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미/ 국민대 학생 일주일 전 작업하던 다큐의 촬영이 끝났다. 아니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됐다. 이미 다 결정돼 있던 결말이었다. 그가 감옥에 가는 것. 내가 카메라에 담은 인물은 병역거부자다. 병역거부자라, 사실 ‘병역거부자’라는 수식어를 쉽게 붙이기가 고민된다. 그 인물을 어떤 틀에 딱 가둬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라는 게 낙인 같은 말이긴 하지만 반면에 더없는 의지의 증거가 되기도 하다. 어떤 대의를 가지고 무엇에 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의 이미지다. 하지만 내 카메라에 담긴 그 인물은 기존의 병역거부자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병역거부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난받는 일이긴 하지만 또 어떤 집단에서는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엄청나게 큰 것에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내 욕심이기도 했다. 병역거부자 기자회견에서 보는, 전쟁에 반대한다거나 국가에 저항한다거나, 그런 몇 줄의 기자회견문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역거부 하는 일이 엄청나게 비장하고 슬픈 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는 기자회견 대신 열장짜리 소견문을 써서 파티 형식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줬다. 대학신입생 때,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총을 들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나는 왜 군대를 갈 수 없는지 8년간을 끙끙대며 고민했다. 결국 그는 군복을 입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수복을 입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를 했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언어로 나름 풀어낼 수 있게도 됐다. 이런 나의 문제가 단순히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엄청 용기 있고 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처럼 찌질 하고 약한 사람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자신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누군가는 총을 만졌을 때 손의 떨림, 그 탄약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들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들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그가 솔직하다며 지지를 했고 또 누군가는 결국은 가기 싫다고 쓰면 될 말을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느냐고도 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에 오히려 답답해했다. 나는 그의 훌륭한 점만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끝까지 뭐든 물고 늘어져야 했다. 그의 진짜 속마음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를 통해 드러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의 모호한 대답들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유도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모순이었던 거다. 결국 그에게 명확한 대답을 원했던 거니까. 하지만 애초 그에게 명확한 답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그는 그의 길을 간 것일 테고.
서른 인생 가깝게 끙끙댄 자신의 고민이 단지 두 문장으로 기소장에 적히는 구나, “몇 월 며칠 입영날짜를 보고도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써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거였구나 싶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법원에 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겼다. 사건번호의 피의자로만 호명되는 게 싫었지만 형사재판이라는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지막 재판 때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제출한 자료들을 다 읽어봤다고, 그런데 당신이 주장하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판사의 그런 발언이 정말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게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한 거면, 거꾸로 판사가 조사내용이나 내가 제출한 소견서를 꼼꼼히 봤을 것이라고. 내가 무슨 평화주의자라고 쓴 소견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사례가 판사입장에서는 별로 관심가질 만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표현한 그런 말이, 결국은 법률적인 틀로써 잘 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서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고. 이제 그는 감옥에 있다. 죄수복을 입었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된다. 더하다면 군대보다 더할 감옥으로 그는 갔다. 모두 다 똑같은 삶을 살 순 없다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짐이었던 군대라는 문제에, 어쨌든 그는 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했던 말처럼, 병역거부가 인생의 한 지점에서 점을 찍는 행위라면 그러고서 앞으로도 자기를 배신하지 않고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법률적이고 획일적인 어떤 체에 걸리지 않고 더 잘 도망치면서 말이다. |
[목에 가시] 그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 장윤미/ 국민대 학생
2010. 3. 31. 14:01
그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 장윤미/ 국민대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