미국독립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세계인권선언까지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주요 인권선언을 총 망라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인권선언을 단순히 ‘문서’가 아니라, 민중들의 처절한 투쟁 속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인권의 역사>를 읽으면서, 해당 역사적 문서들을 함께 읽어 간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이 두 권의 책은 워낙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인권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분량도 짧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는 인권의 역사를 좀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룬 연구서가 없다는 점이다. 이 두 책으로 입문한 독자들이 좀더 읽을 만한 인권사 책은 현재로서는 마땅한 것이 없다. 인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수십 권의 서양서적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인권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듯 하다. 그래도 인권사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꼬뮨까지>(까치, 1994)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사를 다룬 역사책이지만, 근대시민혁명 자체가 인권보장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의 인권보장에 대해서는 장호순 교수의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개마고원, 1998)가 읽을 만 하다. 이 책은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나타난 인권관련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요약하고, 그 의미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서평은 홍성수 교수가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 기고한 것으로, 홍성수 교수는 런던정경대학(LSE) 박사과정에서 인권법과 법사회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숙명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요 판결 20개 사례를 통해 미국 사회에 법치주의가 뿌리내려지는 역사적 과정을 조명한다. 더불어 하나의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미국 사회가 겪은 모순과 갈등의 드라마틱한 과정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미국을 있게 한 저력으로서의 '법치주의'이다. 다양한 민족·인종·언어로 이루어진 이민국가, 그래서 갈등과 분열의 잠재성이 특히나 높을 수밖에 없는 미국이 강고한 사회통합을 이뤄내어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까닭이다
저자소개
장호순 -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Carolina)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언론의 자유와 신문기업 규제”, “언론출판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방송광고 심의규정의 위헌성에 관한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는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언론의 자유와 책임>,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등이 있다.
목차
개정판 서문
머리말
미국 헌법의 발자취
제1장 사법부와 대통령
대통령의 특권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보다 앞서는가
대통령 비상조치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최저임금법은 노사간의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제2장 사상과 이념의 자유
공산주의자도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폭력행위 선동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제3장 표현의 자유
항의의 표시로 국기를 태울 수 있는가
음란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컴퓨터통신에서 음란성 표현을 제한할 수 있는가
제4장 언론의 자유
공익을 위해 신문 발행을 사전에 중지시킬 수 있는가
공직자를 비판하는 언론보도가 명예훼손에 해당되는가
국가 안보가 우선인가,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인가
신문기업이 누릴 수 있는 언론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제5장 공정한 사법제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나
강요된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
불법적으로 입수한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있는가
시민의 기본권은 전쟁중에도 보장될 수 있는가
제6장 평등권 보장
흑인은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가
여성노동자에 대한 특별대우가 평등권 위반인가
무엇이 직장내 성희롱인가
주립 군사학교에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가
서평
인권의 나라 미국?
미국의 인권과 연방대법원
미국이 세계 인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 프랑스 인권선언과 더불어 - 인권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이며,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미란다원칙’이나 ‘증거배제법칙’, 그리고 ‘명백-현존 위험의 법칙’의 미국에서 발전한 중요한 인권 법칙들이다. 그 외에도 미국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인권문제에 대해 세계적인 기준을 제시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이러한 인권 발전의 배후에는 ‘연방대법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인권발전을 주도한 것은 위대한 정치지도자도 아니고, 민중들의 거대한 투쟁도 아닌 9인의 대법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인권사를 공부할 때 가장 주의 깊게 살펴할 문서들은 인권이론서, 선언문, 행정부 문서가 아니라 연방대법원 판결문들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명판결문과 인권의 역사를 연결시킨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의 기획은 미국의 인권발전을 조망하기에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 명판결문 20개를 뽑아 이야기 식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첫 번째 글은 총론격인 ‘미국헌법의 발자취’이다. 짧은 글이지만, 각론의 여러 판결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한번 읽어봐야 한다. 미국의 (인권)역사에서 연방대법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이후의 서술은 각론에 해당한다. 전체를 대통령 권력,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 , 언론의 자유, 공정한 사법제도, 평등권 보장 등 총 6장으로 나누고, 총 20개의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다루고 있다. 판결문만 요약하여 소개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사실관계,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배경, 하급심 판결, 기타 관련 판결, 그리고 판결의 후속결과까지 알기 쉽게 잘 정리해 놓고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미국의 판결문이나 판결 요지라도 한번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법지식이나 미국역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아무런 지장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판결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권위
