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일찍이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역설했다. 자연과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나 운행방식에 대한 경험적이며 실용적인 지식의 습득은 종교적 관습과 정치적 권위의 사슬로부터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 철학자들이 ‘백과사전’ 편찬에 열중한 이유도 지식의 보급과 확산은 진보와 해방을 약속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지식(습득)이 보장하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플러스) 혜택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 억압적(마이너스) 속성을 고발한 대표적인 사상가 중의 한 명이 미셸 푸코(1926-1984)이다. 그의 주장은 “아는 것은 너의 힘이며 동시에 나(타인)를 훈육하고 속박하는 권력의 원천이다”라고 요약된다. 쉽게 말하자면, 학교 선생님들이 교단 높은 곳에서 관찰하여 기록하는 성적표와 생활기록부는 ‘품행 방자한 학생’을 단속하는 회초리이며, 병원이나 공공기관에 분류, 보관된 건강진단서와 신용등급표는 나의 육체와 일상생활을 옥조이는 미세권력의 눈이라는 뜻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논쟁되지 않고 관습적으로 독점되는 전문지식은 그 소유자(집단)의 힘과 이익으로 순전히 환원된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열망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면, 그들이 움켜지고 공유하는 권력지식의 이기주의를 문제시함으로써 착한 고객이나 하인 같은 유권자로 남기를 거부해야 한다. 전관예우, 학벌공화국, 국가전능주의, 도제식 전문교육 등등 다양하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진행되고 용인되어 왔던 ‘지식=권력=부와 명예’의 등식을 깨쳐버려야 하는 것이다. 공익성이 결여된 전문지식은 파괴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시각으로 곰곰이 따져보면, 공공 이익과 공적 자유의 확장을 위해 자기희생이라는 좁은 문을 선택한 용기 있는 이들에게 ‘내부 고발자’라는 부정적인 함의를 가진 명칭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들이야말로 ‘나를 따르라’고 호령했던 전통적인 (죽은) 지식인을 대체해야 할 포스터모던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이다. 죽은 지식인의 무덤 위에 피어야 할 새싹은 내부 고발적인 실천하는 양심인 것이다. 누가 ‘위키리크스(WikiLeaks)’를 두려워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