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제주의 서정(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 제주4.3과 해군기지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1. 해마다 4.3 시기가 돌아오면, 육지로부터 이런 저런 단체와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다. 제주 4.3의 역사를 배우고, 그 흔적들을 살펴보기 위함일 것이다. 4.3 63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그 중 어느 한 단체에서 나보고 제주4.3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해군기지 문제도 언급해 달란다. 4.3과 해군기지... 이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6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살육의 장면을 상상하고 죽음의 이미지에 나를 밀어 넣는 일은 괴로운 것이었다. 해마다 4.3이 도래하지만, 고백하건데 이 시기에 열리곤 하는 각종 4.3 관련행사로부터 난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좀 떨어져 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유족은 아니지만, 4.3시기마다 재연되는 비극의 기억에 동참하는 일이 나에게는 무언가 버거운 ‘의무’ 같은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현실의 해군기지 문제까지 얹어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었다. 2005년으로 기억한다. 4.3 57주년 위령제가 봉행되는 평화공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4.3영령 분노한다. 해군기지 철회하라”, “평화의 섬 역행하는 해군기지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4.3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은지 2년이 다 된 시기에 열리는 위령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4.3유족 일부가 “이런 데까지 와서 시위냐!”며 격렬한 항의와 심지어 발길질까지 해대는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심한 자괴감에 흔들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가’폭력에 의해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4.3문제가 어렵사리 ‘국가’차원에서 해결 되어가는 마당에, 또다시 해군기지 문제로 ‘국가’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일부 유족에게는 부담이자 훼방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 사건은 4.3문제의 해결이 지향하는 상생과 화해, 평화의 논리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 이전에, 유족은 물론 어쩌면 제주의 주민 누구에게나 그것이 피해의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4.3과 해군기지 문제는 현실에서 같이 가고 있었다.
2. ...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제주는 오히려 그 지정학적 위험성을 더욱 강하게 경험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제주에 주둔하게 되면서 제주는 일본 본토 수호를 위한 대규모 전쟁터가 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그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20세기 제주 역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4 ․3의 경험도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일정한 연관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 만일에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3국이 상호존중, 공동번영의 정신을 버리고 권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게 된다면 제주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은 다시 위험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 2001년 제1회 평화포럼에서 행해졌던 제주도지사의 개막 연설문 중 일부이다. 당시 위 연설의 주인공은 현직 우근민 지사이다. 그런 우근민 지사가 왜 이제 와서 "단 한 번도 해군기지를 반대해본 적이 없다”면서, 어찌 그리 당당히도 해군기지 공식 수용입장을 서둘러 밝혔는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다. 다만, 그게 누구였든 이제 와서 매년 연례행사로 확대 개최하겠다는 그 평화포럼의 제1회 도지사 연설문 내용의 핵심이 바로 위의 그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은 ‘가능성과 위험’ 이라는 논제로 제주의 위상과 미래를 매우 확고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제주의 대표가 10년 전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천명한 바로 그 제주의 ‘가능성과 위험’이 이미 지금 첨예하게 현실로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제주도민 모두가 똑바로 봐야 한다.
연설문의 내용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제주 4.3 역시 지리적 위치로 인한 제주의 운명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비록 제주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므로 이를 확보하기 위해 강경진압작전을 폈다는 식의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해방이후 벌어진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 양진영이 벌이는 냉전대결에 있어서 한반도는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었고, 여기에 제주도에서 벌어진 5.10 단선반대운동은 당시 미군정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억제’되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미 국무부와 군부 사이에 벌어진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도 불구하고 4.3 당시 대량 학살을 가능케 했던 초토화 작전이 실질적인 미국의 군사 통제권 하에서 비롯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는 전후 냉전체제에 대응한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 정부가 채택한 4.3진상보고서상의 내용인 것이다.
국가폭력이라는 관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4월, 동백이 지는 시절, 강정마을이 쓰러지고 있다. 연일, 포크레인을 앞세워 기지건설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군 당국의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이 곳은 전쟁을 위한 요새임을 하루라도 빨리 낙인찍으려는 듯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안보는 도대체 어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국민위에 올라서는 기지가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 평화는 누구의 평화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