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밝힌 경찰의 폭행·고문 행태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앞으로 검찰 수사로 사실 여부가 밝혀지겠지만 피의자 20여명이 인권위 발표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는 점에서 경찰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사대상 3명 중 2명꼴로 가혹행위 당해”=인권위는 지난해 8월부터 7개월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구치소로 넘겨진 피의자 32명을 조사한 결과 22명이 가혹행위를 당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몸 뒤로 수갑을 채운 채 두 팔을 위로 올리는 이른바 ‘날개꺾기’를 인권위는 고문행위로 판단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절도 혐의로 체포된 한 피의자는 “날개꺾기를 하다가 팔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경찰이 잠시 살펴보더니 ‘부러지지 않았다’며 폭행을 계속했다”고 진술했다. 이 피의자는 구치소로 옮겨진 뒤 폭행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다 지난달 병원 치료를 받았다.

같은 달 절도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는 입에 솜이 물려지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이 감긴 채 방석 위로 처박히는 고문을 당해 치아가 빠졌다.

2월 체포된 한 피의자는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지르자 몇분 후 양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고 가해자들이 모두 일어나 경례를 했다”면서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경찰관이 ‘별일 아니다’고 하자 ‘살살하라’고만 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간부급의 묵인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진술이다.

◆감시 사각지대에서 고문=경찰이 뒤탈을 우려해 조사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나 차 안에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사실에 설치된 CCTV의 경우 고정돼 있지만 카메라를 움직여 촬영 각도를 바꿀 수 있다. 특히 조사실에는 단 1대밖에 설치돼 있지 않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지난 4월 피의자들이 검찰에 진정하자 자체조사에 나선 경찰은 5월 말 CCTV 각도를 다시 조정한 것으로 드러나 은폐·조작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일부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지만 은폐될 만큼은 아니다”면서 “CCTV는 업체에서 관리하므로 그렇게 잡힌 것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 일로 문제가 돼서 조정했고 그것을 인권위가 은폐 증거로 지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9월 체포된 피의자는 경찰 차량 안에서 고문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당했고, 지난 1월 체포된 피의자는 “허위자백 후 현장검증을 나갔는데 범행 장소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 채 차량이 빙빙 돌자 경찰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라며 차 안에서 다시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강력 부인하는 경찰=경찰은 자체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양천서 관계자는 “일부 피의자가 마약에 취한 상태로 반항해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수갑을 채울 때 팔이 약간 꺾일 수 있었겠지만, 그 외 조사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인권위가 조사한 32명 중 일부만을 파악해 자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를 통해 이번 일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겠다던 경찰의 다짐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경찰의 ‘인권 시계’가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실적을 우선시하는 경찰의 성과주의가 이런 일을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정부가 인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 실적을 내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경찰 등 수사기관은 고문이나 가혹행위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귀전·이태영 기자
■경찰의 고문·폭행에 대한 인권위 조사결과
2010년 3월26∼31일 사무실과 자택에서 고문과 폭행
3월9일 사무실과 차량에서 고문
2월26일 사무실에서 고문
1월20일 차량에서 고문
1월18일 사무실과 차량에서 고문
2009년 12월17일 사무실에서 고문
11월4∼10일 사무실과 차량에서 고문
9월24일 차량에서 고문
9월1일 차량과 자택에서 고문
8월2일 사무실에서 고문
자료: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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