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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3일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실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날 기자회견은 이주노동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난민인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란출신 난민 O씨는 3년9개월째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는 두 달 가까이 곡기를 끊은 채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공식적인 국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 외국인들을 “강제 퇴거” 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구금시설인데, 그 환경이나 구금자에 대한 처우는 일반 형사범을 수용하는 교도소보다 훨씬 못하다. 일반적으로 교도소에서 3년 이상 복역한다면 매우 중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 볼 수 있는데, 난민 O씨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범죄행위도 하지 않았다. 다만 출입국 관련 행정절차를 어겼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난민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죄(?) 밖에 없다.

 올해 2월 대법원은 O씨의 난민인정 요구를 최종 기각했다. 이것은 그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난민 O씨는 2005년 5월 31일 한국에 입국했다. 무슬림이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이 곳 저 곳에서 일을 하다가 동두천 모 교회에서 열린 쿠르드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부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런데 그해 11월 한국에 와 있는 어떤 이란 사람과 술을 마시다 취한 상태에서 그가 권한 “하쉬쉬”라는 담배를 받아 피웠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마약 복용’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한국은 범죄와 연관되지 않은 마약흡입 행위에 대해서조차 대단히 엄격하게 처벌하는 나라다. 전인권, 김부선 씨 등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이 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그 문제점 또한 적지 않게 지적되었다. 결국 그는 뜻하지 않게 체포되어 집행유예지만 유죄를 선고받게 되었고, 2005년 12월 12일 “강제퇴거” 명령과 더불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된다. O씨는 이곳에 수감되자마자 본국으로 돌아가면 기독교로 개종한 것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된다며 난민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듬해 3월 그의 신청을 기각했고,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O씨의 3년여에 걸친 기나긴 법정투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대법원은 그가 한국에 입국하게 된 동기가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보호소에 수감된 이후 뒤늦게 세례를 받았고, 이란 영사관 직원에게 개종사실을 알렸다는 사실만으론 난민협약상의 박해라고 부를만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을 거라 예상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난민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란의 현실상황을 모르고 내린 판결이다. 2009년 9월 9일 이란 정부는 “배교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입국 동기야 어떻든 간에 3년여에 걸친 기나긴 재판과정에서 그의 개종사실을 이란 정부가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만일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장기 구금된 이란인의 강제송환과
장기 구금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한국의 난민인정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출입국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94년 한국이 난민협약을 비준한 이래 올해 4월까지 난민신청자 2,262명 가운데 107명만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채 5%도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비자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자”로 몰려 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된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인정받게 될 확률은 소수점 이하다. O씨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3년9개월을 기다려 왔다. 이것만으로도 개종 때문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그의 진정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 아닌가?

 한국을 비롯해 난민협약에 가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난민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치적, 종교적 난민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경제적 난민’의 경우 아예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하지만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정치상황이 불안정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 서민들이다. 이런 나라들에 있어서 난민 협약상 박해의 사유가 되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독재국가일수록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당연히 이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불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정권은 이것을 분쇄하기 위해 종교를 내세워 국민을 분열시키고 인권을 탄압한다. 난민 협약이 단지 립 서비스가 아니라면 협약 비준국들은 이런 사정을 정확히 반영해서 원래 취지인 인도주의 정신에 맞게 난민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난민문제를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와 연결시켜 난민인정 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서도 대외적으로는 “따뜻한 다문화 국가”를 지향한다며 선전한다.

 장기간의 단식투쟁에다 3년 9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겪고 있는 난민 O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그를 만나서 문진하고 돌아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한 의사에 따르면 “하루 내내 지속되는 가슴통증과 복부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점점 증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최근 흑색 변이 잦다는 것으로 보아 십이지장 출혈도 의심”된다고 한다. 난민 O씨에겐 긴급한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데도, 화성외국인보호소가 자체 의료진에 의한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출입국 당국은 그동안 법원에서 난민인정 요구가 기각된 만큼 행정절차에 따라 강제 송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난민 인정여부와 관계없이 자국에 송환되면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은 난민이라 할 수 있다. 본국으로 송환되면 생명마저 보장받기 어려운 난민을 강제 송환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인권보장을 존재이유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더욱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난민 심사 및 재판과정이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출입국 당국이나 재판부 모두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O씨의 박해 가능성을 정확히 진단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절차가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본인이 원했다 해도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3년9개월을 교도소보다 더 못한 구금시설에 가둬 놓는 것은 반인권적인 처사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O씨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법무부는 지금 당장 난민 O씨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석방하고 난민 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지 O씨의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희망의 땅”으로 여기고 왔다가 절망만 가득안고 다시 위험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제도개선과 적절한 인권구제조치가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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