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왜 그토록 언론장악에 골몰하는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생각대로 언론지형이 개편되면, 국민 입장에서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짚어주십니다.

※ 강사 소개 – 최문순
MBC 기자 출신으로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 등을 역임한 최문순 의원은 시민과 함께하는 의정활동,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힘겨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정치인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제71차 수요대화모임은 최문순 의원(민주당)을 모시고 진행합니다. MBC 기자 출신으로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 등을 역임한 최문순 의원은 시민과 함께하는 의정활동,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힘겨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정치인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최문순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왜 그토록 언론장악에 골몰하는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생각대로 언론지형이 개편되면, 국민 입장에서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짚어줄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언론의 자유는 집회와 시위의 권리와 함께 기본중의 기본이 되는 인권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기본적 인권이 유린되고 위축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디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음모에 대해 파헤치면서, 시민과 함께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졌어.”


 초년 시절인 1998년 무렵, 인사동 한 술집에서 선배 기자가 말했다. 그가 다니는 신문사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웠다. 술파는 것과 아무 관련 없는 주류 신문, 뭘 고쳐 바로 잡는 것과는 더구나 관계없는 보수 신문, 하물며 정중동의 미덕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서 툭하면 노골적으로 고함치는 조중동 등이 그의 머리 위에 붙어 다니는 꼬리표였다. 그것은 때로 높은 사람들을 굽실거리게 하는 후광이었고, 때로 낮은 사람들로부터 밉살받는 낙인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낙인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언론사가 서로 싸우는 일의 피곤함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했다. 소속사 상관없이 기자들끼리 뭉쳤다 했다. 그가 기억하는 낭만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부처 출입 기자들이 일제히 ‘당꼬’(담합)한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기사꺼리 없습니다. 청장 간담회가 있는데, 특별한 일 있으면 다시 보고하죠.” 소속사 상관없이 모든 기자들의 아침 보고 내용이 똑같다. 오전 11시, 청장이 기자실로 내려온다. 특별한 내용이 있을리 없다. 브리핑하라고 부른 자리가 아닌 것을 청장도 알고 기자도 알고, 심지어 신문사 데스크들도 짐작하고 있다. 청장은 휘하 국장 몇몇을 데리고 기자들과 함께 북한산 계곡에 개고기 먹으러 간다.


 폭탄주 몇 잔 돌았고, 계곡에 발도 담갔고, 아랫도리 뜨끈해지는 고기도 먹었으니, 이제 화투장을 펼친다. 어쩐 일인지 국장들이 자꾸 돈을 잃는다. 앞에서 자꾸 쌍피를 푼다. 훗날 개평을 줄 지언정 노름판에서 딴 돈, 사양하는 법 없다. 오늘 처음 고와 스톱의 차이를 익힌 기자들조차 어쩜 자꾸만 돈을 딴다. 그러다 언쟁도 한다. 판돈과는 아무 상관없는 주제다.


 “김 기자님, 평소에 좋게 봤는데, 지난번 그 기사는 너무 하셨어요.” “아니 박 국장, 김 기자 기사가 뭐 어때서. 내 비록 김 기자한테 물먹고 우리 회사에 가선 열나게 쪼였지만, 기자라면 당연히 그 정도 지르는 맛이 있어야지.” “에이, 이 기자, 기분 좋은 날, 왜 목소리 높이고 그래. 자자, 술이나 마시자.” “아니지,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밥 좀 얻어먹는다고 이런 수모를 왜 당해야 하나 말이야.”


 이 순간, 기자는 하나다. 서로 배려하고 추켜세우고 존중한다. 왜? 우리는 무슨 신문 기자, 무슨 방송 기자가 아니라, 그냥 기자니까. 우리는 기자라니까. 저들은 공무원이고…. 소속 매체의 꼬리표가 사라지고, 오직 기자 개인의 자격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판돈까지 따오는 이런 종류의 ‘낭만’이 가능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 배신자가 나오면 안 된다. 아침 보고 때 딴 소리 하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개고기 먹을 때 삼계탕 먹겠다고 샛길로 빠지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둘. 공무원 가운데 내부 제보자가 나오면 안 된다. 기자들이 술 먹고 놀았다고 다른 언론사에 알리는 간 큰 공무원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간이 크려면 스스로 청렴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이가 드물었다. 셋, 북한산을 등반하다 그 낭만의 자리를 목격하고 휴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시민들이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예전에는 그러고 싶어도 휴대폰이 없어 곤란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낭만이 사라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소수의 사이비 기자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흐물텅하게 먹고 노는 술자리는 사라졌다. 기자들도 많이 나아졌고, 공무원들도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데,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진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1998년, 인사동에서 들었던 선배 기자의 토로에는 다른 맥락이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 오고 있음을 비감하고 있었다. ‘함께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던’ 친구들이 곁을 떠나고, 거리의 광풍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낭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시장경쟁이었다.


