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찰고문 수사 ‘늑장+부실’
첫날 관련자 진술만 청취 3일뒤 유치장 화면 복사
5일뒤에야 전체영상 압수 ‘증거조작·은폐방조’ 의혹
한겨레 전진식 기자기자블로그
» 강서·양천시민모임, 강서·양천환경운동연합 등이 모인 ‘양천 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경찰서 앞에서 피의자들에게 수사 도중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한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고문·가혹행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이, 지난 4월 초 고문 사실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고도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검찰은 피의자의 고문 주장을 듣고도 관련 증거자료를 신속하게 확보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경찰의 증거 조작 및 은폐를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1일 경찰과 검찰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지검장 김학의)은 피의자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진정을 낸 다음날인 지난 4월2일 양천서를 찾아가 유치장 등을 감찰하고 유치인·경찰관 등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었다. 검찰은 3일 뒤인 5일에 다시 양천서를 방문해 상황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등을 확인하고 돌아간 뒤 이날 저녁 다시 와서 ‘유치장 녹화 화면’만을 복사해 갔다. 경찰은 당시 검찰에 복사본을 건네며 “다음에는 영장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검찰은 고문 의혹이 불거진 강력팀 시시티브이 녹화분은 달라고 하지 않았으며, 확보하지도 못했다. 검찰은 이틀 뒤인 7일에야 압수수색영장을 가져가 양천서 전체 시시티브이 화면이 담긴 하드디스크 6개를 가져갔다.

그러나 검찰이 이 하드디스크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지난 3월9일부터 4월2일까지 강력팀 사무실이 녹화된 화면은 아예 없었다. 경찰은 “시시티브이 관리업체에서는 기기 오작동 때문에 녹화가 안 됐다고 한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공교롭게 검찰이 가혹행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4월2일까지의 화면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4월2일 이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려주고도, 닷새나 지난 7일에야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시시티브이 화면 녹화분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신속성과 비밀성이 생명인 압수수색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 닷새 사이에 양천서는 이를 상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이 결과적으로 경찰에 은폐·조작의 빌미를 준 셈”이라며 “압수수색을 예고한 꼴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초기 수사 부실 외에 검찰의 늑장 수사도 문제로 지적된다. 4월7일 시시티브이 화면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사건을 공식 발표할 때까지 두 달 이상 별다른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영렬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는 ‘수사를 미적댄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시시티브이 기록이 너무 많아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며 “검사와 수사관들이 1500기가바이트(GB)나 되는 시시티브이 기록을 보느라 멀미가 날 정도”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피의자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날짜가 있기 때문에 선별해서 볼 수 있다”며 “이번과 같은 독직폭행 사건에서 두 달은 상당히 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검찰은 언론 보도가 나간 뒤에야 해당 경찰관을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검찰은 피의자의 고문·가혹행위 주장을 눈앞에서 묵살하기까지 했다. 지난달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한 피고인이 “경찰이 내 입에 솜을 물리고 얼굴에 스카치테이프를 감은 뒤 폭행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진술하자, 당시 공판검사는 “인권위에 가서 진정하라”며 이를 일축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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