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권력을, 상상력에 힘을!" (프레시안08.25)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돼 국내에도 소수 영화관에서 개봉한 섬머 러브 감독의 음악다큐 <사운드 라이크 레볼루션(Sounds Like a Revolution>의 주제는 "대중음악은 저항의식을 지닌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비단 해외로 나갈 것도 없다.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두리반이 제 목소리를 끝까지 낼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점거와 연달아 개최된 콘서트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무대에 올린 <탁현민의 시사콘서트>와 MBC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 조항에 항의하는 '삼보일퍽' 등으로 유명세를 탄 공연기획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스타'와 '대자본'으로 상징되는 오늘날 대중문화도 여전히 "저항성을 갖고 있다"고 그래서 단언한다.

24일 저녁 7시 30분, 인권연대 주최로 서울 중구 우리함께빌딩 2층에서 열린 '상상력에 권력을' 강연에서 탁 기획자는 애초 하위문화의 유흥에서 출발했던 재즈와 로큰롤이 저항의 상징이 된 실례를 들며 "많은 사람이 당장은 '말도 안 되는 듯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게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라며 "그 힘이 우리의 내일을 보다 근사한 다음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정성이 저항을 낳는다

탁 기획자는 대중문화의 중요한 속성으로 선정성을 들었다. 그 예로 그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들었다.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일등석의 실내악 공연을 지루하게 보는 로즈(케이트 윈슬렛)를 데리고 빈민들이 있던 3등칸으로 내려와 천박(?)하게 춤을 추는 장면에서 로즈의 표정이 살아나는 순간, 두 캐릭터의 표정이 밝아졌던 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지적이다.

결국, 대중에 강한 전염성을 가진 하위문화(subculture), 곧 대중문화는 대중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다는 얘기다.

이런 대중문화의 선정성은 대중참여성,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과 맞물려, 시대에 따라 대중의 저항을 낳게 된다고 탁 기획자는 강조했다. 대중문화의 선정성이 결국 저항을 낳는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즈와 로큰롤의 태동이다. 흑인들의 음악이었던 재즈는, 시간이 지나며 민감하게 새 흐름을 수용한 '하얀 흑인' 사이에서 '힙(hip)'한 음악으로 떠오르며 순식간에 20세기 초반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꿨다. 로큰롤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흑인 음악에 뿌리를 뒀던 로큰롤은 특유의 선정성과 솔직한 가사로 전후 시대 십대들을 사로잡았다. 흑인과 십대라는 사회적 약자들을 선동하며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탁 기획자는 "재즈와 초기 로큰롤에 저항성은 전혀 없었다"면서도 "이들 문화 자체가 가장 취약한 계층과 맞물리며 비주류가 주류를 정복하는 저항성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탁 기획자는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예로 들며 "'전쟁이 없는 세상'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 노래를 통해 세계의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한다"며 "이것이 바로 대중문화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스타 탄생과 대중문화의 독립

탁 기획자는 대중문화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스타 탄생을 꼽았다. "슈퍼스타의 출현으로 대중문화가 대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계기를 낳았다"는 얘기다. 스타가 자본의 홍보 도구로 기능한다는 일반적 생각과 다른 의견을 피력한 셈.

그는 최초의 슈퍼스타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꼽으며 "이전에는 대형음반사가 주인이던 음악계에서 스타가 음반의 주인공이 된 계기"를 만들었다며 "스타가 비록 자본의 일부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본과 대척점에 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탁 기획자는 서태지 역시 비슷한 사례로 꼽았다.

"강산에 씨의 <라구요>가 나왔을 때, 음반사에서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바꾸라고 했어요. 정태춘 씨가 지구레코드에서 음반을 100만 장 너메 팔았지만 받은 건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죠. 당시까지도 이 정도로 음반사의 힘이 강했어요.

그런데 서태지가 스타의 힘으로 미디어를 장악하고 음반사와의 관계를 끊은 후 '요요기획'이라는 스타 중심의 기획사를 차렸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에 종속됐던 대중문화를 다음 시대로 이끈 계기가 됐죠."

