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휘/ 한겨레21 기자

 나는 이른바 캥거루족이다. 마치 어미 캥거루 뱃주머니 속 아기 캥거루마냥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러던 지난 겨울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와 여러 차례에 걸쳐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자 세입자인 내 입장에서는 결코 유리할 것 없는 다툼이었다.

 까닭은 이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큰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골목길 앞 쪽으로 주소지를 옮기겠다고 했다. 그 쪽 주소지라야 인근 ㅁ초등학교로 입학하라는 취학 통지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소지에서는 다른 ㄱ초등학교로 입학해야 한다. 그런데, ㅁ초등학교는 나와 내 누이가 졸업을 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인지라, 어머니는 유달리 그 학교에 애착을 느끼시는 듯했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시절, 누나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 전학 왔고, 얼마 뒤 나마저 입학해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공간이라,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ㅁ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다. 어머니는 주변 이웃들에게 물어봐도 ㄱ초등학교보다 ㅁ초등학교의 평가가 훨씬 더 낫다고까지 주장하셨다. ㅁ초등학교가 ㄱ초등학교보다 더 가깝다는 억지 주장까지 펴는 등 어머니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반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식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주소지를 옮기는 건 주민등록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요즘 공직자들 청문회하는 것 보세요. (당시는 물론 최근의 청문회가 열리기 한참 전이다.) 내가 공직에 진출할 일은 없지만, 기사에서 당위를 주장하는 기자가 그런 식으로 위장전입해서 되겠어요?"라고 설득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래도 못내 아쉬워하셨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는 게 없다"며 속상해하셨다. 그 뒤로도 설전은 몇 차례 파도를 더 타야 했다. 결국 할미의 입김보다는 애비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결과, 큰 녀석은 지금 ㄱ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러다 최근 총리나 장관직 지명자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열 달 전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위장전입에 탈세에, 우리 사회에서 돈 좀 있고 힘깨나 쓴다는 자들이 저지를 법한 웬만한 탈법은 다 저지른 그들. "이른바 총리하실 분은 물론이고 장관 하실 분들마저 다 저러는데, 저들과는 달리 이른바 공인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는 내 주제에 그냥 어머니에게 위장전입을 하시라고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고, "저런 범법자들이 청문회에서 고개 한 번 숙이고는 우리나라의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장관 자리에 앉는 게 이명박 대통령이 걸핏하면 입에 달고 다니는 법치의 실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가,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오른쪽 사진)이 부동산 거래 등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 따져묻는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땀에 젖은 손가락(가운데 사진)으로 자료를 짚어가며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쌍하게 된 건 법이다. 비로소 법은 그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총리와 장관들이 내리는 명령에 법은 순종해야 하는가? 보나마나 저들은 웬만한 집회는 금지한 뒤 그 집회를 연 주동자를 잡는다며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 것이고, 총리와 법무장관은 엄단 의지를 담은 담화문을 내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범법 행위보다 처벌규정상으로는 훨씬 가벼운, 집시법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집회 주동자들을 반드시 검거한 뒤 처벌해 우리 사회의 기강을 잡겠다며 기염을 토할 것이다. 그들이 불법 집회 참가자들을 잡아갈 때 애용하는 도로 교통법상 교통방해죄(도로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교통을 방해한 죄)는 기껏해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친다는 것을 저들은 알까?

 법무부나 경찰 등이 애용하는 형법 이론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공중전화 유리가 깨진 걸 그대로 놔두면 거기에 쓰레기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그 곳에서 더 큰 범죄가 일어나더라, 따라서 작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강력히 처벌해야 큰 범죄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참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미신고 집회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이 이론을 들이댔다.

 이 정부 들어 총리와 장관직 후보자들이 각종 불법, 탈법을 저지른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수 있는, 터럭만큼의 양심도 없는 것일까?


지난 여름, 여순감옥에서 이회영 선생을 만나고 왔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위장전입으로 시끄러웠던 민일영 대법관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장전입 5회 경력, 김준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 요즘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 정부 초기 때는 사퇴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퇴도 임명철회도 없다. 사과 한마디가 전부다. 거기에 정부여당 사무총장이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려면 이제는 국민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접어줘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면 말이다. 위장전입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모두 사면해줘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은 눈 감고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위장전입 5회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는 몇 번의 위장전입은 공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현 정부를 부르는 말들이 참 많다. 친서민 중도실용정부, 강부자․고소영정부, 기업프렌들리정부, 반서민정부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위장전입 정부’도 추가되었다. 정부 고위공직자 중 5명 가운데 1명꼴로 위장전입을 했으니 말이다. 정책과 사법처리를 집행할 집단 지도자가 위장전입 범법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사회 도덕성과 양심, 정의는 사라졌다. 존경해야 할 지도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에서 민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 암울한 현실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이 떠오른다. 이번 여름에 중국 대련에 있는 여순감옥을 갔다 왔다.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회영 선생도 이곳에서 서거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살다가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보여주신 분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말기 많은 지배계층이 친일로 변절했을 때, 조선조 10명의 재상을 배출한 선생의 가문은 항일운동의 길을 걸었다. 선생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을사늑약 오적 암살 시도,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운동, 최초의 독립운동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한일병합 후에는 6형제 중의 넷째였던 선생의 제안으로 6형제와 그 가족 등 60여명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는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 등의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대첩 또한 약 3,500여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에 참여했으나, 권력집중에 반대하여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무정부투쟁에 나섰고, 분권화된 지방정부를 강조하며 마을공동체 설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재중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절대 자유평등의 이상적 신사회를 건설코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일본 고위관료와 친일파를 암살할 목적으로 비밀행동단인 흑색공포단을 결성하였다.

 결국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만주일본군사령관을 암살코자 대련으로 이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서거하였다. 이 때 선생의 나이는 65세였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동안, 거대 명문집안이었던 선생 일가는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빈민으로 살아갔다. 교육도 못 받고, 옷을 팔아 연명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 5남이었던 이시영 선생을 제외하고는 남은 5형제와 그 가족 대부분이 먼 이국땅에서 굶주림과 병, 고문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선생의 장남이었던 이규창 열사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였던 흑색공포단을 조직한 후, 친일파 이용로를 암살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1년을 복역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많은 자녀들이 여러 특혜를 받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생은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재혼금지를 반대하고, 신분 평등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회영 선생은 암울한 대일항쟁 시기에 평생 동안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를 끌어안고 행동으로 실천하신 참 지도자였다.

 현 정부와 여당은 연일 불법집회, 노조 이기주의를 언급하면서 ‘법치’를 외쳐댄다. 또 지난 4월, 법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성숙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전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들이 먼저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이렇게 법치를 중요시하는 정부와 여당이 범법자들을 임명, 동의하고, 임명받은 자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이 현실이 그들이 말하는 ‘성숙한 법치주의’인지 묻고 싶다.

 그 뿐인가. 용산에서 일반 서민을 폭력 철거민으로 둔갑시켜 불태워 죽이고도 수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반면, 한 방송국 작가의 이메일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하였다.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도 문제되지 않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등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과 단체가 표적감사와 수사 등으로 잡혀가고, 물러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성숙한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에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숭고한 정신, 자유와 평등의 인간의 기본권을 존엄하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자들이 많을 때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지도자 층의 위장전입 등을 접어주고 가는 것이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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