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서해성의 직설] 비참한 전의경, MB 탓만 하면 땡인가?
참여정부 업보와 운동권 전체주의까지 서슴없이 비판하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제39화] 까칠한 인권운동가의 외침

‘스타’이면서 ‘스따’.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스따’라며 놀린다고 했다. 풀이하면 “스스로 ‘따’를 자처하는 자”다. 까칠해서다. 아닌 건, 아닌 거다. 2009년 민주노총 성폭력 피해자의 대리인을 맡았던 일이 대표적이다. 20년 청춘을 인권운동에 바치면서 제법 이름을 알렸지만, 아직도 인권운동계 바닥에서조차 비주류로 느껴지는 이유다.

오늘은 인권연대 오창익(43) 사무국장을 모셨다. 이야깃거리는 전·의경 제도 폐지+알파다. 2008년까지 3년간 경찰청 인권위원을 지낸 그에게 요즘 최대 인권화두 가운데 하나인 전·의경 제도 폐지를 물었다. ‘플러스 알파’란 전·의경 문제를 포함해 모든 인권 사안의 책임을 엠비 탓으로만 돌리는 운동권 쪽의 안일함이다. 그는 “말발이 안 선다”며 여러가지 예민한 사례들을 쏟아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1992~95), 천주교 인권위원회(96~98) 활동가를 거친 그는 99년 인권연대를 창립했다. 인권연대는 북파공작원 사망·실종자 폭로, 이찬수 강남대 교수, 피우진 중령 사건 등 굵직굵직한 인권 이슈의 중심에 서 왔다. 관성적 운동을 뛰어넘고자 회원들 사이에 세미나팀을 조직해 활발한 학습 모델을 세워나간다고 했다. 저서로는 <십중팔구 대한민국에만 있는!>(2008)이 있다. 함께 쓴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곧 나온다.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혁명 현장에는 전경이 안 보이데요?
오창익(이하 오) 전투경찰제도는 전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어요.

한홍구(이하 한) 전경 없이 40년 넘게 정권 유지해 왔다는 얘기네요.

오 무바라크가 정권유지 못했잖아요. 전경이 없어서.(웃음) 우리나라 전경 임무가 법률상으로는 ‘치안업무 보조’예요. 그 여섯 글자 때문에 집회시위, 교통업무, 방범순찰도 하는 건데, 실제 집회 가보면 알잖아요. 직업경찰관이 보조하고 전경이 앞에 있죠.

서 전경이 경찰업무 보조한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삭신이 쑤셔오네요. 보조였는데 날 그렇게 많이 때렸을라구.(웃음)


경찰청이 국방부와 법무부에 배울 점


오 지난주 의정부 미군기지 근처 전경 숙영지를 갔어요. 세계 최강 미군부대를 작대기 하나 들고 지켜요. ‘왜 여기 있냐’ 물었더니 ‘한총련이 쳐들어올까봐’라고 하더군요.(웃음) 컨테이너 박스에서 7일, 자대에서 7일 돌아가며 근무한대요. 전기 패널을 깔았는데 바닥에만 좀 온기가 있어요. 달랑 샤워기 하나에 푸세식 화장실 두개…교도소가 훨씬 낫죠. 경찰서 근무 전경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 닭장이 없어요. 경기경찰청 기동대 한곳을 가봤더니 침상 앞에 비닐을 쳐놨어요. 추워서! 자기 자식 그렇게 재우나요?

한 서민생활 실태를 돌아본다고 시장가서 오뎅 사먹는 분이 그쪽은 안 가시나요?

오 경찰병원만 가시죠.(웃음) 전의경들이 경찰관들 구두 닦아주고, 옷 다려주고, 자동차 운전해주고, 청소해주는 건 말이 안 돼요.

한 어느 범위에서 전의경들이 해주죠? 기동대, 방순대(방범순찰대) 내부만의 일인가요?

오 줄긴 했지만 경찰서장실(4급) 당번병이 커피 끓여주고 다 해요. 경찰서 과장(5급)도 의경이 운전하는 차타고 다닙니다. 입초라고 경찰서 앞에 의경 세워놓잖아요. 대검찰청에도 입초 없어요. 경비 아저씨가 안내해주죠. ‘무기고’ 때문이라는데, 보안구역과 서비스구역을 분리하면 간단하죠.

서 시위 진압하느라 힘들어서 군기도 세고, 자살사건도 나온다고 하는데.

오 요새 막 가혹행위와 자살사건이 잇따라 나오잖아요. 2008년 촛불시위 땐 왜 안 그랬죠? 큰 집회시위, 2009년과 2010년엔 없었어요.

한 그런데 왜 자꾸 사고가 터지죠?

