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식 성과주의가 자초한 강북서장 항명
고문 수사 망령이 부활했다.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 4명이 고문 혐의로 구속됐다. 대다수 일선 경찰은 수뇌부의 ‘성과주의 치안정책’을 고문의 배후 주범으로 지목한다.
[146호] 2010년 06월 28일 (월) 11:06:01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서울 양천경찰서 강력팀의 피의자 고문 의혹사건에 대해 한 현직 총경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대학 4기인 그는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비인도적 고문에 연루된 것을 차마 믿고 싶지 않았지만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빼도 박도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문 수사에 연루된 양천서 강력 5팀의 형사과장은 경찰대 3기, 서장은 경찰대 1기다. 양천서는 올해 2월 서장의 독단으로 강력사건에 비해 실적 점수가 낮은 형사계 계장을 없애는 대신 강력계장을 둘로 늘렸다. 실적을 독려하는 상부 지시에 부응하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양천서 고문 의혹사건은 현재 경찰에 만연한 ‘성과주의의 부작용과 폐해가 집약돼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이 이 총경의 솔직한 진단이다.

이번 사건은 역사 속에 묻힌 줄로만 알았던 수사기관의 ‘고문’ 망령이 현실로 되살아났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군 물고문 치사사건,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에 의한 김근태씨 고문사건, 학생운동가 권인숙씨에 대한 부천경찰서의 성고문사건 등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경찰의 고문 수사 사건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역사의 ‘박물관’에 들어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국사건이 아닌 일반 사건에서 끔찍한 고문 수사가 되살아났다. 그것도 대낮에, 밀실이 아닌 경찰서 사무실에서 버젓이 자행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시사IN 안희태
올해 들어 강력계를 2개나 만들어 무리한 실적 올리기에 집착하다 고문 수사 파문을 일으킨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초기 태도는 20여 년 전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6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피의자 22명을 고문한 것으로 파악한 양천서 경찰관 5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경찰청에 직무감찰을 의뢰하자 맨 처음 양천경찰서에서는 펄쩍 뛰었다. 절대 고문은 없었으며 검찰 수사에서 인권위 발표내용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법적으로 책임을 지우겠다고 오히려 큰소리치고 나왔다. 곧 고문 정황이 드러날 것임에도 마치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거짓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양천경찰서 사례는 빙산의 일각


인권위 조사와 검찰 수사로 고문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청은 마지못해 가혹행위 정황을 시인하면서도 꼬리자르기식 대응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사건이 불거지자 경찰청은 감찰조사에 나서 경찰관 5명의 고문 정황을 파악하고서도 이들 경찰관을 지휘한 강력계장과 형사과장, 경찰서장에 대한 감찰은 하지 않았다. 지휘 라인 봐주기를 위한 꼬리 자르기식 감찰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또 인권위가 지난 3월부터 양천경찰서 고문 현장을 조사하고, 서울 남부지검에서 4월 초 양천경찰서를 상대로 CCTV 등 증거물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했는데도 서울경찰청은 사건이 불거질 때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늑장보고 때문이었다지만 평소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경찰 조직의 특성으로 볼 때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이왕 밝혀진 고문에 관해 현장 실무자들만 강력 문책하고 양천경찰서장-서울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지휘 라인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꼼수가 읽히는 대목이다. 양천서에 대한 직속 지휘책임자인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내 현 정권의 실세인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라 평가받는 인물이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유독 양천경찰서에서만 그런 일(고문)이 있었다”라면서 마치 이번 사건이 양천서 강력5팀 소속 경찰관 5명의 개인 자질 문제인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이런 경찰 수뇌부의 인식과 반응에 대해 일선 경찰들은 크게 반발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양천서 고문 사건은 일선 경찰관 몇 사람의 자질에서 비롯된 우발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현 정부 경찰 수뇌부가 내건 ‘성과주의’ ‘실적주의’ 방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무궁화 클럽’의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번 고문 사건에 대한 현직 경찰관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거침없이 올라오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성과를 내기 위해 조선시대 형틀이 등장하기를 원하는가. 왜정시대 독립군 취조하듯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라고 내몬 것이 아닌가.”(아이디 상머슴) “그놈의 실적을 그리도 강조하더니 드디어 터졌군요. 고문 보도가 사실이라면 누굴 위해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이오. 조직에서 보호해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평생 후회할 일만 남을 것입니다.”(아이디 희망) “뻔히 실적주의가 불러온 불상사인 줄 알면서도 말단 경찰만 먼저 징계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과연 자질과 양심 있는 지휘관들이란 말인가. 당신들이 요구한 실적이 양천서에서 발생한 사건, 아니 더 많은 인권 유린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가.”(아이디 바른먹거리)

