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미/ 국민대 학생

 용산 국민법정 기소인 모집 캠페인을 하느라 서울역에 있었다. 용산 국민법정은 용산 사건에 대해 인권의 기준으로 다시 한 번 심판해보겠다는 것이고 책임자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소환해보자는 취지다. 오고가는 분주한 사람들의 틈을 잡고 유인물 돌리며 기소인이 되어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냥 스쳐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잠시라도 멈추어서 얘기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기소장까지 써 주기도 했다. 마침 서울역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30대를 막 넘은 것 같았고 표정이 밝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유인물을 건네며 ‘용산 국민법정을 하려 합니다’, 라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천 원만 줘요”

 당황한 나는 멈칫거리며 그 짧은 순간 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느냐 고민했다. 불친절하게 들이대니 돈을 주는 게 영 내키지 않아 급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는 비웃음이 가득 섞인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내 앞을 지나갔다. 마치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순간 나는 멍해져서 가버리는 그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허공만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뭔가. 왜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걸까.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거 하지 말고 나도 불쌍하니까 돈이나 달라, 거리낌 없이 줄 수 있니? 못 주잖아. 거칠게 말하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너 같은 사람 잘 안다는 듯한 그 조롱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이런 느낌 처음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마음이 찝찝했다. 뭘까. 천 원만 달라는 그 한마디에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초라해지는 그 기분, 새삼 바르르 떨렸다.

 또 하나, 최근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지인들이 모인 술자리였는데 내 옆에 있는 분은 내가 사회 운동하는 걸 못미더워하는 듯했다. 일단 너부터 잘 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백 번 맞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바뀌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를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꺼낸 한 마디.

 ‘그리고 진짜 도와주고 싶으면 니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도와줘라. 그게 진짜 돕는 거다.’ 타이르듯 한 말이었다. 사실 흔히 듣는 말이다. 내가 잘 돼서 돈 많이 벌면 훨씬 더 크게 도울 수 있다고, 어른들이 쉽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참 씁쓸한 일이었다. 연민에 젖어, 희생정신에 젖어, 그렇게 남을 돕고 싶어 안달 난 착한 아이로만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내가 믿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무기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캠페인을 하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것, 남들 싸우는데 옆에 가서 같이 힘이 되어주는 것. 이런 게 훨씬 더 값진 것, 아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게 현실적인 거야” 라고 했을 때 “그 현실이 대체 뭔데요”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공격 안 하니만 못 한 너무나 허약한 말이 되어 버린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준비위원회’(위원장 강경선)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사고현장(오른쪽 건물) 옆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달 18일 사회 각계
대표인사 9명과 50명의 국민배심원으로 구성된 국민법정을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
‘용산 국민법정’은 경찰의 강경진압과 무분별한 재개발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호중 준비위원장(서강대 법대)은 “국민법정은 시민 이름으로 시민 법정에 세워
용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부가 하는 저소득층 정책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마치 자비로운 일이라는 듯이 유가환급금을 준다고 하고 저소득층에게 저이자 대출을 해준다고 하는 그런 정책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게 인권이라는 것인데, 원래 가진 걸 자꾸 빼앗아 가놓고선 조금 주고 생색내고 자꾸 채무를 만드는 악순환에 빠뜨리는, 그래도 그게 현실적이라는 말에, ‘이거라도 어디야’,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모습들. 왜 돈으로 돕는 것은 위대하고 자비로운 일이 되고 사회운동을 하는 일은 쉽게 선동이라 치부되고 현실성 없는 이상적인 일로 취급받는 걸까.

 그래도 더 속상한 건 그런 말들에 흔들리는 나다. 난 여전히 ‘잘 싸우지 못 한다’ 요즘 겪는 이런 일들은 내가 왜 인권운동에 끌렸고, 몇 년 동안이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왜 계속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어쨌든 좋은 일이니까, 한편으론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내겐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이 정도의 답변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고민이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내가 나 스스로를 자원 활동가라고 칭하는 것도 내 의지로 내 활동을 구성하고 방향을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엄마와 통화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엄마는 공부를 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곧잘 전화해서 이런저런 걸 물어 본다. 어느 날 나는 불쑥 이런 얘길 꺼냈다. “엄마, 그래도 내가 엄마 공부할 때 이렇게 꼼꼼히 가르쳐주고, 돈 없어도 내 있는 거 다 꺼내서 선물사고 그러는 게 더 기특한 효도 아니겠나?” 딸의 말에 엄마는 한 마디 툭 던지셨다. “그래도 난 니가 돈 많이 벌어오는 게 훨씬 좋다.” 난 낄낄대며 웃었지만 전화를 끊고는 눈물이 왈칵 났다. 아, 내가 믿는 건 뭐지? 사실 되게 무력한 거 아닌가. 이게 진짜라고 믿는 것마저 나의 착각이 아닐까. 그나저나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걸까.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야할진대 아직도 나는 확신을 갖지 못 하고 말만 앞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말들은 허영일 뿐이다.

 돈이 아니더라도 옆에서 함께 하는 게 더 좋은 것이고, 얄팍한 거 말고 더 근본적인 것들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내 마음은 당장 가족 앞에서부터 휘청거린다. 물론 마음가짐도 좋고 돈도 많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내가 지금 믿는 윤리를 가지고선 겨우 겨우 살 궁리를 하며 살 거라는 게 미리 보인다. 어찌 보면 참 빤한 세상이지만 그게 또 맞다.

 이 정도 생각할 수 있는 게 지금 내 역량인 것 같다. 어쨌든, 믿다가도 의심하고 지치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엎어지고 주저앉고 그러면서 살아간다. “저는 세상과 싸우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뭐가 옳은지는 제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좀 서툽니다. 아마 계속 서툴 거예요. 그렇다고 서툰 게 싫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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