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인권연대 2011년 겨울 인턴

 2010년 12월,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히 인권연대 인턴 모집 공고를 보았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CGPA나 총 이수학점 모두 여유롭지 않아서 계절 학기를 신청해놓았기 때문이다. 항상 이성이 감성을 압도하고, 모험은 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이번에는 수강취소를 하러 학사지원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택을 했다.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살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교 주변에서 놀았기 때문에 보고 배울 사람이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또한 곧 사학년이라고 말하고 다녀야 할 텐데 그 타이틀에 걸맞은 의식수준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대로 밀고 나갈 수만은 없었다. 크게 이 두 가지가 인권연대 인턴을 지원한 동기였다.

 운이 좋게도 인턴으로 뽑혔다. 많이 부족한 나를 면접에서 보시고는 “얘는 좀 가르쳐야겠다”는 의무감이 드셨던 것 같다. 초반에 인권연대의 분위기를 조금 익히고 나니,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7주 후의 성과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꼭 얻어갈 것을 몇 개 머릿속에 그렸다. 대략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회를 보는 눈,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과연 매일같이 인권연대와 연을 맺고 있는 인사들을 만났고, 국장님과 그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점점 많이, 점점 깊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 그런 자리들이 모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6주(7주 중에 설 연휴 1주 제외) 라는 짧은 시간에도 평생 하지 못할 많은 체험을 했다.

 아무래도 가장 규모가 큰 체험은 ‘청송교도소’ 탐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도소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인데, 교도소 중에서도 교도소라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청송교도소를 가 보게 되었다. 형법교수님들도 쉽게 못 간다는 그곳에 가서 독거방까지 보고 나니, 교정 시설에 대한 관심이 우리사회에 부족함을 느꼈고, 왜 오창익 국장님께서 교정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는 가를 알 수 있었다. 

 평화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청송 외에 영등포 교도소에도 가 보았다. 사실 교도관에 대한 편견도 있었고, 많은 재소자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다 하니 긴장도 되었었다. 그런데 막상 하루 종일 그분들과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보니, “내가 이상한 영화들 때문에 잘못된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재소자들도, 교도관들도 모두 나와 같은 사람임을 느꼈다.  

 어제 학교 게시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가 열린다는 알림 글을 봤다. 재학생들은 수강료가 3만원이었는데, 세 분의 강사 중에 두 분이 내가 인턴 활동을 하면서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었다. 그 때는 다른 대학생들이나 학교선생님들의 수업에 무임승차해서 같이 강의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강사님들의 수업을 따로 들으려면 한 사람당 만원이라는 거액의 수업료를 내고 찾아 가야한다는 것을 직접 보고나니, 그동안 인턴활동의 일부로 15, 16기 교사연수와 대학생 인권학교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는가를 실감했다. 학교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가치 있는 강의들을 실컷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인권연대에 감사드린다.  


대학생 인권학교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11기 인턴 활동가들
김효인, 정희진, 양길모, 남두희(앞에서부터)

 그 외에도 홍대 청소노동자 기자회견 취재, 한겨레신문사 견학, 민가협 목요집회 참석, 프리버마캠페인 등 셀 수 없이 많은 경험들을 했다. 이제는 학년만 올라간다는 생각도 덜 들고, 우리 사회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고 무지했던 점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 줄어든 기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체적 피로에 굴해서 그 날 그날의 경험을 확장, 흡수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지나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스피치도 잘하고 싶어서 국장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토대로 조금씩 시도는 했지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유가 부족해서 연습할 수 있는 기회들을 충분히 활용 못한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나는 7주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에게 더 좋은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시고, 인턴들이 마음이 흐트러져서 주는 것을 다 받아가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괜히 쓴소리를 해주시느라 힘드셨을 국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많은 사무실 업무를 두 분이서 맡아 하시느라 바쁘셨을 텐데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지도해주신 간사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일주일에 절반정도는 우리를 보내고도 남아서 늦게까지 일을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먼저 오셔서 반겨주시는 간사님을 보면 피곤함을 잊곤 했었다.  

 역동적이었던 인턴기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비록 7주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의 일탈이었지만, 잔잔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나의 심장은 7주 동안의 그 빨랐던 박동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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