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종시법 수정안 홍보 ‘공무원 총동원’

ㆍ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장 명의 공문 보내 관련교육 실시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법 수정안과 4대강 사업 홍보를 위해 정부 부처 공무원을 총동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세종시의 경우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한 지난 1월 11일 이전부터 공무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홍보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 뜨거운 이슈가 된 세종시법 수정안 및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정부는 사실상 공무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여론전에 임한 것이다.
국무총리실장 명의의 ‘세종시법 수정안’교육공문과 행정안전부가 각 부처에 보낸 ‘4대강 사업’ 교육 공문. 표는 각 부처가 행정안전부에 보낸 ‘세종시법 수정안’ 교육실적.

<Weekly 경향>이 단독으로 입수한 국무총리실장 명의의 문서에 따르면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2월 18일 ‘세종시 문제 이해 제고를 위한 교육 실시 협조’ 공문을 33개 정부 부처와 각 청에 내려보내 공무원들에게 세종시법 수정안과 관련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경찰청, 소방방재청 등 긴급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행법 위반” vs “정책 교육 당연”
이 문서의 주요 내용은 정부지원협의회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 각 부처 직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협의됨에 따라 교육계획을 송부하니 부·처·청별로 자체 계획을 수립해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는 것. 이는 지난해 12월 17일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열린 정부지원협의회에서 국가적 이슈인 세종시 문제에 대해 공직자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각 부처에서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즉시 해야 한다고 결정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공무원 교육과 관련해 총리실 산하 세종시기획단은 세종시법 홍보 리플릿(전단지)을 각 부처에 200부씩 배포했으며, 강의용 소책자와 PPT(파워포인트)는 파일로 전달하고 필요한 만큼 자체적으로 제작해 활용토록 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유정 의원(민주당)은 “세종시법 원안(현행법)에 따라 행정기관 이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고, 더욱이 세종시법 수정안에 따른 법률들도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원들에게 세종시법 수정안 교육을 실시한 것은 명백히 현행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종시법 수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미리 교육시킨 것은 행정 공백을 통해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재정을 낭비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공무원들에게 국가 시책을 이해시키기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총리실 세종시기획단 관계자는 “세종시법 수정과 관련해서는 1월 11일 이전부터 민관합동위원회에서 큰 골격이 잡혀 있었다”면서 “참여정부 때도 정부 부처 일부를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통과되기 이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총리실의 문건에 따르면 교육 일정은 부·처·청별로 자체적으로 계획해 실시하되 강사는 부처별 차관(또는 차장)이 맡아서 하도록 했다. 특히 세종시기획단은 강사를 요청하는 기관에 강사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유정 의원이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질의하고 있다. |경향신문
총리실의 공무원에 대한 세종시법 홍보 교육 지시와 함께 1월 11일 행정안전부는 각 부처에 구체적인 교육 지침을 내렸다. 행안부는 공무원들의 직무능력과 인성증진 교육 기능을 담당하는 부처다.

행안부가 각 부처에 발송한 ‘국정 현안 공유 공직자 설명회 개최 협조 요청’에 따르면 중앙부처의 경우 실·국장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월 13일(광화문청사)과 14일(과천청사) 실시토록 했으며, 과장급 이하 전 공무원에 대해서는 1월 13일부터 19일까지 하도록 했다. 행안부는 이 같은 공문을 지방자체단체에도 보내 지방공무원에 대한 설명회 참석을 독려했다.

행안부는 1월 14~15일 또는 1월 18~19일에 권역별 순회 설명회 계획도 밝혔다. 이를 위해 행안부 교육훈련과는 중앙부처의 실·국장 및 과장급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담당했으며, 자치행정과는 시·군·구 부단체장 및 시·도 5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방권역별 설명회를 맡았다. 이는 정부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공무원들에게 세종시법 수정 홍보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민심을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도 12만명 이상 교육 받아
특히 행안부는 부처별로 교육실적을 취합해 통보하도록 했다. 정부가 세종시법 홍보 교육을 받도록 사실상 의무화한 것이다. 공무원들은 부처에서 실시되는 공직자 교육 또는 직장교육에 뚜렷한 이유 없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행안부가 마련한 세종시 교육실적 제출 서식은 ‘총괄’과 ‘당일 교육내역’ 등 두 가지로 이뤄져 있다. ‘총괄란’에는 ▲부처명 ▲총교육 대상 ▲금일 교육 ▲누계 ▲누계율 등을 기재해야 하며, ‘당일 교육내역서’에는 ▲교육 일시 ▲장소 ▲참석 대상 및 인원 ▲강사 ▲교육 내용 등을 써서 제출토록 했다.

이 같은 세종시법 홍보 교육은 대부분의 공무원이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유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지방경찰청 세종시 교육 실적’에 따르면 서울청 등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총 12만1491명의 경찰이 교육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공무원(10만여명)과 전·의경 등을 포함한 인원이모두 14만여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90% 가까이 세종시법 수정안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정부시책을 홍보하는 교육보다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인성·교양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지금 우리 경찰은 국가경찰이지 정부의 경찰이 아니다”면서 “논란이 있는 정부시책을 경찰에게 교육시키는 것은 경찰을 국가경찰에서 정부경찰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공무원들을 여지 없이 동원해 교육을 시켰다. 행안부는 지난해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 발표일(6월 8일) 후인 7월 7일 ‘4대강 살리기 사업 국가공무원 직장교육 방안’을 각 부처에 보내 8월 말까지 자체교육을 실시토록 했다. 이 공문에 따르면 교육 대상은 중앙부처 40개 기관의 공무원 9만7000여 명이다. 교육 내용은 4대강 사업의 필요성, 기대효과 등이다. 교육은 동영상(DVD ‘상상하라 새로운 대한민국’)시청, 특강, 질의응답 등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대통령령인 공무원교육훈련법 시행령에 따라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책 사안에 대해 홍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공무원들은 정부가 대형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동원하기 쉬운 공무원을 모아 놓고 여론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사회적으로 반대 여론에 부닥치는 정책 이슈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권을 동원한다는 지적이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정부가 공무원을 동원하면 힘없는 공무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교육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되든 안되든 공무원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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