 시장경쟁은 음습한 담합의 낭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영토를 뺏고, 그 땅에 뿌려진 연대의 씨앗을 고사시켰다. 나쁜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언론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망하는 신문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를 제쳐야 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중앙일보 기자가, 한겨레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가, 술자리에서 상사의 흉을 보고 소속사의 구태를 토로하며 어깨동무하는 일이 사라졌다. 조직이 사활을 건 경쟁을 하면, 구성원 개인의 입지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 기사 내보내면 신문사가 망해. 이 신문사 망하면 너는 어디 가서 기자질 할 거야?” 자본의 얼굴을 한 데스크의 압박 앞에서 ‘기자’는 무너지고 ‘월급쟁이’가 자랐다.


 회사가 주는 월급 받아 사는 게 무슨 죄악이겠는가.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겠다는 데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그러나 그런 월급쟁이 언론인이 많아질수록 시민들은 불행해진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이다. 언론은 시민사회를 ‘대의’한다. 권력자들에겐 권력이 있고 부자들에겐 돈이 있으니, 힘없는 서민들에게 ‘말’을 돌려주어 권력과 돈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누구도 그들을 선출하진 않았다. 그들에게 그런 권능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청했다. 언론의 정당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완성된다. 시민이 직접 제어할 통로가 마땅치 않다. 따라서, 시민의 정의를 대변하지 않고 권력과 돈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언론이 많아지면, 결국엔 나라가 망한다.


 ‘공익적 개입’이 거의 유일한 통로다. 투표로 언론 권력을 선출할 방도는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언론의 토양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공익 기금, 공적 부조 등의 형식을 빌어 정부는 언론을 도울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적절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말과 글을 시민들에게 전하도록 도울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가 그들의 공장이고 은행이고 시장이며 군사기지인 거대 제국이 어찌하여 공장은 사라지고 은행은 망하고 시장은 위축되는데 제국의 군사기지만 여전한 한국의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나는 미국 시민권을 따기 전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대부분은 그래서 여러 기금을 만들어 작은 언론사를 배려하고 돕는다.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농사꾼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역 앞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 국민선언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미디어법이 통과 됐던가? 그렇다는 이도 있고, 아니라는 이도 있다. 시민 전체가 기억의 혼란에 빠져드는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만의 하나, 미디어법이 직권상정과 대리투표와 날치기의 권능으로 의회를 통과했다고 치자. 그것은 언론 다양성이 아니라 시장 경쟁을 북돋는 법안이다. 다양한 채널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사는 몇몇 곳만 살아남을 것이다. ‘다양한 기자’는 확실히 사라질 것이다. 채널의 다양성과 언론의 다양성은 별 상관이 없다.


