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인/ 인권연대 2011년 겨울 인턴

"자, 또 질문해 봐." 

 매순간 질문의 압박에 시달렸던 7주였다. 식사시간은 물론이고 뒤풀이 자리에서도 "질문"은 끊이지 않아야 했다. 생각하는 것은 묻고 답하는 과정이라고, 매순간 질문을 멈추지 말라던 국장님의 말씀은 늘 나를 긴장하게 했다. 인턴들을 위해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분들을 뵙고도, 용기가 없어 번번이 질문을 삼켰던 적도 많다. 말이 엉켜 질문을 잘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내가 가진 약점을 한껏 몰아치시는 국장님이 야속해 벌겋게 된 얼굴로 씩씩대며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다. "질문이 없는 것은 공부가 덜 된 것"이라는 말을 지표삼아 부지런히 공부하고 질문으로 보충하면 됐을 일인데, 왜 그리도 거창하게 생각하여 질문하기를 꺼려했는지 모를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천한 지식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 그랬던 것 같다.  

 7주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바쁜 일정을 따라가며 내가 가진 생각들이 얼마나 근거 없고 초라한 것인지 절감했다. 무식이 부끄러워 공부를 하다 보니 질문을 하는데 탄력도 붙었다. 좋지 않은 머리를 믿고 앉아있을 수 없어 항상 메모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됐다. 다이어리를 펼치면, 살면서 곱씹고 지고가야 할 무겁고도 진실된 어른들의 말씀들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것으로도 모자라, 어떠한 질문도 마다않고 끈기 있게 답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세상을 헤쳐 나갈 도구가 하나 더 생겼다. 

 사회 각계에서 일하시는 선배 세대와의 만남 말고도 나를 풍요롭게 한 경험들은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외따로이 떨어져 냉기를 뿜고 있던 청송 교도소를 방문한 후, 재소자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재단의 횡포로 거리에 나앉게 된 홍대청소 노동자분들의 농성장을 방문한 후 마음의 빚을 얻었다. 게다가 이번 겨울은 어찌나 추웠는지. 홍대 집회에선 한군데에 오래도록 서있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언 손으로 쓴 메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괴발개발이었다. 농성장 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여서, 어머님들은 그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전기요 한 장에 의지해 투쟁을 이어가셨다. 어머님들의 마른 손을 보면서 방문과 응원 외에 별다르게 보탬이 될 수 없는 스스로의 처지에 답답했다. 그렇게 살을 에는 추위는 한남동 버마 대사관을 돌아 이집트 대사관을 지나 민가협 어머님들이 목요집회를 하시는 탑골공원을 휘감고 지나갔다. 이곳의 바람은 다른 곳에서 보다 더 날카로운 것 같았다.  


항상 메모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됐다

 그런 가운데 늘어나는 경험치 속에서 하나 둘, 생긴 질문들이 가치를 치고 뻗어나갔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왜, 교도소 시설은 변하지 않나?', '지키지 않는 최저 임금법이 무슨 필요가 있나?' 등 나날이 그 개수를 더해가는 질문 속에서 모든 제약조건의 핵심은 돈이며, 무관심에 있다는 사실을 느낄수록 마음이 번잡했다. 제대로 눈을 뜨고 보기 시작했는데, 한국사회가 이토록 궤도를 벗어나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 내가 이 같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을까. 알면 알수록 공평하지도 쉽지도 않은 세상이라 여겨졌지만, 그런 속에서도 더 배울 것이 많다고, 오만한 소리하지 말라고 나를 다그쳐 준 경험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후배 세대들이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부조리에 맞서 외로운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느낀 것은, "사회를 걱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는 현실에 개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권연대'를 거점삼아 사회를 바꿔보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거점이 된 인권연대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수확이라 여겨졌다.  

 2월 11일. 7주간의 인턴 생활을 마감하고, 살짝 취해 불그스레한 뺨을 한 채 지하철 안에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천천히, 여유 있게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겉만 보며 굽어진 궤도를 돌 뻔 한 나를, 끊임없이 질문을 안고 고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호통치고 가르쳐 주신 인권연대 사람들의 글귀다. '자신을 사랑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도 질문하라고 재촉하셨구나 싶어 가슴이 벅찼다. '이젠 애정으로 야단쳐 줄 누군가 없이 홀로 잘잘못을 가려내고 고민하며 살아가야겠지.' 속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 헛헛했다. 훗날 이번 겨울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고민을 안고 질문을 하는 과정을 게을리 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나는 다시 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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