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로부터 국민 보호” vs “정보유출·인권침해 우려”
“갈수록 흉포화, 지능화하는 흉악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 대처 방안이다.”(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 서범정)

“재범 우려라는 측량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위험만으로 범죄자 DNA를 채취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오창익 인권시민연대 사무국장)

범죄자의 유전자(DNA)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흉악·강력범죄로 형이 확정된 수형자나 구속 피의자의 DNA 시료를 채취해 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하다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법무부는 관련법을 다시 입법예고한 뒤 연내 입법을 추진 중이어서 인권 침해 논란이 재연될 전망이다.

◆흉악범 DNA 국가가 관리한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범죄자 DNA 정보를 관리해 수사와 재판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추행, 약취유인, 체포감금, 상습폭력, 마약, 청소년 대상 성범죄와 방화, 군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 11가지 범행을 한 범죄자가 대상이다. 수사기관은 강력범죄를 저질러 형이 확정된 수형자나 구속 피의자 등에게서 혈액, 모발 등 DNA 감식을 위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당사자가 거부해도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채취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상자가 재판에서 무죄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거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등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 해당 정보는 삭제된다. 또 관련 업무 종사자가 정해진 목적 외에 정보를 사용하거나 제삼자에게 제공 또는 누설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국민인식이 달라졌다=
정부는 2006년 범죄 예방과 수사 목적의 필요로 DNA 정보를 채취해 DB로 구축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했다. 당시 시민단체 등 인권단체들은 “모든 범죄자를 예비범죄자로 간주하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국가의 개인 생체정보 관리에 대해서는 당시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2006년 이후 충격적인 연쇄살인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범죄자 DNA 정보를 관리해 더 큰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혜진·예슬양 실종·피살사건(2008년 3월),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4모녀 살해사건(2008년 3월), 제주 초등학생 성추행 후 살인사건(2007년 4월), 인천 초등생 유괴살인사건(2007년 3월), 용산 아동 성추행 후 살인사건(2006년 2월),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2009년 2월) …. 이들 범죄는 잔인한 살해수법뿐만 아니라 어린이, 부녀자 등 피해자도 가리지 않아 충격이 더 컸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인권의 가치를 어느 곳에 우선시할 수는 없지만 범죄자 등의 인권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사편의주의적 발상=그러나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헌법상 보장된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나 구속 피의자들에게까지 DNA 정보를 채취하는 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수사기관의 편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채취 대상자들이 구속된 피의자나 수형자라고 해도 이들이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른다는 보장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즉 재범 우려는 측정할 수 없으므로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수사기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연쇄살인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적절한 억제수단인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우승·김정필 기자 wslee@segye.com

 

기사입력 2009.08.30 (일) 20:32, 최종수정 2009.08.30 (일)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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