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편의시설 외면하는 檢 ·警 일선 수사·조사기관들 장애인 편의시설 열악
일반인들에게도 언제나 문턱이 높게만 보이는 수사기관이나 조사기관. 이들 기관들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얼마나 마련하고 있을까?
CBS 노컷뉴스가 20일 '제3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일선 검찰청과 경찰서를 긴급취재한 결과, 장애인들을 위한 조사시설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준칙상 장애인을 위한 조사시설을 따로 마련하거나 관련 장비 등 시설물을 설치할 것을 내규로 정해놓고 있지만 일선 검찰과 경찰은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
◈ 이름뿐인 일선 검찰의 장애인 조사실
1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검찰청에 마련된 장애인 조사실.
야간 당직실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몇 평 남짓의 조사실에는 상주하는 직원 없이 책상과 의자 한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여성수사관 전용 숙직실과 벌금 미납자 감금실로 함께 운용되고 있어 사실상 장애인 조사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장애인 조사실을 따로 마련해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선 검찰청 장애인 조사실 열악한 상태다.
이 곳에서 고소인이나 피고인 신분으로 장애인들이 조사를 받게 되도 일반인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6조에 따르면'장애인등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및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일선 기관들은 바로 이 규정을 바탕으로 장애인 조사실을 마련,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검찰청은 지난 1997년부터 장애인이 검사실에 출석할 때 겪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전국 각 검찰청 1층에 '장애인을 위한 조사실'을 설치, 운용해 왔다.
하지만 일부 지청은 이를 지켜 장애인 조사실을 따로 마련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 등 들쑥날쑥이었다.
현재 경기도 내 장애인 조사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수원지검과 안산지청, 안양지청, 고양지청으로 모두 4곳. 성남지청과 여주지청, 평택지청의 경우 별도로 장애인 조사실을 구비해 놓고 있지 않았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지검 내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1층에 장애인 조사실을 따로 마련했다"며 "사건이 있을 때만 해당 검사가 1층으로 내려와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 일선 경찰서 "장애인 조사실이 뭔가요?"
그나마 장애인 조사실에 대한 구색을 맞춰놓은 검찰과 달리 경찰은 이마저도 전무한 상태였다.
CBS노컷뉴스가 이날 수원지역 3개 경찰서와 화성, 용인지역 경찰서, 의정부경찰서 등 경기도 내 일선 경찰서에서는 장애인 조사실을 둘러본 결과, 별도의 조사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의사표현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뒤섞여 조사를 받아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진술녹화실을 이용하고 있다"며 "따로 장애인 조사실을 만들어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 조사실은 없고 농아인에게 수화 통역사를 제공하거나 목발, 휠체어를 제공하는 등 편의를 봐 주고는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서 현관 입구에 마련된 점자 안내판이나 길 안내용 점자 블록은 정작 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는 '전시용'시설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경찰청과 일부 경찰서의 경우, 현관 앞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주요 부서 점자 안내판이 아예 없거나 중간에서 끊어지는 등 '엉망' 수준이었다
시각장애인연합회 경기도지부 부기동(35) 과장은 "'김'이라는 단어를 점자로 쓸 때 단어를 이루는 ㄱ,ㅣ,ㅁ을 함께 붙여 써야 하는데 이 점자는 일부분은 음소를 모두 붙여쓰거나 어디는 떨어뜨려 놨다"며 "끝선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외관상 좋게 하려고 이렇게 들쭉날쭉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촉지도 위에 설치돼 있던 시각장애인용 안내 음향신호기도 먼지만 쌓인 채 작동이 되지 않았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경찰서 등 공공시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판이나 음성안내장치를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경찰서는 음성안내장치는 커녕 점자안내지도인 촉지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수원 남부경찰서의 경우 시각장애인용 촉지도가 없는 것은 물론 출입구로 안내하는 유도선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해 주고 있었다.
조병선(45) 한국시각장애인협회 경기도지부 본부장은 "장애인 편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얽매이다 보니 대부분의 시설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이용자가 많이 없다고 해서 시설을 엉성하게 해 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처장은 "인권보호수사준칙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검찰,경찰이 장애인 피의자, 피해자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며 "장애인 조사실을 따로 만드는 예산이 부담된다면 권역별로라도 우선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