오 존재해선 안 될 부대가 존재하니까! 경찰 관련학과가 80개가 넘어요. 경찰되려는 젊은이들 많죠. 재수·삼수해서 들어간 다음에 6개월 훈련을 받아야 순경 됩니다. 근데 국방부로 입대한 청년들을 훈련소 마친 뒤 1주일 가르쳐서 경찰 기본업무 다 시키거든요. 7일 동안에 경찰직무직행법도 다 외워야 해요. 전경, 암기사항이 많아요. 그 때문에 구타도 많고. 승진시험 앞둔 경찰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대가 방순대와 기동대인 거 아세요? 전의경 부대. 거기 가면 대원들이 다 해주거든요.

한 군대에서도 구타 가혹행위 심했잖아요.

오 28사단 사망사건(2005년) 이후 병역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때 저도 군부대 인권교육 엄청 했죠. 육군수사단(헌병)이 상당히 노력했어요. 놀랍게도 군대 사망률이 절반으로 뚝 줄었어요. 경찰청이 국방부보다 못한 거예요. 마인드도, 부대 관리능력도.


시민단체 보조금 압박, 지난 정부도 마찬가지


서 교도소 지키는 경비교도대도 없어지고 있죠?

오 반 이상 없어졌죠. ‘국방개혁 2030계획’에 따라 경비교도대와 전의경을 없앤다고 2007년 발표한 걸 법무부는 지키고 있고 경찰청은 촛불 핑계로 안 하는 거죠. 경찰에게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이러면 안 돼요.

서 사병들은 소원수리를 잊을 수 없는데.

오 지금 몇백명을 영창과 기율대(군기교육대)로 보내고 있어요. 고발 잘한 친구들은 14박15일 장기휴가를 보내줘요. 돌아온 다음이 문제죠. 낙인이 찍히죠. 처벌로는 안 돼요. 부대 해체 한두번 했나요?(웃음) 저는 조현오 청장이 똑똑한 사람이라서 곧 전의경 폐지를 단계적으로 발표할 거라고 믿어요.

한 전의경은 경찰에도 큰 부담이 되는데, 왜 경찰 수뇌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죠?

오 일단 경찰에겐 ‘뚫리면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책임의식이 있죠.(웃음) 경비도 과잉으로 오후 2시 집회면 오전 10시부터 거리에서 기다리죠. 집회 다 끝나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며 못 돌아가요. 시위대는 뒤풀이까지 끝났는데.(웃음) 경찰청이 법무부한테 배웠으면 좋겠어요. 교도소 망루에서 실탄 장전해 경계 서던 경비교도대가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바뀌었어요.

서 전경이란, 군인이 평시에 시민의 일상을 통제 관리하는 셈이죠. 계엄도 아닌데. 국민개병제라는 것 자체가 근대혁명을 달성한 시민의 폭력을 외적 방비로 전환시킨 거거든요. 위헌 여부를 가리기 이전에 이는 근대국가 성립원리에 위배되는 거죠. 오국장은 경찰청 인권위원 3~4년 하다 그만두었는데.

오 촛불집회 때 경찰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걸 보며 인권위원 전원이 사퇴했죠. 대원들과 그 부모님들께 죄송하죠. 노 정권이 야속하기도 해요. 2007년에 전의경 폐지방침을 밝히면서 이듬해부터 단계적으로 줄이자고 했어요. 일단 자기네들부터 조금이라도 줄였어야죠. 다음 정권에 미룬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됐죠!

서 엠비정권 이후의 인권에 대해 말해보죠.

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아진 게 없긴 한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해보죠. 촛불집회 참가한 단체들은 행안부에서 정부보조금 안 주겠다고 했잖아요. 노무현 정부 행자부도 2005년 한-미 에프티에이(FTA) 연대기구에 참여한 단체들한테 보조금 안 주겠다고 했죠. 구속노동자 수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순으로 많아요. 디제이 정부는 아이엠에프(IMF)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노무현 정부는 뭐죠?

한 그 전에도 나빴는데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해도 촛불집회 때 유모차 어머니 연행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죠. 나도 연행됐고.(웃음)

오 물론 엠비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인권이란 단어가 한번도 안 나왔어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인권이란 단어가 안 나오죠.(웃음)

서 엠비 정부 3년 동안 대표적 인권침해사례를 꼽는다면?

오 미네르바 사건 같은 경우 전기통신기본법 처벌조항 들이대서 처벌한 건 처음이었지만 노무현 정부라고 표현의 자유를 다 보장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탄핵반대집회는 자유롭게 했지만,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집회는 거듭 금지통보가 나왔죠. 엠비가 잘한다거나 엠비와 노무현이 같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인권 관점에서 정교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최루탄을 없앴다든지, 직파간첩까지 포함시켜 양심수를 석방했다든지 하는 구체적 성과들이 있어요. 처음엔 양심수 업계의 지존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 복역기간에 맞추느라 27년 이상 된 장기수만 풀어줬죠.(웃음) 만델라가 26년 살았으니까. 국가인권위원회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만들었죠. 눈치 보기는 했어도 제법 점수를 줄 수 있어요.

