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내우외환 경찰 어쩌다 이지경에? | |
시위진압 등 무리수 거듭해도 ‘지휘부 영전’ 법치 앞세워 ‘검거 닦달’ 일선 경찰 압박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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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식 성과주의 ‘인권경시’ 부추겨
경찰이 내우외환의 시름에 빠졌다. 성폭행범 김길태·김수철 사건에 이어 지난 26일 ‘동대문서 초등생 성폭행 사건’으로 민생치안의 구멍이 드러난데다, 경찰 수뇌부의 실적주의에 대한 내부의 공개비판마저 불거졌다. 서울 양천경찰서의 고문 사건이 “경찰 지휘부의 실적주의 탓”이라는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의 기자회견은 곪았던 환부를 외부로 극명히 드러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경찰 내부와 전문가들은 현 정부 출범 뒤 검찰·경찰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법치주의 확립’ 구호가 실상은 처벌과 단속, 규제 등으로 흘러 상대적으로 인권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고, 여기에 현 경찰 수뇌부가 강조하는 실적주의가 맞물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한 간부는 최근 사태에 대해 “새 정부 들어 공기업에 도입했던 기업식 성과주의를 큰 고민 없이 공무원 조직에도 적용했는데 이게 경찰조직에서는 탈이 났다”고 진단했다. 경찰에 무리하게 실적을 요구하면, 경찰은 보호 대상인 국민을 잡아들여 실적을 채울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양천서 고문 같은 사고가 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권 전문가들은 ‘경찰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 뚜렷해진 인권 경시 풍토를 꼽았다. 김칠준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는 “이명박 정부가 강력한 법집행을 독려하며 성과만 중시한 것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법절차 준수나 시민 인권 배려를 소홀히 하도록 만든 측면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경찰 지휘부의 행태가 드러나더라도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당시 서울청 지휘부가 촛불집회 1주년 기념집회 때 경찰 무선망을 통해 집회 해산을 지휘하며 내뱉은 말들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서울청 지휘부는 “설사 인도에 (시위대가) 산재돼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를 해”(주상용 서울청장), “채증하면 시비 걸 거야, 그럼 검거해”(장전배 교통지도부장), “질 나쁜 시위대들”(신두호 경비부장) 등의 발언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 직무 집행법’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지시를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인사상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경찰 지휘부는 인권 문제를 경시하게 됐고, 이는 국가인원위 권고 무시나 경찰이 그나마 도입했던 인권 관련 제도들의 후퇴로 이어졌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이런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일선 경찰관들은 ‘실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에 대한 인권 교육 등도 소홀히 취급됐다. 경찰은 2005년 7월, 경찰 인권센터의 문을 열고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 직무규칙을 제정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장(총경급)은 두 달째 공석이다. 인권센터가 운영하는 인권상담전화로는 2008년 47건, 2009년(상반기) 46건의 인권침해 사례가 접수됐지만, 경고·징계 등의 후속 조처가 이뤄진 사례는 전무하다. 지난해 9월 출범한 3기 경찰인권위원회의 권고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한 상태다.
경찰관들은 “경찰 수뇌부에서 인권을 강조하는지 법치를 강조하는지 일선 경찰들은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장이나 과장 등 중간 간부들이 닦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경찰 수뇌부가 검거 실적 등을 중요한 인사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진급에 목을 매는 중간 간부들이 일선 경찰관들을 심하게 압박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청의 경우 ‘경찰서장 평가제’를 통해 각종 실적 등을 토대로 순위를 매긴 다음 희망하는 보직 등을 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성과가 나쁜 서장은 6개월 만에 교체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런 구도 속에선 어떻게든 성과를 끌어올리려고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한 과장은 “당장 실적에 목마른 중간 간부들은 성과가 나쁜 직원들을 닦달하는데, 심할 경우 모욕감을 주거나 휴일 없이 실적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송채경화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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