저항은 과연 유효한가

그러나 이 의견에는 강한 의문 부호가 붙는다. 스타는 스스로 권력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스타가 자본의 일부가 되면, 저항 역시 자본에 포섭된다.

YB는 방송권력, 정치권력과 때로 파열음을 일으키지만, 그 이미지를 통해 대기업 제품 광고를 찍는다. 두리반에서 목소리를 높인 음악인의 대다수는 단독공연을 가질 기회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얇은 팬층에 의존하고 있다.

대개의 저항 예술인은 대자본을 끼지 않는 한, 자신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알릴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다. <사운드 라이크 레볼루션>은 어떤 의미에서 이 불편한 현실을 애써 미화하는데 그쳤다.

탁 기획자도 "지금은 기획사와 스타가 스스로 자본이 돼, 또 다른 권력이 됐다"며 이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그는 스타로 대표되는 아이콘에 함몰되지 말고, 능동적 유흥에서 해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즐기는 문화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세상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강연회 주제이자 탁 기획자가 낸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상상력에 권력을' 주는 게 필요한 이유다.

개인용 마이크, 소셜 네트워크 (조재희)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홈페이지 방명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가 돼 있었다. 원인은 웹상의 한 동영상에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남’이었다. 한 청년이 지하철 내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 후 이 영상은 인터넷에 던져졌다. 한 트위터 글은 수없이 리트윗되었다. 글의 내용은 ‘지하철 막말남은 OO대학교 OOO’였다. ‘막말남’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는 테러를 당했다. 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학교의 게시판 또한 그러했다. 잠시 뒤 학교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동명의 재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 네티즌의 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명의 학생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순식간에 ‘패륜남’이 되었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공공의 적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 유포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은 미니홈피의 게시 글에서 시작됐다. 아나운서 본인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글은 현직 야구선수와의 성적관계를 담고 있었다. 잠시 후 최초의 글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SNS라는 확성기가 이용됐다. SNS 사용자들은 각기 한마디씩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더해졌다. ‘소셜이 아닌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끝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개개인에게는 짧은 글 한마디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한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SNS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주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가족, 친구들과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치인, 연예인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SNS가 계층 간의 소통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목적 지향적인 참여행위가 유도된다. 최근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은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였다. 이처럼 SNS는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한다. 이미 대세가 돼버린 상황 또한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썬 충분치 않다. 인터넷 전반의 문제 또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하나의 중요한 권력이다. 이를 이용해 ‘개인 대 집단’의 구도에 놓일 땐 폭력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해 개인용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SNS는 자신만의 일기장이 아닌 것이다. 의사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글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SNS의 발전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기성언론의 ‘색깔사냥’, ‘마녀사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론 사냥’에 염증을 느껴왔다. SNS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가 비판해 온 기성언론의 행보를 따라가선 아니 된다. ‘신상 털기’에 이은 인신공격은 ‘여론 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양자 모두 ‘무차별, 무책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전국 트위터 강정당 회원들이
지난 7월 2일 제주시청 앞에 모여 강정마을 “절대보존지역해제”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중이 참여를 유도하는 힘으로 SNS가 활약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포털사이트의 신상정보유출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개인정보가 개인의 것이 아니 게 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신상 털기’에 힘을 보탠다. SNS의 빠른 정보 교류는 이에 날개를 달아준다. ‘신상 털기’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법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위 정보일 경우의 구제수단도 없다. 포털 사이트들의 레이아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SNS의 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글의 위치는 뉴스와 인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SNS의 글은 뉴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 더해져 있다. 필터링도 전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공공 혹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 있다. SNS에서 드러난 사실이나 주장을 기사화할 때이다. 해당 주장이 극히 일부분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론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이메일을 접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SNS 신뢰도 조사의 결과도 주목해볼만하다. SNS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나 되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12.3%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였다(출처 - 에스코토스 컨설팅 '2011년 소셜미디어 참여 연구'). 기성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들에게 SNS는 ‘개인 언론’이 되었다. 기성언론이 무관심한 영역에 대한 ‘대안 언론’이기도 하다. 기성 언론의 권력자들은 SNS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SNS의 심각한 부작용을 이유로 든다. 우리 스스로가 정화하여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통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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