한 노 정권은 병역 거부에 관한 태도나 과거사 문제에서 진일보했다고 봅니다.

오 의문사위에 간첩 채용했다고 문제 삼으면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국가정체성’을 놓고 정면공격(2004년 7월)을 합니다. 노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 문제를 화두로 던지죠. 그 뒤부터 의문사위의 대면보고를 받습니다. 정략적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과거청산도 진실을 알고 화해하기 위해서 용서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 가해기관에 대한 개혁이라도 분명히 해야죠. 국정원 개혁도 안 됐다고 보거든요.


국가인권위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 마라


한 현장을 가장 많이 뛰어다닌 활동가가 보기에 진보진영의 인권인식은 어떤가요?

오 개인이 중요합니다. 운동권도 정파라든지 진영 일부로서 나, 직능 등의 일부로서 나를 앞세우죠. 한동안 제가 어려움을 겪은 것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는 거거든요. 그때 찍힌 게 아직도 멍이 안 풀리고 있어요. 피해자 요청을 받아서 사건을 푸는데 도대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그때 ‘조중동, 엠비와 싸우는 상황에서 우리’를 강조하더라고요. 개인은 없어요. ‘우리가 남이가’식 문화가 있습니다.

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걸 언제부터로 잡아야 할까요?

한 1970년대 우리 편이 두드려 맞거나 감옥 갈 때 썼던 말이죠. ‘인권기도회’처럼.

오 92년 인권운동사랑방의 출범, 서준식이라는 걸출한 인권운동가의 출현이 인권담론의 실질적 시작이자 확산이었다고 봐야죠.

서 인권에는 위아래도, 지역 따위도 있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물론 좌우도 없겠죠?

오 97년 대선 때 도쿄 등을 돌아다니면서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기자회견 하고 다녔던 생계형 알바가 이듬해 구속이 됐어요. 윤홍준씨라고. 험한 짓을 하긴 했지만 최소한 변호사는 있어야 하잖아요. 오제도(50년대 반공검사로 유명, 2001년 타계) 변호사한테 찾아갔는데도 안 해주더래요.(폭소) 박홍 신부도 안 도와주고. 그래서 저를 찾아온 거예요. 당연히 인권보장 해줘야 하는 거죠. 전두환한테 사형을 구형해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넘어서야 해요.

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뉴라이트 출신 홍진표씨가 들어갔습니다. 촛불집회를 ‘거짓과 광기의 100일’이라던 사람인데.

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누가 들어가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정권 말기에 챙겨줘야 할 사람이 있나보다 했죠. 민주정권 시기엔 진짜 인권전문가들이 일하는 구조였는지도 돌아봐야죠. 현재 민주당 몫으로는 전직 의원이 가 있거든요. 말발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국가기구가 인권을 살뜰하게 다 챙겨주는 건 일정하게 한계가 있어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한북한 인권문제도 물론 중요하죠. 문제는 뉴라이트란 자들이 인권의 보편성이란 건 전혀 모르고 북한 인권문제만 본단 말이에요.

서 국가인권위 존재 이유는 분명하죠. 가령 교도소 수용자들이 인권문제 제기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거든요. 근래 들어 진정 건수가 급감한다는 건 교도소가 태평천하여서가 아니거든요. 근데 교도소에서 담배 못 피우게 하는 구체적 규정이 있나요?

오 술과 마약은 있지만 담배는 없어요. 신체의 자유만 박탈해야지 왜 담배 피우는 것까지 상관을 해야 하죠? 일본 등 매우 완고한 동양적 전통을 가진 나라만 빼곤 피울 수 있게 합니다. 심지어 40개국 교도소에선 섹스할 권리도 보장해요.

한 담배 피우면 불이 날 염려가 있어서 그런다고 하죠.

오 방을 정해놓고 드럼통 놓고 피우면 돼요. ‘건강에도 안 좋은 걸 교도소에서 왜 피우려 하냐’고 하는데 교회에서 말하는 금연 논리와 닮았어요.(웃음) 성서에 담배 피우지 말라고 안 씌어 있잖아요. 거기서도 결국엔 ‘건강에도 안 좋은 걸…’이라고 하죠.(웃음)

한 오국장은 이십년간 이 바닥을 지켜왔잖아요. 철없는 청년이 찾아와 인권운동에 평생을 건다고 할 때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젊은 활동가들이 오래 못 버티잖아요.