이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듯이,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미국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중요한 인권판결을 사회에 내놓음으로써 인권보호의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때로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의도와 어긋나는 판결도 하고 (아이젠하위 대통령과 워렌 대법원장), 국민감정에 반대되는 판결도 소신 있게 내놓기도 했다. (아히만 판결-성조기보호법 위헌 판결)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그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사법부에 국민대표기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중요한 근거가 바로 소수자 보호라는 논리이다. 즉, 다수파 기관인 행정부나 입법부의 전횡을 사법부가 견제하는 것은 소수자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금까지도 그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밀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일반적 정책 사안에 대한 개입은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소수자 기본권 보호에 집중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던 것이다. 이 점은 소수자 인권보호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면서,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판결(수도이전 등)을 내놓고 있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사법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권위를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기술한 이유는 미국의 경험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법치 국가로 발전하는데 참고할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7쪽)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러한 긍정적 시사점이 한국의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선 다음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과연 미국의 인권 수준이 우리가 보고 배울 만큼 선진적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법부가 주도하는 인권 발전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태로운 자유권
편의상 미국의 인권수준을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먼저, 자유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형사절차상 인권보장 등에 대한 미국(연방대법원)의 기여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인권상황은 그러한 평가를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자유권은 국내외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로 최근의 각종 인권단체의 보고서는 미국 본토와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미 그 실태가 만천하에 공개된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포로학대가 대표적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테러와 관련하여 감시가 강화되고, 형사절차에서의 방어권도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미란다원칙’과 ‘증거배제법칙’의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율과 수감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이 비율은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선진인권국가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사형집행이 많은 나라이다. 자유권의 핵심 중 하나인 언론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미국의 언론 자유는 세계 53위에 불과하다. 미국식 언론관이 반영된 프리덤 하우스의 순위에서도 미국은 16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나라를 우리는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미 해병대가 이라크 포로들을 사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미국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이 너무 서툴러 사형수가 큰 고통을 받았다며 가족들이 교도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악화일로의 사회권
사회권으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유권과 사회권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회권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민들의 빈부 격차와 빈곤율은 최악의 수준이고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지만, 소득재분배를 위한 정책이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고의 경제력과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사회이지만, 하위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은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의료현실이다. 미국은 GDP의 15%를 보건의료에 쓰고, 의료기술도 단연 세계최고지만, 국민의 16%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고, 핵심적인 의료지표인 영아사망률이나 모성사망률은 선진국 중 하위권에 불과하다. 또한 흑인수감자는 백인의 6.6배이고, 흑인 영아사망률은 백인의 2배이고, 빈곤율은 백인에 비해 흑인이나 라틴계열이 3배 가까이 높으며, 의료보험 미가입자도 백인에 비해 흑인이 2배, 라틴계열이 3배 높다. 최고의 경제력과 (의료)기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경제력 1위 국가 미국이, 세계 행복지수, 삶의 질 지수, 글로벌 평화지수 등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 셈이다.
이쯤 되면, 미국이 주요 인권조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실제로 미국은 기본적인 인권규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의 1, 2 선택의정서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고, 191개국이 가입한 아동권리협약이나 170여 개국이 가입한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으며, 문화다양성협약, 국제형사재판소 협약,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지 않다. (물론 이라크나 북한 민중의 인권에는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다!)
사법부에 의한 인권보호?
또 한 가지는 사법부에 의한 인권발전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법관들이 민주적 대표들이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헌법학적, 정치학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인권의 진전이 공적 토론을 통한 합의가 아니라 엘리트 법관들의 양심과 혜안에 의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로버트 달의 <미국헌법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를 참조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사법제도는 미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며, 미국 밖에서도 적용 가능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경험을 우리가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 서평은 홍성수 교수가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 기고한 것으로, 홍성수 교수는 런던정경대학(LSE) 박사과정에서 인권법과 법사회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숙명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