 시장 경쟁 자체가 ‘다원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것은 독점 또는 과점을 향하는 경로에 불과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토록 모범으로 떠받드는 미국이 그 미래다. 미국에는 수많은 방송 채널과 수많은 신문이 있다. 그런데 그 90%가 6대 거대 미디어 기업 소유다. 자본가, 금융 전문직, 행정관료, 연애·스포츠 스타 등에 관심이 많은 언론사들이다. 언론기업을 경영할 자유는 있겠지만,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이미 결론이 나온 상태다. 미국은 독점 미디어 기업의 나라다. 언론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저항하는 언론사들이 제법 버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희망 섞인 관측이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그런 ‘저항’ 언론사조차 살아남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 상업 콘텐츠 강화, 거대 자본 유치 등의 노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도·경영·기술·제작 등 언론의 모든 분야 종사자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의 여러 자회사들에서 단기계약, 파견근로 등의 형태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목숨은 파리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거울 것이다. 사주, 광고주, 주주, 데스크의 손가락질 하나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기자’라는 소명의식 따위, 그런 기자들을 엮는 연대의식 따위, 낭만에 밥 말아먹는 소싯적 이야기가 돼 버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생뚱맞고 얄궂게도 ‘낭만’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꿈꾸었던 기자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자는 격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문학과 정치에 대한 동경이 이 꿈 뒤에 숨어 있다. 소설가, 정치가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는 (문학의) 창작과 (정치의) 소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 한다. 동시에 자유로운 실존을 지키려 한다. 조직의 억압과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영토를 가꿔 두루 인정받으려는 꿈이다. 사주·광고주·주주·데스크 등에 휘둘리며 시키는 대로 쓰는 기자란, 애시당초 그런 꿈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런 기자들이 많아지면, 언론 다양성이 지켜진다. 그런 기자들의 자리가 사라지면, 언론 다양성은 멸종할 것이다.


 지 금,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MBC> 등은 치욕스런 통폐합의 미래 앞에 서 있다. 조중동은 국내 대기업, 초국적 미디어 기업 등을 끌어들여 방송사를 만들려 한다. 잘만 하면 다른 종편 채널이나 보도전문 채널 등을 통폐합할 것이다. 어차피 이 나라의 광고주는 3~5개 정도의 거대 미디어 기업을 후원할 만큼만 넉넉하다. 딱 그만큼만 살아남을 것이다. 광고 시장을 장악하면, 여윳돈으로 신문과 인터넷과 시사주간지 시장을 유린할 것이다. <한겨레> 등에서 일 해온, ‘실력은 있으나 너무 깐깐하지 않은’ 기자들을 높은 연봉으로 유혹할 것이며, 앙꼬를 다 내주고 겨우 버티는 매체가 있다 한들 쭉정이로 만들 것이다. 그런 매체들을 플랫폼 삼았던 독립 PD, 프리랜서 작가, 시민 기자, 저항 지식인 등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영상과 글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며, 그러다 이메일 압수당하고 블로그 폐쇄당한 끝에 감옥에 갈 것이다.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반대가 필요하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언론인들의 투쟁은 그래서 두말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구제도 필요하다. 15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사는 기자들이 있다. 여유 인력이 없어 탐사보도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기자들이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마흔 줄에 심근경색이 와도 병원 치료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자들이 있다. 각 언론사마다 ‘고립적으로’ 후원회원을 모으고 선의의 기부를 받아도 닥쳐올 언론사 통폐합에 속수무책인 기자들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소속 매체의 경계를 넘어 기자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서로를 추켜세우는 낭만이 필요하다. 그런 낭만이 가능하려면 뜻있는 언론인을 돕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따로 흩어져 각자 살 길을 도모하지 말고, 더 많은 기자, 더 좋은 기자를 시민사회가 품어 안을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선의의 기업과 시민의 돈을 모아 ‘참언론재단’을 만들자. 공부도 하고, 서로 노하우도 주고받고, 취재비도 지원하고, 어려우면 경제적 도움도 주자.