오 돈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고 봐요. 문제는 비전이죠. 제가 일하는 인권연대에서 방학 때마다 대학생 인턴 4명을 받는데, 대체로 두 그룹이에요. 기자가 되고 싶거나 로스쿨 가서 인권변호사 되고자 하는. 인권운동이 아직 전범을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서준식이라는 인권운동의 문을 열어젖힌 대부는 연락도 안 되고.(웃음) 내 삶을 온전히 걸었을 때의 모습이 온전한 상이 별로 떠오르질 않아요. 인권운동가로 늙어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막강한 권한 주어진다면 검찰 쪼개기부터


한 서준식 다음 세대 대표선수가 박래군, 오창익인데 스스로 모델이 되셔야죠.

오 과학벨트가 들어서는데 어느 시민단체에서 자기 동네로 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걸 넘어서야 해요. 전 위악으로라도 까칠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는 편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라면 안 되죠. 저는 한줌도 안 되는 인권운동판에서도 비주류인데 그저 어울려 다니기보다 다른 행보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시민운동하는 사람만 만나는 것보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만나야 새로운 걸 벼리어낼 수 있겠죠. 고정된 편향도 갖지 않게 될 것이고.

서 근대혁명 이래 인권은 자유권에서 여러 경로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앞으로 어느 쪽으로 더 펼쳐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오 인간이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표현의 자유만으론 가능하지 않죠. 치매 걸렸을 때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고 고통을 덜 느끼는 것도 중요한 존엄이죠. 작년 지방선거 때 터져 나온 무상급식 슬로건이 참 반가웠어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사회권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인권문제가 드디어! 의제가 될 거 같아요. 그에 걸맞은 인권정치가 있느냐가 아쉬운 대목이죠.

서 한달 동안 권한을 갖는다면 가장 개선하고 싶은 인권 분야는?

오 검찰개혁! 검찰 쪼개서 수사는 전부 경찰에게 주고, 검찰은 국가기소청으로 만든 다음 경미 범죄 수사는 자치단체에 주겠습니다!

한 문제는 정치판이나 진보판에서 검찰개혁에 대해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오 미치겠어요! 법학계는 완전히 고시 시스템이잖아요. 로스쿨! 완전히 학원이 됐어요. 진지한 담론은 논의를 안 하고, 이런 현실에 관심을 가지면 좌파로 찍히고.

한 이것 때문에 노무현이 죽었잖아요. 다음 선거에선 검찰개혁에 목숨을 거는 자를 무조건 찍어야 해요.



직설잔설
서준식을 찾지 않는다    

그 인권은 감열지에 새겨져 있었다. 조금만 열이 닿아도 쉬 검게 타버리고 마는 얇은 종이는 침해받는 순간 훼손되어버리고 마는 존엄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양 바스락거렸다. 그게 조바심이 나 늘 새벽에 도착해 있는 인권을 복사해서 따로 철해 두어야 했다. 그건 날마다 나오는 인권보고서이자 교과서였다.

처음 인권은 그렇게 팩스로 배달되었다. 서준식은 인권운동사랑방을 열고 최첨단 장비 팩스로 인권하루소식을 곳곳으로 뿌렸다. 그 인권은 학생·노동자를 때리고 가두는 것만 말하고 있지 않았다. ‘양심수’는 집에도, 칠판 뒤에도, 손톱 밑에도 살고 있었다. 긴 감열지에는 국가폭력뿐 아니라 일터, 학교,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권(침해) 소식이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소식지를 발송하는 사무실에는 대표나 간부가 따로 없었다. 기억건대 간사 대신 활동가라는 말을 먼저 쓴 곳도 사랑방이 아니었나 싶다.

서준식, 그는 재일 조선인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여러 학우들 앞에서 조선인이란 걸 고백해야 했던 조선인이었다. 박해받는 소수자의 슬픔은 그 뼈마디 일부였다. 유학 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그는 방학 때 북한을 방문했다가 둘째 형 서승과 함께 17년을 갇혀 지내야 했다. 그 옥에서 협박에 굴종하지 않는 자신을 그는 관제엽서에 담아 밖으로 내보냈다.

그를 만난 건 1991년 봄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전경 쇠파이프에 얻어맞아 죽으면서 수세에 몰린 권력은 재야단체에 일하다 자진한 청년의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사건을 조작했다. 옥 밖에서도 위조지폐 같은 거짓 진실과 싸우는 건 이미 서준식의 삶 자체였다. 그 일을 떠맡더니 석삼년 만에 다시 옥에 갔다 나온 그는 인권하루소식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뒤, 하물며 그를 투옥시킨 사람들조차도 인권 ‘혜택’을 누릴 무렵, 서준식은 사라졌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를 찾지 않는다.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다.

모든 무너진 곳에, 그가 살고 있다.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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