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집행 사형수 60여명...집행하지도 않는 사형제 왜 놔두나
"인권 후진국 오명 자초, 차라리 사형제 폐지해야"
[아시아투데이=유선준 기자] 김대중 정부 이후 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도 집행되지 않은 기결수가 60여명에 이르면서, 사형제 존폐여부를 싸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집행하지도 않을 극형을 존치하는 바람에 국제 사회에서 '인권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만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 60여명의 사형수가 존재하고 있다.
사형수에 대한 형집행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법무부 장관이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6년 12월 30일 마지막으로 집행됐다.
당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는 1991년 직장에서 해고된 데 앙심을 품고 승용차로 서울 여의도광장을 질주해 2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상처를 입힌 김용제(27) 등 23명이었다.
그후 10년이상 사형집행이 중단되면서 엠네스티 등은 한국을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법무부는 2008년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사형을 선고 받은 사형수에 대해서도 본인이 원할 경우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작업 또는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도 사형제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진보단체들은 이것 또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 따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보수단체나 상당수 국민들은 흉악범에 대해서는 사형선고가 필요하며, 일벌백계차원에서 필요할 경우 사형집행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이 이런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의 서명을 받아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여론과 사형제 유지 찬성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법안 성립은 무산됐다.
민주당의 김부겸 의원,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도 개별적으로 사형제 폐지법안을 국회에 냈으나 결실은 맺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법상 사형을 규정한 범죄는 형법의 내란과 외환유치, 살인죄 등 16종과 국가보안법 45종, 특정범죄가중처벌법 378종, 군형법 70종에 이른다.
오창익 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범세계적으로 사형제도가 폐지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보수단체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까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대중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이다"고 주장했다.
오 국장은 “사형 판결은 판사의 오판이나 변호사의 선임, 즉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 극형제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수들은 이왕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해 더 인성이 파괴되거나 사회복귀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며 “무기형으로 끝난다면 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뉘우치고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할 수도 있는 등 인권보호나 생명존중 측면에서 사형제 폐지는 옳다”고 밝혔다.
이진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도 사형제 폐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이 간사는 “제도 자체가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에 위배되기 때문 사형제가가 폐지돼야 한다”며 “판결에도 오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다 해도 장기 종신형을 선고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사형 받은 죄수가 사형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살한 사건도 여러번 있었다”며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죄를 뉘우칠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종신형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박순호 엠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도 “유엔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권장하고 있고, 유럽의 경우 거의 모든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했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대세를 따르는 것이 국격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준 기자 rsunjun@as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