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길태(33)씨를 검거해 호송하면서 김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아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경찰은 호송 과정에서 김씨가 쓰고 있던 마스크를 일부러 벗겼는데,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한 것은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이후 처음이다.
경찰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우려해 마스크 또는 모자를 씌우거나 얼굴에 점퍼를 덮어왔다. 이는 ‘피의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은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제85조)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가 2005년 6월 “경찰이 유아무개씨 등 벌금 미납자를 호송하는 과정을 외부에 노출해 인권을 침해했다”며 경찰청장한테 ‘호송업무 개선’을 권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피의자 얼굴 공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연쇄살인·어린이 성폭행·반인륜 범죄 등 강력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연쇄살인범 강호순(40)씨가 붙잡혔을 때는, 정부가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특정강력범죄의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끝내 강씨의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은 따로 그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도를 바꿨다. 피의자 얼굴 공개가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의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김영식 부산경찰청 차장은 “흉악범죄자인데다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내친김에 경찰은 11일 ‘흉악범 얼굴 공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흉악범의 기준을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피의자 얼굴 공개가 헌법이 보장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사소송법과도 배치된다며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김형완 인권위 인권정책과장은 “흉악 범죄자나 아동 성폭력 범죄자에게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는 원칙에 이견이 있을 순 없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인권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엄연한데 국가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찍어 사전에 공표하고 있다”며 “이른바 ‘괴물’의 얼굴을 공개해 대중의 분노가 한 사람한테 집중되게 함으로써 정부와 경찰이 책임져야 할 치안 부재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석재, 부산/신동명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