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의 고민(정 원 위원)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위헌적인 실정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유신시대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위헌 조치를 쏟아냈고 다수의 법관은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사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악법도 법이다”를 권위주의 정부가 ‘도덕’과 ‘윤리’시간에 지속적으로 교육해 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최근 법원은 일련의 사건들에서 실정법을 준수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검찰(‘일부 검찰’이겠지만 검사동일체 원칙상 ‘검찰’이라고만 한다)과 일부 세력은 색깔론을 제기하며 법원의 좌경화를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들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정상적일 뿐 반대진영이 주장하는 좌경이나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롤모델(role model)로 삼는 ‘선진국’ 법원은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이 확실하다(다만 선진국 판사들은 우리 같이 대단한 검찰 동료가 없기에 이런 사건들을 해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관하여 우리사회가 1987년 이후 20년 이상 묵묵히 이룩한 성과이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강기갑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판결이다. 변호사 단체까지 나서 판결의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 긴급조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던 때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전진하고 있지 못하다. 담당판사가 어떠한 고민의 결과 무죄라는 결론에 이르렀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검찰이 법리를 무시한 엉터리 판결이라고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이 과연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기소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다수의 정상적인 국가들은 우리처럼 검찰에 무제한의 기소재량을 주지 않는다. 대배심(grand jury)과 같이 시민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도록 보장하기도 하고, 사전에 판사의 예비심사를 거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가 없는 우리의 경우 검찰은 기소 재량을 신중히 행사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재량을 강자(强者)의 논리에 충실하게 행사했다. 권력자의 범죄에 대하여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며 칼을 거둔 것이 대표적이다. 강기갑 의원 사건의 경우 국회의 자율권을 고려해 가능한 공소권을 발동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할 재량이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검찰의 불기소가 국회의 문제는 국회의 자율로 해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지극히 협소한 측면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파행적인 국회 운영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우리 법원은 전통적인 기본권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성숙한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용산 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난 것처럼 생존권이라든지, 난민(難民) 지위 인정과 같은 사회적 기본권 분야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기본적인 실정법 차원의 고민에서 맴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총수 등 경제적 강자에 대한 관대한 판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두드러지는 법원의 ‘부경화’(富傾化)’ 현상이다. 2010년 법관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