 6개월 탐사 취재 아이템에 2천만 원쯤 주자. 기사를 써서 인터넷 매체에 싣고, 신문에 연재하고, 책으로도 내고, 나중에 다큐로 만들어 극장에서도 상영하자. 기자 개인도 살고, 언론도 사는 길이다. 이런 일을 각 언론사는 도모할 수 없지만, 재단이라면 가능하다. 개별 언론사가 얼마 안 되는 인력으로 인터넷도 하고 방송도 하고 신문도 내면서 살아남으려 용쓰지 말고, 시민사회에 산재한 ‘광범위한 기자’들을 끌어안고 활용하자. 자유로운 영혼의 기자들이 더 많은 시민을 더 오래 만나 더 좋은 기사를 쓰도록 돕자. 그리고 그들이 매체 장벽을 넘어 두루 기여할 수 있도록 돕자. 어쩌면 좋은 언론사의 체질을 강화하는 선의의 매체 합병이 참언론재단과 같은 공익·시민적 조직에 의해 이뤄질 수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 규모를 키우는 앞에서 고립된 뉴스룸 운영으로 살아남길 꿈꾸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말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사를 시민에게 개방하자. 고립적인 채용, 고립적인 임금 테이블, 고립적인 뉴스 플랫폼을 헐어 버리자. 뜻이 있고 능력이 있는 ‘자유 기자’들에게 물적 토대를 제공하자. 그 시민들이 곧 뜻있는 언론사의 노동과 자본과 시장이 되게 하자.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야 계속 기업가·특목고 졸업자·미국 유학생·연예스타 따위의 기사를 쓰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는 노동자·실업고 졸업자·국내 박사·대학로 연극인 등에게 관심을 쏟자. 물론 그 가운데는 새로운 시선으로 기업가·특목고·연예스타의 가치를 발견하는 ‘진짜 보수’ 성향의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상관인가. 그런 이들까지 두루 품어 안는 것까지가 진정한 언론의 다양성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의 돈을 모으자. 신문사 하나, 방송사 하나 세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시민의 언론 전체를 살찌우는데 쓰자. 그러고도 누가 살아남는지 진짜 한번 겨뤄 보자. 그러지 않고서야, 기자 사회의 낭만은 정말이지 사라질 것이다. 멸종할 것이다. 지금 죽음 앞에 서 있는 것은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며 시민의 자유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다. 주 도심처럼 복잡하기야 할까마는 명색이 역세권이라 큰 아파트도 몇 동 있고 높게 지은 상가도 있으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기엔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으레 역 주변이 그렇듯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승합차도 있고 낮술에 취한 노인네들 다투는 소리도 있고 근처에 있는 병원생활이 답답해 밖으로 나온 환자도 있다. 누군가 망해서 나간자리에 새 꿈을 안고 입주한 상가에서는 아치형 풍선 아래서 현란한 몸짓으로 가게를 홍보하는 아가씨들이 있고 앞으로 남학생들이 몇이 킥킥 웃으며 지나간다. 대형마트로 장 보러 가는 엄마는 솜사탕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의 손을 거부하지 못하고 리어카 앞에서 잠깐 실랑이를 하기도 한다. 다들 열심히 산다.


 “별일 없이 산다”고 “내가 이렇게 사는 줄 안다면 너는 깜짝 놀랄”거라고 노래하는 가수와 나를 빼놓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별일 있이 사는 것 같다. 


 그 공원에 또 별일 있이 사는 사람이 있다. 능글맞은 말투와 표정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행색까지도 살피며 “신문한번 보시라구”라는 말을 간첩 접선 시도하듯 전하는 신문 판촉 요원이 그이다. 내가 좋아하는 신문 이라면야 캔 커피라도 한잔 사주며 수고하신다고 맞장구치겠지만 그 양반 꼭 조중동만 판다. 처음에는 못 봤지만 그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져 있다. 바로 눈앞에서 봉투를 흔들면 가지런히 펼쳐진 배춧잎사귀 몇 장이 부채가 되어 무더운 여름날 그 맞기 힘들다는 돈바람 쐬어준다. 영 달갑지 않으니 시원할 까닭도 없다. 나야 그렇다 치고 동네 아줌마 몇 분 그사이에 홀딱 넘어간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단돈 십 만원 변통하기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 언놈이 그와 같은 돈을 공짜로 하사한단 말인가. 그 정도 돈이면 두어 달 치 아이의 급식비를 낼 수 있고 매일같이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의 메이커 신발값을 반쯤은 댈 수 있고 매월 말 한숨 쉬는 만큼 빠져나가는 공과금의 몇 분의 일쯤은 담당할 수 있으니 늘 빠듯한 규모의 삶을 사는 아줌마들에게 그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은 아이의 고사리 손에 쥐어준 솜사탕보다 더 달콤한 것이겠다. 그가 나에게 접근해 온다면 나는 단 한마디의 말로 불쾌한 흥정을 거부할 수 있다. “나 한겨레 보는 남자야!” 그러나 그와 나는 단한번의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의 정체를 알아 봤거나 내가 그를 에둘러 피해갔거나...



