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피해자들 “재갈 물린채 테이프로 얼굴감고 구타”
인권위 “경찰이 고문” 충격
경찰 조사실·차량서 ‘날개꺾기’ 등 폭행 당해
일부 “거짓자백 했다”…인권단체 “전면조사를”
한겨레 손준현 기자 메일보내기 전진식 기자기자블로그
»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문이 있었던 장소로 지목하며 공개한 양천경찰서 강력팀 사무실 폐쇄회로화면. 카메라를 위로 올려놓아 천장이 많이 보이고 화면 아래쪽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겼다.폐쇄회로 화면 사각지대에 놓인 방석으로, 피해자들은 여기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강력팀장이 ‘시시티브이(폐쇄회로텔레비전) 안 나오는 쪽으로 하자’고 했다. 소파에 있던 갈색 방석을 벽 쪽으로 깔더니 뒤로 수갑을 채우고는 ‘이빨이 나간다’며 휴지를 입에 말아 넣었다. 그다음 엎드리게 해 ‘날개꺾기’ 고문을 했다. 방석에 코피를 쏟아 피범벅이 됐다.”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ㄱ씨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다. ㄱ씨는 “거짓으로 자백을 한 탓에 현장검증에서 범행장소를 못 대니까 차량 안에서 그 팀장이 가랑이 사이에 내 머리를 끼우고 또 날개꺾기를 했다”며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지난 1월 장물 취득 혐의로 긴급체포된 그는 “후유증으로 식은땀이 나고 잠도 잘 오지 않고 왼쪽 팔꿈치 인대를 아직도 제대로 못 쓴다”고 진술했다.

인권위가 16일 진술을 공개한 고문 피해 피의자 22명은 모두 남성으로, 대다수가 절도 피의자이고 일부는 마약사범이었다. 이들의 진술을 보면, 경찰은 몇 가지 공통적인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난다. 입에 휴지나 수건 등으로 재갈 물리기, 수갑을 등 뒤로 채운 채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속칭 ‘날개꺾기’, 투명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채 구타하기 등이다.

피해자 ㄴ씨는 조사실에서 이런 세 가지 고문을 한꺼번에 당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28일 절도 혐의로 체포되면서 “여기서 병신 돼 나간 놈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인정하면 살고 부인하면 죽는다”는 협박을 들었다고 인권위에 진술했다. ㄴ씨가 “잘 모르겠다”고 말하자, 경찰관이 ‘날개꺾기’를 한 뒤 투명테이프로 얼굴을 둘둘 말아 감고는 마구 때렸다고 한다. 그는 “20~30분 동안 입에 재갈로 물린 수건을 넣었다 뺐다 하며 고문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들 가운데는 “실제 고문 때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고 말한 이들도 있다. 절도 혐의로 지난해 11월 긴급체포된 ㄷ씨는 “고통이 너무 심해 자백을 했다. 재판에서 모두 3건의 혐의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는데, 솔직히 2건은 내가 한 게 맞지만 1건은 아니다”라고 인권위에 진술했다.

또 인권위는 양천서 강력팀 사무실의 폐쇄회로텔레비전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카메라 방향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 사무실에 사각지대가 있고, 피해자들이 지목한 장소 등이 (해당 사각지대로)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새사회연대는 성명을 내고 “인권 의식이 없는 정부와 경찰의 고문은 예견됐다”며 “관계자를 엄중처벌하고 민주적 통제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인권연대도 성명을 통해 “고문이 조직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자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들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례가 더 있는지도 전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양천경찰서는 “검거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적은 있지만 조사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행동을 취한 건 없다”며 고문 의혹을 반박했다. 양천서는 또 시시티브이의 사각지대에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논란이 불거진 뒤 시시티브이 위치를 조정했는데 인권위에서 (은폐를 하려 했다고) 오해한 듯하다”고 해명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전진식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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