   
ⓒ뉴시스
고문 책임을 일선 경찰에게 미루는 강희락 경찰청장(왼쪽)과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오른쪽).
고문과 가혹행위 등 무리한 수사가 비단 양천경찰서만의 문제일까. 경찰 안팎에서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수사 과정의 가혹행위는 경찰의 ‘관행’으로 되살아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경찰청 자문위원으로 있는 한 경찰행정학 교수는 “요즘 시대에 경찰이 시민을 고문 폭행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막상 경찰 수사관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시민을 상대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벌이더라도 죄책감이나 거부감이 많이 엷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경찰 수뇌부가 강조하는 성과에 부응하려다보니 일선 경찰들이 다양한 무리수를 저지르고 그중 하나가 가혹수사에 대한 유혹,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돌연사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에도 그동안 경찰 수사과정에서 받은 가혹행위의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주로 경찰에서 수갑을 채워 거꾸로 들어 올리는 ‘통닭구이’ 고문을 하는 바람에 탈골했다는 피해자의 진정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철저한 부인으로 인해 이런 고문 피해를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어 확실한 문제 제기와 법적 대응으로 이어지기 힘든 현실이라고 한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고문의 관행화는 상식이다. 군사정권 때도 고문이 다반사로 일어났지만 박종철·김근태·권인숙씨 정도밖에 사실로 밝혀진 일이 없다. 그렇다고 그 시절 고문이 딱 3명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듯, 이번 사건도 양천서 한 군데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고문 근절을 위해서는 먼저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통닭구이 한 바퀴에 공범 1명 분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솔직히 요새 술자리에서 고문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신체에 무리를 안 주고 고통만 주는 방식, 정신적·심리적 고통만 주는 방식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요령인데 이런 것은 전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고문 현장을 보든가 해서 기술을 연마하고 노하우를 익혔다는데 요즘에는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는 그런 고문 방식을 들을지언정 선배 세대로부터 배울 수는 없기 때문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고통 줘서 자백받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시사IN>이 만난 현직 강력반 형사들은 대체로 현 정권 들어 무리한 강압 수사 유혹에 시달린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수뇌부 방침에 따라 절도범 1건당 15점, 청소년 대상 범죄 30점, 교통경범 단속 5점 등으로 점수를 매겨 성과급과 인사에 반영하며 독려하기 때문이다. 한 형사는 “요즘은 시민이 실적과 성과를 얻어낼 대상으로만 보인다. 위에서 검거 실적을 도표로 그려 평가하니까. 쪼일 때면 ‘피의자를 통닭구이 고문으로 한 바퀴 돌리면 공범 한 명씩 분다’는 말이 그렇게 솔깃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수사관은 “위에서 하도 실적으로 조이니까 예전 같으면 훈방했을 좀도둑도 어떻게 하면 절도죄, 더 키워서 강도죄로 엮어 실적을 올릴까 궁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거리에서 5만원 상당의 허름한 자전거를 훔친 용의자를 붙잡아 신제품 가격인 30만원짜리 자전거를 절도한 것으로 조서를 꾸미고, 훔치는 과정에서 주변 목격자에게 욕설을 한 점을 강도죄로 추가해 기소한 일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올린 실적 덕분에 성과급을 받았고 인사상 불이익도 피했다고 한다.

바로 이 같은 현장 분위기가 양천경찰서와 같은 고문 수사를 불렀다는 것이 일선 경찰들의 하소연인 것이다. 사실 목동아파트 등 주거 밀집지역에 자리한 양천경찰서는 상대적으로 관내에 범죄가 많지 않다. 그런 동네에서 실적을 요구하면 위험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양천서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주거 밀집지역에 자리한 노원·은평·송파·서초 경찰서 등도 실적주의로 인해 경찰관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한 곳으로 꼽힌다.

성과주의만 강조하는 경찰 지휘부는 해당 지역 치안 여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 동네에 도둑이 없으면 실적이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예방 치안 차원에서 잘했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는데 무조건 다른 동네 실적과 비교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 “옆 동네 지구대는 강도 5명 잡았는데 너희는 왜 1명밖에 못 잡았느냐”라는 식으로 따지고 다그치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관들은 결국 시민을 상대로 억지로 범죄꾼을 만들어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시사IN 조남진
박종철군을 고문치사한 현장이 그대로 보존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그래서 요새 주거 밀집지 경찰들은 실적을 찾아 비교적 유흥가가 많은 다른 동네로 원정을 나가서 범인을 잡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하도 늘어나니까 관할 밖에서 잡아온 범죄사건에 대해서는 체포 경위를 따져 기존 수사와 관련 있는 것만 실적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부분 ‘수사과정에서 잡아왔다’고 허위 보고를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국민을 범죄꾼으로 만드는 성과주의


또 과거 같으면 경미한 법규 위반 사항에 대해 지구대장에게 훈방권이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성과주의 때문에 대부분 훈방하지 않고 무조건 단속을 하는 추세다. 사회봉사명령을 내려야 할 불기소 감도 억지로 사건을 만들어 기소해서 실적을 채워야 성과급도 나오고 승진도 보장된다. 한마디로 경찰 수뇌부의 ‘성과주의’ 치안정책은 당초 의도와 상관없이 ‘국민을 범죄꾼으로 만들어 영달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치안 성과의 근본은 주민이 치안에 만족을 느끼느냐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주민 중 범죄인 많이 만들어 숫자 채우는 것이 현재의 치안 정책인 셈이다.

이번 양천서 고문 수사 사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고문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라며 질책하고 나섰다. 현 정부 들어 줄곧 경찰 치안의 효율성과 성과만 강조한 나머지 인권을 노골적으로 홀대하고 감시를 소홀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은 이 대통령이기에 이런 반응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고문 수사의 뒷전에 성과주의 중심의 치안정책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경찰의 인권 상황을 전면 점검하지 않는다면 전근대적 가혹 수사가 근절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해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가 이제라도 제 기능을 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축소한 인원을 늘리고, 권한 강화를 통해 경찰에 대한 전문적 인권 감시기능을 살려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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