백화점 앞에서 한 일간지 판촉사원(모자쓴 이)이 뒤춤에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 기획위원인 홍세화 선생은 한겨레, 한겨레 21 구독신청서를 꼭 들고 다닌다. 최근에 새로 맡은 직책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이니 구독신청 용지가 세장이다. 수없이 다니는 강좌의 말미에는 꼭 그 용지를 들이밀고 구독신청을 받는다. 풍부한 학식과 경험에 나오는 그의 열강에 감동한 사람들은 예의 선한 웃음과 함께 건네는 구독용지를 거부하지 못한다. 얼마 전 모 단체 후원 감사의 밤이 끝난 뒤풀이 자리에서도 그는 용지를 들고 테이블을 돌며 구독신청을 받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진보적 일간지의 기획위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사의 편집인이며 더군다나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인 그가 해야 할일은 아니다.


 시민사회 단체의 행사에 이름 새겨진 화환 좀 돌리고 열심히 하는 후배들 어깨나 도닥거리고 무슨 무슨 단체의 이사쯤으로 이름 올리고 회의는 바빠서 못가거나 일 년에 한번 얼굴 비추고 가끔씩 생기는 지면에 “요즘 세상이 어째...”류의 칼럼 몇 자 적으면 충분히 어르신 대접 받는 연배임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 언론인으로 발품을 팔고 있다. 줄을 세우면 보이지도 않을 새카만 후배 언론인도 하지 못하는 그 험한 일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그에게 구독신청서를 적어서 돌려주는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밝다. 기쁜 일 함께 나눠주어서 고맙다는 표정이다. 나도 그랬다 꽤 비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을 신청하면서 나도 저분처럼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한 마음.


 “프랑스에 폴리틱스 라는 주간지가 있는데 말이지요. 그 사람들 독자 관리하는 게 우리와는 사뭇 달라요. 아주 질겨요. 자기들 밥줄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명확히 아는 거지요. 근데 질겨도 우리 조중동처럼 돈으로 처바르는 짓은 안 해요” 대학생 인권학교에서 만난 홍세화 선생이 우리 일행에게 잠깐 들려준 프랑스 잡지의 예는 무척 흥미로웠다. “폴리틱스”라는 잡지는 독자가 구독을 끊을 때 6번의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정기구독 만료 2개월 전. 1개월 전에는“귀하의 구독기간은 언제 까지 입니다”  보름 전에는 “연장을 안 할 시에는 결호가 생깁니다.”구독이 끝나는 시점엔 “귀하에게 폴리틱스 라는 잡지가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입니까?”라는 다소 신파적 메시지가, 구독 만료 이후에도 2달치를 무료 공급하면서 다시 한 번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잡지는 광고를 실지 않는다고 한다. 순수한 독자들의 구독료로만 운영해야하니 독자 한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구독료야 말로 잡지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생계인 것이다.


 어줍지만 나도 몇 장의 음반을 만들었다. 대학 강의도 하고 단체를 만들어 모금도 했다. 그러니 나의 밥줄은 음반을 구입해준 청자(廳者)들이고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부족하지 않게 해주니 대학에서 받는 월급의 근원은 학생들이다. 7억여 원이 넘는 모금에 참여해준 사람들 때문에 “에다가와 민족학교 지원모금”이라는 단체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밥줄인  그 사람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 음반 구입방법을 물어오는 이에게는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 찾아오라는 말밖에 못했고 강의 내용의 새로운 부분들에 대한 학생의 의견을 무시했다. 공연이나 강연을 의뢰하는 이들을 까칠한 요구로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살아야할 인생의 절반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내 밥줄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한 것이다.


 조중동 판촉요원의 불쾌한 유혹을 보면서 “한겨레”나 “경향“은 왜 안 되나?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들이야 만 원짜리 몇 장의 호객행위로 신문시장을 왜곡시키지만 그럼에도 “별일 있이 사는”조중동 판촉요원인 그의 열심을 내가 선호하는 신문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한겨레”나 “경향”같은 진보적 일간지의 모든 기자가 호주머니에서 정기구독 신청서를 꺼내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정권 들어서 생긴 재정악화로 고민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의 가방에 수북히 모아둔 회원가입 신청서를 상상한다. 참 좋은 일이다. 나도 이참에 음반 몇 장씩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들이 밀까한다. 물론 홍세화 선생처럼 폼 나지는 않겠지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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