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글을 쓴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까지 내 일기장이 열 몇 권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초등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방학일기를 몰아 쓰면서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도 책 읽은 후의 감상문을 써오라던 숙제도 한몫했지 싶다. 게다가 매월 언니가 사다준 ‘계림문고’의 소년소녀 명작동화 시리즈도 단단히 한몫 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가져다 준 감동과 상상력을 드러내어 남기고 싶었고, 그리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저녁 어스름이 지면 이집 저집 불러대던 아이들의 이름들...그 이름을 메아리로 남기고 뿔뿔이 흩어지는 동무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야릇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도 어김없이 엄마의 부르심에 집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야 했지만...

산이 주던 감동, 들판의 향기, 코스모스의 하늘거림과 그 냄새, 저녁 답의 애잔한 노을, 해거름의 알 듯 모를 듯 했던 쓸쓸함... 하루 동안 접했던 그 모든 감동과 느낌과 활동들을 내 언어가 닿는 한 가능한 표현해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 글을 통해 누구와 무엇과 소통하고 싶었을까? 여튼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일기장이 두툼한 노트로 열 몇 권이 되었다. 그러나 소위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글은 점점 더 멀어지고,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성명서나 기자회견문 종류로 한정되어 버리고, 사고마저도 그 틀에 갇혀 버리면서, 자연과 동무/사람이 주는 감동을 예전처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편이, 불안과 강박증을 가진 감동 불감 증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물을 흘러보아 넘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일상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 일상은 매너리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이 새로운 것이 될 때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같은 일상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일상은 항상 변화무쌍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상을 색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힘을 글을 씀으로써 회복할 수 있는 듯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버스와 전철과 마을버스를 교대로 타야 하는 나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호박스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월요일이었다. 아마도 여기 이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곰이 일상을 두리번거렸었나 보다.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이 많았다는 뉴스를 언젠가 본 것은 같아 곧바로 추리를 해본다. 아마도 버스승객들의 폭행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왠지 안쓰러웠다. 물론 운전 내내 좌석을 떠나기는 힘들지만, 보호대라는 경계로 승객들과 단절된 기사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까?,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의 안전은 안전인가? 속박인가? 뭐 이런...

 그러다가 얼마 전 대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세대 주택의 복도나 계단도 주민들의 허가 없이 들어오면 불법침입이 된다는... 물론 단서는 안전과 범죄 예방의 효과라는 것. 이제는 지인의 집이 다세대 주택이면, 지인이 집에 있음을 확인하고 가거나,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 공동복도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뉴스를 보면서 순간 ‘뭐 이런 0같은..?’ 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올라야 했다.

 그런저런 경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사랑이 결혼을 하면 전쟁이 되는 레퍼토리... 아이가 생기면 더 강해지는 전쟁, 그 안에는 여전히 여자와 남자는 다르고, 아이는 여자의 몫이고, 돈 적게 버는 일/여성운동은 소일거리 이거나 취미이거나 이기적인 활동이라는 사고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다. 그 경계로 인해 소통의 단절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따라서 단절은 지속된다는 결혼한 여성 활동가라면 한번은 경험했을 법한 그 뻔한 레퍼토리가 오늘 아침, 십 수 년 전의 내 경험과 꼭 같은 것에, 그 반복에 진저리치게 만들었었다. 내 딸은 달라질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며칠 전 여성단체들이 모여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광안리를 지척에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토론은 무슨 토론?’, '이런 장소에서 정책을 논의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등등... 들썩이는 엉덩이와 궁시렁대는 입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진행되자 모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뭐 모든 시민사회운동영역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일고 있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성운동영역도 마찬가지이고 그 대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위 대중, 여성들과의 소통의 방향과 방법,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자세와 방법, 정권으로부터의 위기 대처방법, 그리고 여성운동들/단체들 및 제 시민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여성운동 안에서의 경계와 단절을 허물고 새로운 연대를 통해 힘을 집결해보자는 것이다. 여성운동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름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르게 접근하면서 그 안에서의 경계들이 만들어져 왔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허물지 못할 공고한 벽으로 굳어 단절을 유래하기도 했다. 소통의 거부와 소통할 방식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벽들이었다. 이제 그 벽을 새로이 허물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허물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벽을 허물기를 원하는가? 왜 허물려고 하고 허물어야 하는가? 가 먼저 질문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일한 대오를 만들고 대중들이 수용할 적절한 이슈를 선택하면 그것이 곧 연대가 되고, 광풍이 되어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사진출처 - 한겨레

