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책
 
<노동의 새벽>
박노해 지음/느린걸음·7800원
한동안 무슨 서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문학과 비문학이 있고, 문학의 정점에는 시가 있었다. 무언가 읽는다면, 그것은 시 아니면 소설이어야 했고, 나머지는 그저 잡문으로만 여겼다. 시인은 남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부러운 존재였고, 나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나의 유일한 선택은 그저 부지런한 독자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럴 때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전남 출생, 15살 상경, 기능공’이라는 짧은 소개 뒤에 자신을 숨긴 얼굴 없는 시인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그동안 시는 문학의 본령이고, 고급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었지만, 박노해의 시는 그것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박노해는 그동안의 시인들이 아무리 애써도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지에 있었다. 문단은 경악했고 독자들은 열광했다. 수십만명의 독자들이 <노동의 새벽>을 찾았다. 절반쯤의 시들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박노해가 한방에 날려주었지만, 나는 또다른 부끄러움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에는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부끄러움은 꽤 오래갔다.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에 지금도 직업운동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흘렀다. 얼굴 없던 시인은 서울노동운동연합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거쳐 딱 20년 전 이맘때 얼굴을 처음 드러냈다. 수갑을 찬 분노한 얼굴, 뭔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었다. 7년 반의 수감생활을 거쳐 세상에 돌아온 박노해는 여전했다. 그가 이끄는 ‘나눔문화’는 가장 원칙적이면서도 따뜻한 시민단체가 되었다. 그의 감수성은 이 땅의 노동자를 넘어 제3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 쫓겨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꾸준한 작품 활동 끝에 최근에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란 시집도 냈다. 세월을 따라 그의 활동기반이 비합법에서 합법의 공간으로, 혁명적 낭만은 좀더 진지한 휴머니즘으로 변모했지만, 박노해는 1984년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다행이다.

박노해가 노래한 노동현실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박노해가 절규하던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밤 깊은 어둠이 여전하다. <바겐세일>에서처럼 일자리를 구하던 스물일곱의 답답한 청춘들은 그대로다. 아니, 비정규직의 양산에 따라 청춘들의 삶은 더 고약해졌다. <노동의 새벽>에서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하던 절망도 온통 그대로다. 그래도 예전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절망을 넘어선 희망이 있었다. 혁명적 낭만도 있었다. 언제 해고되고, 삶을 포기할지도 모를 불안한 삶이지만, 이 정직한 절망마저 ‘이제는,/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평온한 미래를 위하여/ 결코 평온할 수 없는/ 노동자의 대도를 따라/ 불안의 한가운데로 휘저으며/ 당당하게 당당하게/ 나아가리라’던 포부(<평온한 저녁을 위하여>의 일부)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불안은 더 곤혹스럽다. 희망 없는 불안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자살로 이어지곤 한다. 지금처럼 ‘새벽’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

힘들어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 깊은 밤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새벽’ 같은 희망이 그립다. 그래서 다시 <노동의 새벽>을 꺼내 든다.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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