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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인권을 가볍고 쉽게” [2009.09.17. 제778호]
▣ 안수찬 정용일
[VS] 강산에와 번갈아 인권 콘서트 여는 김C… “직구보다 더 통쾌한 변화구를 찾아서”

 

인권 콘서트가 열린다. ‘재야 노래패’가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다. ‘뜨거운 감자’와 강산에가 앞으로 1년 동안 매달 번갈아 가며 ‘인권 콘서트 HUMAN’을 연다. 인권연대와 다음기획이 주최하고 <한겨레21>이 후원한다. 9월20일 오후 5시 서울 홍익대 앞 브이홀에서 첫 무대가 열리는데, ‘뜨거운 감자’가 선발을 맡았다. 강산에는 10월에 열리는 두 번째 콘서트를 맡았다. ‘뜨거운 감자’의 보컬 김C를 9월9일 오후 홍익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1박2일’ 촬영에 정신없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 왜 인권을 말하는 걸까.

» 김C
-‘인권을 음악으로 말한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다. 무슨 뜻인가.

= 잘 살기 위해 누릴 수 있는,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인권이다. 지금 이렇게 돈 내고 차를 마시는 데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권리 역시 인권이다. 약자들이 그 권리를 잘 누리지 못했다. 음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심각하고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콘서트를 하면 (인권도) 가볍고 쉬워질 것 같다.

- 인권 탄압을 당한 적이 있나.

= 2000년 무렵, 좌석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운전사가 난폭하게 곡예하듯이 운전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우리는 요금을 냈고, (안전하게 타고 갈) 권리가 있다. 버스운전사에게 항의했더니 오히려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 때문에 빨리 못 간다”면서 승객에게 “빨리 가고 싶으면 버스에서 내려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느리게 운전했다. 버스 승객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난폭 운행에) 길들여진 거지. 나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누릴 권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가.

= 그렇다. ‘루저’(loser) 시절에는 그런 모순에 집중하게 된다. 루저는 시간이 되게 많다. 처음에는 ‘난 왜 이러지’ 불만을 품다가, 그렇게 된 이유를 외부에서 찾게 된다. 그러다 모순을 발견하고, 그걸 이야기한다. 그런 루저들 때문에 세상이 많이 변한다. 인터넷에 세상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고….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은 그렇게 못한다.

- 지금보다 덜 유명했던 2004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뮤지션은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뮤지션이나 다른 예술가들이 하는 말은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뮤지션은 똑똑해야 한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 변함이 없다. 자기 메시지를 전달하는 뮤지션이라면 자기 주장이 있어야 한다. 무책임하게 던지는 말보다는 좋은 가치관을 이야기해야 한다.

-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나.

= 학문을 공부한 적은 없으니, 그런 방면에서 똑똑할 리는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주장을 할 때,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 ‘인권 콘서트 HUMAN’
- 최근 어느 보수 논객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영화배우 김민선씨의 글을 보고 “자기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아, 그 사람은 혼자서 이슈나 상황을 못 만든다. 어떤 이슈를 숙주 삼아 거기에 붙어서 자라는 것 같다. 지적 수준이 안 되면 말할 권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던데, 참 위험한 사람이다. 그러면 서울대 나온 사람들만 세상에 대한 발언권이 있다는 건가. 참 오만한 태도다. 도대체 서울대가 뭔가. 그냥 대학이다. 서울대를 나왔다고 내 문제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김민선씨의 그 표현은 언론과 인터뷰한 것도 아니고, 사적 공간인 미니홈피에 일기처럼 적은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권리를 뺏는 일이다.

- 지난 6월21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에 참가했다. 그런 행동을 정치적으로 비틀어 보는 눈이 걱정되지 않았나.

= 별로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예를 들어 넬슨 만델라 추모 공연에 뮤지션이 참가했다면, 그것 참 영광스런 일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누구라도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작은 일 가운데 하나다. 나는 ‘폴리테이너’(정치 성향이 강한 연예인)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주저하거나 못하지는 않는다. 내 행동을 정치적으로 왜곡해서 본다면 슬퍼질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내 행동을 굳이 비틀어 보겠다면,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슬프긴 한데 어떻게 하겠는가. 내 의도가 그게 아닌데….

- 그런 일 때문에 방송 출연을 못한다면.

= 힘들겠지. 그래도 아마 멋진 음악은 나올 것이다. 아티스트에게 가난은 하나의 덕목이다.

- 예전에는 방송 오락프로 출연에 대해 “(앨범) 홍보를 위해 억지로 한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가.

= 재밌는 시간도 있긴 한데, 참 힘들다. 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드나 타이밍을 모른다. 다만 내 옆에 정말 대단한 전문가들이 있다. 나는 거기서 일종의 ‘시민 대표’로 그냥 서 있다. 그걸 편집으로 잘 받쳐주고…. 방송 활동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도움이 된다. 내가 4집 앨범까지 냈는데, 단 10원도 인세를 못 받았다. 기획사 처지에서는 내가 음악을 하지 않는 게 이득일 것이다. 앨범을 내려면 돈이 들어가니까. 그러나 음악을 하지 않는다면 나한테 다른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음악만 하면서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나는 왜 음악만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우리 음악이 후졌나 보다 하면서 자괴한다. 그렇다고 음악을 안 할 수는 없다.

- ‘뜨거운 감자’의 음악을 들어보면 1집에서는 비통한 사랑, 4집에서는 안온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 같다. (‘뜨거운 감자’는 2000년 1집, 2003년 2집, 2006년 3집, 그리고 지난해 9월 4집을 냈다.)

