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인턴활동을 마치며] 13기 인턴활동가(윤다정/ 황서현)

인권을 배우고 행복해지기를 꿈꾸다

윤다정/ 13기 인턴활동가

 입시를 견뎌내고 모처럼 대학에 입학했으니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심은 제법 잘 지켜지는 듯했다.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하고, 강연회가 열리는 곳에는 꼭 찾아가고, 길바닥에서 노숙하며 데모도 해 봤다. 2년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생이 으레 느낄 법한 취업 압박을, 고학년이 되어서도 뚝심 있게 외면할 정도로 심지가 굳지도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의미 있어 보이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권연대 인턴 모집에 지원했다. 다행히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긴 했지만, 면접에서 몹시 버벅거리며 얕은 밑천을 여과 없이 드러냈던 탓에 영 불안하기만 했다.

 인턴 활동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다. 손은 열심히 모르는 내용을 받아 적고 머리는 그것들을 이해하느라 바빴다. 쓸모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강박, 멍청해 보이기 싫다는 욕심 때문에 열심히 머리만 굴리다가 질문을 삼킨 적도 허다했다. 여러 가지 인권 현안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원서에 잘난 척 주워섬겼던 온갖 단어가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백하건대 나의 짧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허영심이었다. 몰랐던 지식을 머릿속에 주워 담고 으스대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곤 했던 내게 고통스러운 자각이 매일 이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열등감이 폭발해서는, 집에서 휴지 한 통을 다 쓰도록 울기도 했다. 자존심으로 포장된 열등감을 과감히 버렸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직시하고 질문하기를 독려하며,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나를 가르쳐주신 국장님과 간사님들의 도움이 컸다. 겸허함을 배웠다. 나를 낮추고 평생 배우는 자세로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7기 대학생 인권학교

 겸허함만큼이나 중요한 배움은 ‘사람의 삶’에 관한 것들이었다. 8주간 내가 모르던 세상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머나먼 만주 땅을 전전하던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처럼, 고국을 떠나서 차가운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버마 민주화 운동가분들을 만났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레일을 망가뜨리고자 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매일 한강 변만 산책하다가 난생처음 바다를 본 사람처럼 새로이 만난 세상에 압도되었다. 시야가 수백 배는 넓어진 기분에 가슴이 뻥 뚫렸다.

 한 손엔 수첩, 한 손엔 펜을 드는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인턴 활동 마감일이 다가왔다. “일정이 빡빡합니다.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갈 거예요.” 출근 첫날 국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였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도 출근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마지막 날에도 국장님은 중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필사적으로 열중할 것.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살 것. “인권을 배우자, 그리고 행복해지자.” 제7기 대학생 인권학교의 슬로건을 새삼스레 되새기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전제를 깔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들어앉아 있는 작은 울타리를 부수고 나오게끔 도와준 첫 번째 도약대가 인권연대였다는 행운에 감사한다. 행복하게 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인권연대에서 만난 모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여기서 얻은 배움을 벗삼아, 어떻게 해야 내가 사는 땅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자 한다. 목소리는 크게, 공부도 사랑도 놀이도 열심히 하면서.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8주

황서현/ 13기 인턴활동가

 처음 인권연대를 알게 된 건 4월에 있었던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저자강연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긴 하나, 전공 교과서에만 치중한 나머지 법과 사회 전반과 직접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든 그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중에 있던 나는 우연히 저자 강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주저 없이 신청을 하게 됐다. 인권연대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강연회에 참석한 이후로는 매일같이 인권연대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어떤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와 같은 강연회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 인턴 공지 글을 보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여름방학은 뭘 하며 보낼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좋은 기회다 싶어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인턴으로 선발되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인턴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국장님의 말씀에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국장님이 말씀하신 공부는 단순히 교과서를 보고 줄긋고 시험 치는  등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 외의 공부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국장님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간파하셨는지,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주셨다.

 “듣고, 쓰고, 말하고, 읽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라.” 

 이 한 문장이 인턴활동의 교과서가 되었다. 여기에 따라 사고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 내야했고, 질문을 하기 위해서 공부해야 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항상 책을 펴들었고, 책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멈출 것 같을 때마다 “안 돼!”하고 외치기도 했다. 책을 읽고도 용기가 없어서 질문하지 못했던 적도 많이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질문에 대한 두려움도 점차 사라졌고, 국장님께는 물론 만나는 선생님들께도 하나씩 질문 하게 됐다. 양질의 질문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후련 했다. 비로소 아는 것들이 생겼다.

 아는 것들이 생기자 질문에 조금씩 용기를 가지게 됐고 또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책과 신문을 펼쳤을 때, 노동자와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의 이야기,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알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쉽사리 ‘연대한다’, ‘알 수 있다’라고 말 하지 못했던 것들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목판화가 이철수 선생님과 함께 한 윤다정, 황서현 인턴활동가

 밑지는 인생을 사는 밑지는 생명들은, 내 앞에 있는 상대가 아니라 ‘나’이며 ‘우리’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인권연대 인턴활동을 하면서 배운 인권감수성과 연대의식은 내 삶에 거름이 됐다고 확신한다.

 국장님과 간사님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많이 공부해야 되는 지를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내가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인권연대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인사도 나누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뜻 깊었다.

 이번 인턴활동은 대강의 목표만 세워두고 덩그러니 앉아있던 나에게 목표 달성을 위한 모종의 전환점이 됐다.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8주간의 소중한 경험을 반복학습을 하며 또 다른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일만 남았다. 새로운 모든 것에 갈증을 느끼며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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