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방부는 오리무중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2005년 28사단 GP 총기난사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한 지 6년 만에 해병대 총기사건으로 안타까운 젊은 청춘 4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총기 사건 하루 전날에는 해병대 2사단 병사가, 일주일 후에는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에서 병사와 원사가 각각 자살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공여단 병사 2명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직후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군 관계자들은 앞 다투어 진단과 대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정밀진단 없이 사후약방문식의 진단과 처방이 난무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요구한 인권실태조사는 해병대사령관의 공문 하나로 거절당했고,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토론회는 발제문 하나 없이 “모범생인 줄 알았던 자식이 비행청소년이더라”는 말도 안 되는 장관의 잔소리로 끝을 맺었다. 며칠이 지나 이명박 대통령은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발언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대가 과거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진 사회에 우리 군이 적응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헌법 제69조 취임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을 엄숙 선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장병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인식이 이러함에도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안을 제출함과 동시에 현 원내대표인 황우여, 원희룡 의원 등이 앞장서서 이와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해병대 총기 사건 이후, 야당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국방장관 해임안과 국정조사권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는커녕 단 한 명의 의원도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포기한 무능한 야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해야 하는 것은 문민우위 헌법 하에서 지고지순한 진리이다. 하지만 국회 국방위원회 차원에서 단 한 차례도 전군에 대한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없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해병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 해임안을 제출해야 하며,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군인권법과 국방감독관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 전체가 군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단 한 차례도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하지 않았고, 1950년대의 큰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87년 민주항쟁 이후에도 군대는 성역화 되다시피 방치되어 있었고, 민주화운동을 한 386들은 대부분 감옥살이로 군을 면제 받은데 따른 군대 문제에 대한 자기검열로 인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거대한 병영사회이며 군사주의 문화가 민간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변혁하지 않은 채 인권, 노동, 여성운동이 진일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지난 7월 5일 오전 해병대 장병들이 강화도 해안 초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해 25만명 가량이 군에 입대하고, 그만큼의 인원이 전역을 하고 있다. 군 입대를 앞둔 예비 입영자들은 인생의 막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전역한 예비역들은 ‘지금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라며 자신의 군 생활에 대해 거들먹거리는 식으로 불안을 부추긴다. 군대에서 당한 인권침해를 커밍아웃(?) 하거나 간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일까?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옹졸함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남자는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전혀 신성하지도 않고, 인간이 되기보다는 사육되어 길들여지거나 전역 한 후에 다시 군대 가는 악몽을 꾸는 등 무의식 속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왜곡되어 집단화된 남성동맹이 민족주의와 만날 때 집단적 광기를 발현하며 군가산점제 부활에 편승하여 여성과 장애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당당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전역 후 집단소송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고,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세상에 맞을 짓은 어디에도 없고, 손으로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고, 갈굼, 언어폭력도 폭력이다. 존엄성이 파괴된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양아치 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강원도 화천 모 부대에서 총기 사건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군에서 억울하게 죽은 젊은 원혼들의 한을 달래는 굿판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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