= 내가 1집을 냈을 때가 서른 살이다. 그 가사는 대부분 20대 때 썼다. 그때는 ‘나한테 시속 150km의 직구가 있으니, 어디 칠 테면 쳐봐’ 하는 심정이었다. 변화구 던지는 법을 몰랐고, 던져야 할 이유도 몰랐다. ‘루킹삼진’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 루킹삼진?

= 타자가 멀쩡히 서서 공만 쳐다보다 삼진을 당하는 거다.

- 지금은 다른가.

= 이제 내 어깨로는 시속 150km의 공을 던질 수 없다. 그리고 변화구를 던져 헛스윙하게 만들어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묘미를 알게 됐다. 조금 부드러워지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겠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 김C

- 감독·배우·작가 등 여러 일을 해왔는데, 변화구마저 못 던지는 50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는 2004년 단편영화 <만남>을 연출했고, 2006년 <날아다니는 김C의 휴지통 비우기>라는 에세이집을 냈으며, 2007년 영화 <별빛 속으로>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오이시맨>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 앞으로의 일을 장담하고 싶지 않다. 고랑이 생기는 건 안 좋다. 땅바닥에 고랑이 파여 있으면, 비가 왔을 때 어디로 흘러갈지 뻔해진다. 너무 재미없다. 내 인생에 고랑을 파기가 싫다. 다만 내 안의 창작 기관 가운데 음악이 가장 발달돼 있다.

- 4집에 실린 <생각>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가사가 나왔나.

= 간통죄나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정신을 가두는 법이다. 생각을 가두는 건 옳지 않다. 내가 누구를 좋아할 권리를 박탈하는 건 옳지 않다. 내 생각을 가로막는 법은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들으면서 국가보안법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웃음)

- 그럼, 조금 더 직설적으로 가사를 쓰지 그랬나.

= 그런 화법은 재미가 없다. ‘뜨거운 감자’ 노래 가운데 섹슈얼리티가 많이 들어간 것도 제법 있다. 그런데 심의위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겨둔다. 그 섹슈얼리티 요소를 나만 알고 있는 거지. 그런 가사가 자연스럽게 심의를 통과되는 일이 재밌다. 일종의 희화, 풍자랄까. 직설적인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재미가 없다.

- 같은 기획사 소속의 정태춘은 80년대, 강산에는 90년대라는 시대를 노래했으면서도 그 ‘화법’을 달리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 예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막걸릿집에서 일할 때, 정태춘 노래를 늘 틀어놓고 있었다. 이분은 어디에 가서 만들기에 이런 노래와 가사가 나올까 생각했다. 지난해 태춘이 형이 직접 노래 부르는 걸 접했다. 와, 그 울림의 덩어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손을 쫙 벌리며) 이만한 덩어리가 빵, 하고 오더라.

강산에 형은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노래들을 봐라. 희희낙락하는 가사가 별로 없다. 자기 성찰적이고 시대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태극기> 가사는 슬라이더다. (1996년 발표된 <태극기> 가사는 이렇다. ‘이 비가 오는대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절대로 태우(太雨)는 또 오지 않았으면….’) 직구는 아니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1차적 은유, 그래서 슬라이더다. 예를 들어 펑크 가수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누구 싫어, 누구 개×× 하면서 노래한다. 그건 150km 직구 가진 애들이 하는 것이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을 던져서 타자를 스윙삼진시키는 게 더 통쾌한 사람들의 표현법은 따로 있다.

- 예전에 “세상이 엿 같다”는 발언도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나.

= 왜 없겠나. 예를 들어 2PM의 그 친구 참 안됐다. 사적인 인터넷 공간에 4년 전에 쓴 글을 이유로 그 친구를 추방시킨 꼴이 됐다. 이게 그래야 하는 문제인가. 그냥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라고 바라보면 안 되나. 그 친구는 많이 어리다. 그 글을 썼던 4년 전이면 얼마나 더 어리겠나. 기자님도 돌이켜봐라. 그 나이에는 무슨 짓이건 할 수 있다. 심지어 나는 1~2년 전만 돌아봐도 한심했다. 앞으로 1년이 지나면 오늘의 나조차 한심해 보일 것이다. 4년 전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그 정도의 관대함도 보여줄 수 없나.

- 언론에 대한 불만도 있겠다.

= (기자의 명함을 보며) 예를 들어 내가 ‘수찬씨’ 하면 기자님이 기분 나빠질까?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사람들한테만 호칭이 붙어다닌다. 안 기자, 안 PD, 안 검사…. 그런데 ‘안 청소부’ ‘안 경비’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호칭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왜 그런 걸 드러내려 할까 궁금하다.

- 그래서 김C인가(그의 본명은 김대원이다).

=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이름이다. 다만 김씨 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까봐 영어를 붙였다.

- 존경하는 사람이나 역할 모델이 있나.

= (한참 생각하다) 되게 어려운 문제네. 누구처럼 되고 싶다면 백남준 아저씨. 일흔이 되어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건 멋지다.

그의 최신 앨범인 4집에 실린 <생각>의 가사는 이렇다. “만질 수 없다고 해도 보는 건 어때요/ 가질 수 없다고 해도 생각만 하는 건 좀 어때요/ 날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마저 하지 말란 법 없죠/ 이길 수 없다고 이길 생각마저 하지 말란 법 없죠/ 날기를 포기한 순간 날개를 잃어버리는 거죠/ 끝이 어딨냐고 끝을 모른다고 시작 안 할 순 없죠….” 이 노래를 듣고, 기자는 ‘1박2일’의 김C 대신 ‘뜨거운 감자’의 김C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의 더 많은 노래를 듣는 방법은 02-323-3704로 문의하면 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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