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 vs 닉슨’
프로스트 쪽|너 같은 얼치기에 내 입을 열 것 같아?
닉슨 쪽|미국 시청자는 진실을 원합니다!
![한겨레](http://img.hani.co.kr/section-image/05/news2/btn_hkr.gif) |
박창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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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스트 vs 닉슨’
한물간 방송인·닉슨 전 대통령
1977년 TV 인터뷰 실화 바탕
워터게이트 전모 밝히는 과정
예리한 시선 극적 긴장감 압권
인기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인 문화방송 <100분 토론>의 시청률은 5% 정도다. 다른 토론 인터뷰 프로그램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대담, 방담, 인터뷰는 흥미와 재미 면에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7년 여름, 미국 인터뷰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한물간’ 방송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와 중도 사임한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인터뷰다. 당시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뒤 3년 동안 사과 한마디 없는 닉슨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았다. 그에게 진실을 듣길 원했던 4500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은 둘의 숨막히는 설전을 꼼짝도 않고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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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이 티브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실화를 담고 있다. 미국 뉴스 인터뷰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로 기록된 실제 인터뷰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인터뷰 이면의 다양한 모습을 되살려냈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치인을 인터뷰한 경험이 없는 한물간 토크쇼 진행자가 어떤 검사나 기자도 밝히지 못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과연 그는 어떻게 닉슨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었을까?
인터뷰 초반 프로스트는 닉슨에 완패한다. 거액의 출연료를 포함해 2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세번의 연속된 인터뷰에서 프로스트는 노회한 닉슨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한다.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며 돌아선다. 프로스트의 동료들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마지막 네번째 인터뷰에서 그는 확실한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인터뷰 며칠 전 승리감에 도취한 닉슨은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승리가 결정적이라며 프로스트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에 프로스트는 동료와 함께 도서관을 뒤져 닉슨을 몰아붙일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다. 물증을 들이대는 프로스트에게 닉슨은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억지를 쓴다. 하지만 이 순간 게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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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프로스트가 있다면 누구일까? 혹시 사회의 목탁이라고 자처하는 언론일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치권과 결탁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 아닐까? 또 한국 사회가 언제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느껴보거나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프로스트…>는 한국 언론의 슬픈 자화상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언론계 종사자들부터 먼저 봐야 할 영화다. 누구든 재미를 느낄 것 같은 토론, 인터뷰 프로그램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2년간 진실을 놓고 두 사람이 벌였던 이 전설적인 티브이 인터뷰는 <더 퀸>으로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탄 피터 모건에 의해 2006년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연극이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자, 명장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연극에서 프로스트(마이클 신)와 닉슨(프랭크 랜젤라) 역을 맡았던 두 배우를 그대로 주연배우로 기용했다. 특히 실제 닉슨의 구부정한 태도며, 능구렁이 같은 말투를 생전의 닉슨보다 더 실감나게 재현한 랜젤라의 연기는 압권이다. 그런 만큼 올 아카데미상이 그를 무시한 것은 상당히 아쉽다.
<아폴로13>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등에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력을 뽐냈던 하워드 감독은 이번에도 그만의 장기를 제대로 보여준 듯하다. 인터뷰 영화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극적 긴장감과 흡입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사진 유피아이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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