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도 안 돼… “호응 적고 상권 위축”
“시민 목소리 규제 탁상행정의 표본” 비판

경찰이 “선진 집회·시위 문화를 조성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만든 평화시위구역을 시행 1년도 안 돼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실효성을 얻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시민 목소리를 규제·통제하려는 발상으로 만든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4일 “올 상반기 운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 시민 호응은 물론 주변 상인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 1월부터 전국 7곳에 지정, 시범 운영해 온 평화시위구역을 폐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평화시위구역’은 경찰이 도심 한복판 시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며 지난해 9월 청와대 국가경쟁력위원회에 보고한 뒤 시행 발표됐으며, 올 9∼10월 전국에 확대 시행할 계획이었다.

시행 초기 시민·사회 진영에선 “장소와 성격에 따라 시위 개최 여부를 결정하면 헌법에 어긋난다”, “평화시위구역 밖에서 열리는 시위는 모두 위법한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경찰이 편의시설 제공 등 각종 협조 약속에도 시민들은 “경찰이 지정한 구역에 얌전히 들어가길 바라느냐”며 외면했고, 평화시위구역 주변 상인들도 “상권만 위축시켰다”며 반발했다.

경찰의 평화시위구역 제도 폐지를 두고 일각에선 “야간 옥외집회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다른 집시법 독소조항 폐지 여론이 힘을 얻고 있어, 경찰이 그 전에 무리하게 추진한 평화시위구역 시비부터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촛불시위 후 시위문화 개선 차원에서 평화시위구역을 운영해왔지만 일부 문제가 있어 폐지키로 한 것”이라며 “선진 시위문화 조성을 위한 시행착오 정도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평화시위구역은 법률적 근거조차 없는, 지극히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탄생한 제도”라며 “이번 폐지 결정으로 경찰이 법 집행 기관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시위구역 (7곳)=서울 여의도 문화마당, 부산 사직실내체육관 앞 광장,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인천 중앙공원, 울산 울산역 광장, 광주 광주공원 아랫광장, 대전 서대전 시민공원.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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