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라면,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까  
- 안상수의원의 한나라당 대표 출마를 지켜보며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어려서 학교 다닐 때,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너무도 부담스럽고 벅찬 때가 있었다. 햇빛이 강렬한 무더위, 운동장에 서 괴로운 친구 얼굴들만큼이나 귀담기 힘들었던 선생님들의 훈시. 그럼에도 신기하게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다. “거짓말, 거짓말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말 이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힌 후 스스로 검찰을 떠난 분이니, 이 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고, 기억나지 않는 것도 사과하는 모습. 정치인의 새로운 탄생이라 뒤집어 상상해본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회 공공의 지도자들이 종교계에 당당하고 거침없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중심을 잡아 주길 바란다. 어려운 사람 돕고 좋은 일 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종종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해 국고보조금을 횡령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용서하지 않아야 참 정치인이다. 이번 봉은사 정치외압 논란도 새로 당선된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내 대표의 면담에서 시작되었다. 만남의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템플스테이 예산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안 의원은 자신이 원내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자리에서 강남의 부자 절에 ‘운동권 퍼주기’ 하는 주지스님이 말이 안 된다고 당연히 했을 법도 하고, 같이 있던 한 분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결론은 성경구절 한 대목 그대로이다. ‘의로운 이’를 말하는 ‘욥’의 욥기13장에 “...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정치인이 사람에게 한 말은 기억해야 하며, 적당히 회피하고 넘어가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한다.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안상수의원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역발상으로 비틀어 상상해보자. 기억나지도 않는 사실을 인정하며, 불교계에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하는 너그럽기도 하고, 수용적인 의원이기 때문에 여당의 대표로 출마할 자격이 있지 않나싶다. 안 의원은 모 사찰을 매년 방문하기도 하는, 종교 교류의 모범을 알고 관용을 실천하는 정치인이다. 가끔 스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 단점을 극복한다면 더 높은 역할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 속담에 ‘거짓말도 새끼를 친다.’는 말이 있는 줄 모르는 시민들에게 평생학습을 하도록 교훈을 준 국민의 은사이기도 하다.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 속담에 ‘거짓말도 잘하면 오례 논(올 벼를 심는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을 줄이야. 거짓말도 잘하면 도움이 된다는 뜻의 이런 속담이 있는 줄 모르는 시민들도 거짓말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 머리 좋은 분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던 끝에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사실이라면 유감이다”고 한 것은 체면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인은 기억나지 않아도 반성하는 신 버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사실이라면 안 의원은 대통령을 하셔야 한다.  

 더구나 템플스테이 예산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나온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유감’을 밝힐 필요가 없는데도, 종교계에 먼저 선물 보따리를 내 놓는 것이 정치인이다. 참 보기 좋은 모양새이다. 마구 비틀어 보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을 계속 꼬이게 만드는 분이라도, 상식의 차원을 넘어, 계속 반복하면 깊은 속내가 무엇인가 있는 건 아닌지 헷갈리고 기대를 하게 된다.  

 거짓말과 관련해 ‘로터’는 ‘거짓말은 눈사람 같아서 오래 굴리면 그 만큼 커진다.’고 했다. 눈사람의 크기가 한 국가를 덮을 정도가 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형벌은 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 한다는 것보다, 그 자신이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슬픔에 빠지는데 있다’고 했다.

 차기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야 할 분이나, 대통령이 되셔야 할 분은 이런 논쟁에서 자유롭고, 정치와 종교가 결탁해 서로 주고받기를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깔끔한 분이었으면 좋겠다. 정치와 종교가 오염되지 않는 사회. 이런 생각이 꿈일까, 한나라당을 아끼는 분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아래에 있는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다투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중략)…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나라를 이롭게 하겠다는 양혜왕의 선의(善意)마저 이기주의라고 꾸짖었던 맹자가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인배들 천지라고 혀를 차지 않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땅과 건물을 사서 재산증식에 몰두해온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나는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장관 후보자부터 남의 돈으로 수십억짜리 집을 사들인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현 정부는 소위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가고 싶어 하는) 분들의 추악한 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을 환원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이행한다며 밝힌 재단 설립 계획 역시 많은 사람의 비웃음을 샀다. 공약을 지키기도 그렇고 그냥 먹어버리기도(식언하기도) 그렇고, 전전긍긍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대통령이 되었다고(종신대통령도 아니고) 한꺼번에 남한테 주겠나.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결과가 재산을 기탁하는 대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을 터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일 한다는 명목으로 세금도 안 내거나 덜 낼 수 있을 테고, 측근들을 재단에 포진시켜 놨으니 내 맘대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사회 환원 방식조차 참 이명박스럽다고 생각한 게 단지 나 혼자만일까.

 새삼스런 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회적 힘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이기주의에 있다. 방법과 절차를 불문하고 이명박처럼 돈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이기주의. 국민들 저마다의 이기주의가 하나의 힘으로 모여 강남 졸부의 화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우리나라는 (가진 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먼저 ‘4대강 살리기’(실은 죽이기).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을 (눈물을 머금고) 4대강 죽이기로 축소하면서까지(그래도 30조원!) 삽질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건설업계의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국내 최대 건설회사 CEO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눈에 멀쩡한 자연이 망가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급하면 그 흔한 환경영향평가 한번 거치지 않고 삽질부터 시작했을까. 이 사업이 아니었다면 공터에서 공치고 있을 포크레인과 불도저의 감가상각비만 생각해도 얼마인가. 4대강 삽질이라는 게 강바닥을 파서 수량을 많게 하고 둔치나 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모래밭과 습지로 아름다운 자연 하천을 한강처럼 인공구조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한강의 얼마 안 되는 자연 습지(여의도 샛강을 비롯한)를 파헤치고 있는 건 또 어떤가. 아무리 서울시장 한 번 더 하고 싶고, 대통령에 욕심이 있어도 그렇지 한 때 환경운동연합 회원임을 자랑하고 다녔던 사람의 이명박 따라 하기는 참 볼썽사나운 노릇이다. (대통령의 꿈을 이룬) 이명박을 움직이는 힘이 철저히 계급 이기주의라면, (대통령을 꿈꾸는) 오세훈을 움직이고 있는 힘은 출세욕이라는 개인 이기주의다.

 최근 날치기로 통과된 언론악법이야말로 이기주의의 결정판이다. 자전거에 상품권,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이 결국 신문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니까 방송을 하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언론에 약한 재벌 총수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철저히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세월이 변한 것일까? 과거 같으면 수십 번도 더 뒤집어졌을 소식을 접해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같은 건 이슈조차도 잘 안 된다. 왜 일까? 조중동이 외면해서?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기무사의 망동을 이대로 두고 지나갈 경우 기무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반정부 인사들을 미행하고 감시할 것이라는 것을. 국정원은 합법적으로 국민들을 사찰하고 도청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의 자유도 언제든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 무관심과 불감증의 밑동에 있는 것이 우리 각자의 이기주의다.

 그나마 측은지심은 남아있는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다. 그 뜨거움이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길 바란다. 두 분은 역사와 대의에 자기 몸을 진정으로 바치신 분들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이 소인배들이 판치는 시대에 대한 뜨거운 경고라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 있다. 문제는 우리 안의 이기주의다. 우리가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고 일어설 수 있다면 여론주도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난해 촛불 시위 때처럼 말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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