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아내가 결혼했다? 출근을 할 때 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는 건 이제 아내가 아니라 갓 두 돌이 된 아들 몫이다. 아들은 처음엔 가지 말라며 울기도 하고 했지만 요샌 인사를 꾸벅 한 다음 내가 집어 온 조간신문을 받아들고 엄마에게 간다. 그 틈에 얼른 현관문을 닫고 출근을 한다. 아내가 잠에서 깨는 시간은 아들이 눈을 뜨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아내는 곧바로 아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다. 아들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내 것까지 신경을 쓰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질 않기도 해서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지 꽤 됐다. 아내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 편이다. 내용은? 절반 이상은 아들에 관한 얘기다. 퇴근 후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역시 절반 이상은 아들이 주제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어쩌면 꺼내는 거의 모든 얘기가 아들과 연관될 거다. 우리는 오늘 아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 낮잠을 몇 시간이나 잤는지, 어떤 이쁜짓을 했는지, 뭘 얼마나 먹었는지 하며 대화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아들은 제 엄마 아빠가 가까이 붙어 있는 걸 꽤나 싫어한다. 특히 자기 전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장난삼아 아내 옆에 꼭 붙어 있어 봤는데 아들은 고개를 처박고 울먹인다. 결국 아내 옆자리는 아들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갓난아기 때는 아들을 따로 재우도록 버릇을 들이려 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결국 셋이서 자게 됐고 어느새 아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솔직히 불만스럽다. 나는 지금도 아들을 따로 재우는, 2+1을 아내에게 주장하지만 아내는 내가 한쪽에서 자는 2+1로 응수할 뿐이다.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인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인공 남편이 느꼈을 당혹감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말한다면, 자식을 낳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아내는 결혼한다. 나는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가끔은 아들이 부럽다. 아내가 이젠 내게 신경을 안써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 아내와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가족한테서 고립된 중년 가장’ 얘기가 예전처럼 먼 나라 얘기로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날마다 아들에게 버림받는다 갓 두 돌이 된 우리 아들은 내가 문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냉큼 뛰어와서 온 집안이 들썩일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는다. 놀아달라며 나를 애타게 쳐다본다. 오로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 순간을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끈다. 나 역시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 아들 수준에 맞는, 남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를 한다. 요샌 날씨가 추워져서 힘들지만 목욕도 같이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초창기를 복습하고 되새김질한다.
아빠는 질투중
가끔은 나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간 아들놈을 질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내를 질투하는 것일까? 내가 가끔 섭섭한 건 아들에게 배웅을 맡기고 아들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아내일까, 아니면 내가 건네주는 조간신문을 받자마자 그걸 엄마에게 전해주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냉큼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들일까. 아들이 잠들어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혼자만 듣는 아내가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니면 다만 아내 옆자리를 돌려달라는 내 간절한 외침을 모른 척하는 무심한 아들놈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빠는 오늘도 질투하며 잠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샘을 내며 아침에 눈을 뜬다. |
질투에 관하여 -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2009. 10. 15.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