 갑자기 일터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던 동료이자 친구와의 갈등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 이 정도는 니가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기억하는 너랑 다를까? 배신감 드네..’ 이런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에서 출발했음이 보인다. ‘적어도 친구라면..’ 혹은 ‘여성운동 한다면..’ 이런 자기기대에 기반한 전제들이 실망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만이 옳다는 닫힌 사고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좋아는 하지만 다름을 안다. 그리고 가끔 그 다름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 뭐 너니까!’, ‘흠, 나는 아닌데... 너는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나도 그도 쉽게 된 것은 아니라 본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만남이 오면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도 못한다. 그러나 한계 속에서나마 갈등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것은 갈등을 숨기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한 수많은 부딪힘, 자기성찰 이런 것들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버스기사의 보호부스, 공용주택 복도와 계단의 외부인 차단, 남편과 아내의 소통의 벽, 그리고 여성운동들 안의 차이, 그로인한 경계들... 둘러보면 우린 너무 외롭다. 경계(boundary)는 곧 그 경계만큼 행동하게 하며 그 경계를 중심으로 각각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차이로서 경계는 필요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계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만 유용하다. 경계가 벽이 될 때 차이는 곧 단절이 된다. 사람간의 단절은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게 하지 못한다. 사물이나 객관화 시킨 대상이 된다. 기사와 승객의 단절은 그 사이에 기사와 승객의 책임과 권한의 다툼만이 존재한다. 오늘아침 기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승객은 어땠는지? 같은 맥락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도 각각의 역할과 의무와 권리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외롭고 외톨이이고 항상 경계하는 존재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지 않되 단절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연대하고 또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경계를 인정하는 것, 경계를 넘되 내 것으로 남의 것을 채우려 하지 말 것, 혹은 그 반대. 경계란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등이 아닐까. 연대는 그래서 경계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계를 보고 인정한다는 것은 단일한 관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할 때, 역지사지를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을 때, 나나 너나 스스로 말하게 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같음이 발견될 것임으로.

 경계심을 유발하는 사회에서 경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사회를 인정하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절을 위한 경계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경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경계는 이미 그 안에 소통과 교류와 성숙을 포함하고 있다. 경계가 성숙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적 조직적 성찰과 논의/소통이 또 필요하다. 때문에 그것은 삶이자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성찰하는 삶은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란 그래서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 방식 등 과정에 관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다 똑같으니 제발 남도 좀 생각하며 살자구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구요. 그리고 집단으로서 가장 큰 덩어리인 성별경계에서 볼 때, 남성여러분 제발 여성들의 경험과 입장을 생각해 보시라구요.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한 게 뭔지 같이 고민해 보자구요.”

 생전에 노무현이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즐겨 봤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나도 그 드라마를 구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감상평을 한 마디만 한다면 ‘왜 노무현이 이 드라마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정도 되겠다.


 웨스트 윙이란 백안관 서쪽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대통령 참모진들이 일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짐작하셨겠지만 백악관 참모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드라마는 토론으로 시작해 토론으로 끝난다. 백악관 비서실장까지 포함해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론을 벌이고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 토론 속에 정책이 담겨 있고 가치관이 담겨 있다. 물론 재미까지.


 드라마를 유심히 보면서 생각해봤다.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내 눈길을 끈 건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공간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에 문이 여러 개가 있다. 비서실장과 바로 문이 이어진다. 대통령은 언제라도 필요하면 문을 열고 비서실장과 대화를 할 수 있다. 비서실장 사무실은 조금만 움직이면 참모진들 사무공간과 곧바로 이어진다.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또 다른 문은 복도와 연결되는 듯한데, 이 복도도 백악관 참모들 사무공간과 이어져 있다. 대통령이 이 복도를 걷다가 참모와 마주쳐 이런 저런 얘길 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바깥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도 있다. 대통령은 관저에서 회랑을 지나 곧바로 집무실로 들어간다.


 대통령이 백악관이라는 공간에서 중심축에 위치한다. 대통령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참모들을 불러 ‘토론’을 할 수 있다. 백악관이라는 공간 자체도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서 웬만한 집회라도 열리면 집무실에서 구호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런 공간구조를 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에서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겨레하나’가 주최한 답사를 인솔하던 사진작가 이시우씨한테 듣기로는 철원군당 위원장 사무실은 1층에 있다고 한다. 노동당사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철원 노동당사 최고 책임자 사무실이 있는 셈이다.

 청와대라는 공간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 작년에 몇 번째인가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시민들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었다.”


 왜 뒷산에 올라갔을까? 설마 대통령 집무실에선 노랫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닐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안 들릴 정도라면 대통령 집무실은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고립된 공간이 아닐까.


 그렇게 토론을 좋아했다는 노무현조차도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점점 토론에서 멀어져 갔던 기억이 난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진 사무실을 아예 다른 건물에 배치했다고 한다. 참모들과도 만나기 쉽지 않으니 국민들 얘기 듣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1일부터 개방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일 오전 문화연대, 참여연대, 야4당 서울시당 
계자 20여명이 광화문광장조례안을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참석자들이
피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미신고 불법집회로 판단해 수차례 해산 요청 후 참석자 10여명을 연행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에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열었다. 처음엔 순진한 맘에 광화문 광장이 생기면 청와대와 몇 백 미터는 가까워지니까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다. 하지만 역시나. 광장에서 기자회견도 못한다는 희한한 정부 방침이 나왔다. (도덕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북한에선 수령님 말씀이 헌법보다도 위에 있다고.)


 앞으로도, 현직 대통령은 시민들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면 힘들게 뒷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꺼면 광화문광장에 확성기라도 설치해 주는 게 ‘선진화’로 보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나 맞는 것 아닐까.


 @뱀다리(蛇足): 광화문의 명물이 됐다는 게 광장일까? 차도 한가운데 분수대와 화단, “큰 칼 옆에 차고” 있던 충무공을 “큰 칼 옆에 들고” 있는 왼손잡이로 바꿔놓은 이순신 동상, 거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봤던 그 자세 그대로 세종대왕 동상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이것저것 꽉 채워놓아서 풍물패 길놀이 하기도 쉽지 않겠다. 내 눈엔 아무래도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 ‘공원’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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