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감시’ 시민운동 활성화… 현정부 통제로 ‘위축’


ㆍ참여연대 창립 15돌
ㆍ소액주주 운동 재벌 견제… 낙천 운동 ‘전성기’
ㆍ권력화로 ‘퇴행’… 시민과의 호흡에 미래 달려

1994년 9월10일 장문의 창립선언문이 낭독됐다. “모두가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 참여와 인권의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시민사회의 대표주자인 참여연대가 세상속으로 걸음을 뗀 날이다. 그로부터 15년. 참여연대는 15일 열린 창립 기념행사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시기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제2의 창립’을 선언했다.


참여연대의 역사는 대한민국 시민운동사와 발걸음을 같이했다. 시민운동의 부침과 진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15년이었다. 90년대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선·낙천운동,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까지 굵직한 궤적도 많았지만 처음 목표했던 ‘참여’와 ‘인권’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참여연대 15년의 명암=참여연대의 시작은 작지만 화려했다. 94년 창립 후 시작된 국민기초생활법 제정 운동은 99년 8월 국민의정부에서 열매를 맺었다. 97년 시작된 소액주주운동은 98년 3월27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13시간의 격론을 벌이며 재벌개혁의 불꽃을 지폈다. 95년 사법개혁 행보도 시작했다.

참여연대의 90년대는 진보진영의 운동이 재야·운동권에서 시민세력으로 이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 지평을 ‘권력 감시’와 ‘민생’으로 옮겼다는 의미다.

전성기는 2000년 총선에서 펼친 낙천·낙선운동이 꼽힌다. 중앙선관위가 불법 행위로 낙인찍었지만 후원금이 답지하며 낙선 대상자 86명 중 59명을 낙마시켰다. 회원수가 1만4596명으로 정점을 찍은 시점이다.

그러나 국민의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며 참여연대를 향한 시민들의 참여는 약화됐다. 2006년 9월에는 참여연대 전·현직 임원 531명의 정부기관 진출 현황을 분석한 ‘참여연대 보고서’(유석춘 연세대 교수)가 나오기도 했다.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보다 ‘또 하나의 권력’으로 퇴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터진 것이다. 참여연대 회원수는 현재 1만461명. 2001년 정점에 견줄 때 71.7% 수준이다. 백화점식 영역 확장으로 활동가 중심의 조직은 비대해졌지만, 시민들의 참여와 지방의 풀뿌리 시민단체들로부터는 멀어지는 ‘그늘’을 드리운 것이다.

◇갈 길 먼 시민운동 어디로=참여연대의 성장통은 재정난에 압축돼 있다. 98년부터 정부지원금을 끊고 회원들의 성금과 단체·기업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현 정부들어 단체와 기업의 후원금은 대부분 끊겼다. 마지막 보루인 소액 기부금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 재정난은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배제·통제 성향이 강해진 현 정부에서 더 도드라지고 시험대에 선 모양새다. 한국 사회의 소통 위기는 정부와 시민운동 간에도 진행형인 셈이다.

참여연대는 창립 15주년 행사에서 △권력감시 예각화 △생활밀착형 의제 △시민들과의 소통·참여 확대를 ‘변화’의 3대 축으로 잡았다. 하지만 외부의 진단은 “시민운동 지평을 넓혀왔지만 갈 길이 멀다”고 요약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일자리·주택·교육 등 생활정치 의제를 더 적극 개발할 것”을,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느티나무 아카데미 강좌와 같이 시민들과 소통·연대하는 교육사업을 늘리고 이슈마다 끝을 보는 자세”를 주문했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소유권으로 소유권을 견제하겠다는 신자유주의식 소액주주운동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권리 확장을 통해 재벌과 대기업을 견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에 대한 주문과 쓴소리는 보수정부 체제에서 진보적 시민운동의 과제로도 치환된다.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정보와 길을 제시하고, ‘촛불’로 상징되는 자발적 시민 파워와 결합할 수 있느냐가 시민운동 성패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궁극적으로는 양극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대안을 찾는 몫이 참여연대와 시민운동, 한국사회 전체에 던져진 상태다.

<이용균·김지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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